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ulblue Aug 02. 2023

슬램덩크에서 가장 다정한 남자

자신만의 페이스로. 로우템포 이달재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서는 송태섭이 가나가와 현으로 이사한 뒤 이유 없이 이지메를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다소 건방져 보이는 송태섭 특유의 단단한 분위기에 오키나와라는 그의 출신지가 더해지면서 높은 확률로 다른 아이들의 신경을 긁어댔기 때문이었다.


오키나와에 대한 일본 주류 사회의 차별은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영화 속에서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면서 송태섭이 다소 쭈뼛거렸던 게 단순히 낯가리는 성격을 드러낸다기보다는 확연히 다른 오키나와 사투리를 들려주기 싫어서였을지도 모른다고 분석하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세 보이는 녀석과 맞닥뜨리면 일단 발차기 각부터 재고 보는 호전적인 성격이지만 이유 없는 적개심을 환영인사로 받는 건 송태섭도 사양하고 싶었을 것이다.


미야기 료타라고 자신의 이름을 반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송태섭의 얼굴에는 낯선 환경에 대한 다소의 긴장감과 동시에 아주 작은 설렘의 표정이 함께 드러난다. 아버지와 형을 잃었던 오키나와를 떠나 가나가와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면서 송태섭은 어쩌면 그에게 먼저 다가올지도 모를 새로운 인연과 미래를 상상하며 이곳에서라면, 이 새로운 곳에서라면 또 다른 소중한 존재들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느껴지는 소년의 미세한 설렘과 기대감은 바로 다음 순간 벽에 처박히며 얻어맞는 씬과 대비되며 완벽하게 박살 난다.


비극적인 가족사로 슬픔에 숨 막히게 잠겨있던 집과 자신에게 유난히 적대적이었던 학교를 오가며 송태섭은 지속적으로 폭력과 차별에 노출된다. 정서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어느 쪽으로부터나. 언제나 무리 지어 다니며 적어도 자신들만의 코호트 속에서는 안전했던 강백호 양호열 패거리와 절망스러운 현실로부터 일시적으로나마 도피할 수 있는 무리와 장소가 있었던 정대만과는 다르게 송태섭은 언제나 혼자였다. 마치 그와 세상 사이에는 거대한 벽이라도 존재하듯이. 그리고 그 벽의 간극을 넘어 그런 송태섭의 곁에 서길 선택한 유일한 사람이 있다. 바로 이달재다.




슬램덩크에서 가장 강력한 멘탈을 지닌 선수들을 나열할 때 은근히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인물들이 있다. 상양의 정신 김수겸, 해남의 농구 트럭 이정환, 그리고 냉혹한 농구머신 산왕의 이명헌 등. 그 중 가장 평범하면서도 오히려 그 평범함 덕분에 사실은 정말 무지막지하게 강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존재가 바로 이달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안정화된다. 그것이 타고난 재능이든 수없이 많은 노력이든 자신을 향한 굳건한 타인의 믿음이든 무언가가 내면에 차곡히 잘 쌓여있을 때야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세계를 견고히 만들어나갈 수 있다. 진정한 자신감은 그런 자존감으로부터 비롯되고 자존감이 잘 형성된 아이는 대개 진취적이고 용감하기 마련이다.


그런 측면에서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 아이들은 무척 유리한 고지에 서 있는 셈이다. 눈부신 재능은 즐거움을 수반하고 그렇기에 노력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노력하는 천재들에게는 비교적 쉽게 타인의 응원과 믿음이 뒤따른다. 이 든든한 기반을 토대로 이들은 작은 사건들에 일희일비하고 문제의 원인을 남에게 돌리기보다 원인이 무엇이든 지금 자신이 맞닥뜨린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상황을 돌파하며 성취감을 얻는데 집중한다. 외부 요인에 잘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내면은 이런 식으로 형성된다.


양호열의 육아방식 덕분에 상당 부분 커버가 되긴 했지만 상대적으로 제대로 된 어른으로부터 필요한 관심과 애정을 받지 못한 채 고교에 입학한 강백호의 경우는 그 압도적인 재능에도 불구하고 가끔 위기의 순간이 다가오면 다소 의기소침해지는 경향이 있다. 아마도 그가 '천재'라는 칭호에 몰두하는 것도 상대적으로 결핍되어 있는 내면의 자존과 그것으로부터 기인하는 존재론적인 문제를 본능적으로 인지하고 있기 때문 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상대적으로 평범한 이달재가 좀처럼 잘 흔들리지 않는 내면을 지닌 채 성장해 온 것 자체로도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164~5cm 정도의 작은 키와 상대적으로 얇은 체구. 지금 당장 NBA에서 뛰어도 이상할 것 없는 괴물 같은 장신의 덩치들 사이에서 빠른 발도, 감각 있는 패스도, 골결정력도, 밀리지 않는 피지컬도 없는. 그렇다고 권준호나 채치수처럼 체육 외 공부를 뛰어나게 잘하는 것 같지도 않은, 평범하다의 정의에 가장 잘 부합하는 캐릭터인 이달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북산 농구부에서 권준호와 더불어 가장 강력한 멘탈을 보여준다.

로우템포.


거칠기로 유명한 풍전의 런앤 건을 상대하며 실전 격투로 다져진 타고난 싸움꾼들은 여지없이 상대의 도발에 발끈거린다. 애초에 자신을 손보려고 무리를 끌고 온 정대만 패거리 내의 역학을 빠르게 파악하고 한놈만 패거나, 시비가 붙자 양호열을 무리의 대장으로 감지하고 선빵을 날리려고 했던 송태섭이나 백호군단과 어울려 다니며 수없이 양아치들과 싸움을 해댔던 강백호는 풍전이 걸어오는 반칙의 본질, 그러니까 이것은 스포츠가 아니라 싸움이라는, 너무도 익숙한 감각 때문에 순식간에 발화점에 다다른다. 본능적으로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지 않는 두 싸움꾼의 기질 때문에 경기는 빠른 속공을 주무기로 하는 풍전의 페이스에 말려들게 되고 북산의 강력한 강점 중 하나인 채치수가 남아있는 인사이드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실점을 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안감독은 강백호를 이달재로 교체한다. 빠른 송태섭과 강한 강백호와는 다른, 전혀 다른 선수의 등판이다.


빠르고 강한 것은 강점이다. 분명. 그러나 때로는 느리고 유연한 것이 필요할 때가 있다. 농구에는 속공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덩크 슛이나 삼 점 슛, 엘리후프나 레이업 슛처럼 화려한 슛만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세상 모든 것들이 인생을 닮았듯 농구 역시 그것을 플레이하는 선수들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측면이 존재한다. 빠르고 강한 팀에게는 똑같이 정공법으로 응대해야 할 때도 있겠지만 때로는 오히려 반대로 그 흐름을 끊어야만 하는 순간도 있는 법이다.


안 감독의 무서운 점은 어영부영 취미생활로 부지도를 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맹장으로 선수들을 육성할 때의 습성을 전혀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안감독은 무엇보다 선수들의 숨겨진 재능을 적확하게 발견하고 그것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리는데 주저함이 없다. 그는 심지어 선수 본인조차 미처 발견하지 못한 강점들을 귀신같이 찾아내 최대한 빠르게 실전 팀플레이에 활용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안감독의 농구가 잘 짜인 조직력으로 명성이 높았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비록 그 결과 미처 개화하지 못한 젊은 선수의 앞 날이 미숙한 선택으로 인해 비극으로 끝나버리기도 했지만 이것은 분명 지도자로서 안감독이 지닌 가장 큰 재능이다.


그런 안감독이 피지컬과 센스 양면 모두 평범한 수준인 이달재로부터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내면을 발견한다. 변덕규에게 능남의 감독이 '그 신체는 너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이야기했듯이 이달재에게 안감독은 흔들리지 않는 그 멘탈이야말로 너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일러준 셈이다.


"자네가 모두를 컨트롤해야 하네. 알겠죠?"


수없이 많은 싸움에 휩쓸렸을 송태섭 곁을 지키며 아마도 이달재는 도발에 쉽게 넘어가는 다혈질의 송태섭을 진정시키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을 것이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서도 장발남 시절 정대만이 농구부에 복귀한 송태섭을 못마땅해하며 '키가 작다.'라고 시비 걸었을 때, 역시나 걸어오는 싸움 흘려보내지 않는 송태섭이 즉각적으로 '그 머리 깎으라고' 응전하자 달재는 송태섭을 제지하다 결국 으르렁거리며 다가오는 영걸이 패거리들을 피해 함께 달아난다. 인상적인 부분은 정말로, 정말로 평범해 보이는, 그러니까 강백호의 덩치에 쉽게 압도되고 채치수의 호통에 바들거리기 일쑤인 달재가 그런 험악한 상황 속에서도 송태섭을 내버려 둔 채 혼자 달아난다는 옵션이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군다는 점이다. 송태섭은 무리를 짓지 않고 달재는 혼자 도망가지 않는다. 이 기묘한 발란스라니.


어찌 됐든 달재는 용암처럼 뜨겁기로 유명한 인간들이 모인, 말도 안 되는 전국제패를 외치며 무지막지한 훈련량을 견뎌내고 심지어 남에게 강요까지 하는 주장인 채치수, 한 때 촉망받는 에이스였으나 무릎부상으로 추락한 뒤 방황하다 폭풍 같은 눈물을 쏟고 회개한 뒤 재기를 꿈꾸는 불꽃남자 정대만, 세상 모든 게 다 방해하더라도 농구만은 포기 못한다는 송태섭, 농구 하나에 미쳐 최고의 선수가 되기 위해 불굴의 정신으로 의도치 않은 도장 깨기를 하고 다니는 서태웅, 아무것도 모르는 도아후인 주제에 그런 서태웅을 이겨보겠다고 말도 안 되는 특훈을 버텨내는 강백호까지, 그리고 외견상 정상으로 보이지만 이 모든 인간들을 한 배에 태워 그것을 유지해 내는, 어찌 보면 가장 은은하게 미쳐있는 것 같은 권준호까지 함께 북산이라는 팀에서 2년을 버틴 인간이다.


이 빠르게 피가 끓는 속성의 싸움꾼들 사이에서 달재의 포지션은 송태섭과 함께 다니던 중학시절과 마찬가지로 불에 기름을 붓는 쪽보다는 아무래도 이들의 싸움을 말리고 진정시키는 쪽이었을 것이다. 과거에는 송태섭 하나만 말리면 됐을 테지만 이제는 배로 늘어난 다혈질 괴물들을 동시에 커버하면서. 그러니까 채치수 정대만은 권준호가, 송태섭 강백호는 이달재가 전담하는 식으로.


풍전전에 이르러 그동안 갈고닦은 달재의 이 북산 다혈질 컨트롤링이 드디어 빛을 발하게 된다. 흥미롭게도 남훈의 일본 이름이 미나미 츠요시(南烈)로 맹렬하고 사나운 기세를 의미한다면 달재의 일본 이름은 야스다 야스하루(安田 靖春)로 편안하고 평안하다는 의미의 단어가 두 겹으로 들어가 있다. 뜨거운 불을 진화하는 물처럼 풍전에게 있어서 달재는 최악의 상성이었던 셈이다.


순식간에 고점으로 치닫던 빠른 페이스의 골 쟁탈전이 침착하게 하나만 더 넣자고 템포를 늦추는 달재의 지휘하에 급속도로 열기를 잃어간다. 런앤 건의 속도에 익숙한 풍전이 가장 대응하기 까다로운 상대는 본인들과 같이 스피드로 승부하는 팀이 아니라 달재가 리듬을 만들어내는, 북산의 가장 큰 자원 중 하나인 채치수의 인사이드 장악력을 충분히 활용하는 근성 있고 끈질긴 농구였다.


안감독은 뛰어난 감각을 지닌 PG인 송태섭에게 부족한 부분을 우회적으로 알려준다. 지휘관이 흥분하면 팀이 흔들린다. 상대의 작은 도발에도 쉽게 넘어가는 송태섭의 본능적인 전투기질은 코트 위에서는 다소 정제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이상적으로 알려줄 수 있는 샘플이 바로 이달재다. 천지분간 못하는 농구 초보자 강백호에게 가장 훌륭한 모델이 서태웅이었던 것처럼. 그렇게 언제나 송태섭과의 1on1에서 참패하기만 했던 이달재의 템포가 적절한 타이밍으로 경기의 흐름을 바꿔내기 시작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풍전전의 북산은 달재의 농구를 한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신만의 페이스로.


불리하기 그지없는 게임에서 승리하는 방법 중 하나는 바로 그 게임의 룰 자체를 파괴해 버리는 것이다. 달재의 가장 강력한 강점 중 하나는 상대를 자신의 룰 안으로 끌어들인다는 점이다. 그는 파이터는 아니지만 플레이어로서 이걸 굉장히 잘 활용한다. 풍전이 압도적인 스피드와 득점력으로 초고속의 경기에서 무적이라면 이 게임의 전제인 스피드전을 자신의 느린 템포로 변주해 결국은 파기시켜 버리는 방식이다.


초짜인 강백호가 중요한 경기에 투입되면서 시야가 아예 바늘구멍처럼 좁아지던 것과는 달리 달재는 불리한 조건, 압박스러운 상황 속에서 천천히 심호흡을 하고 팀원들에게 첫 오더를 내린다.


"하나만! 침착하게 하나만 넣자!!"


달재의 이러한 응전방식은 정대만 흑역사의 정점이었던 농구부 최후의 날에도 잘 드러난다. 밀걸레로 사람을 밀어버리는 양아치들이 깔아놓은 판에 송태섭, 강백호, 서태웅은 모두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대응한다. 이미 수없이 많은 양아치들과 싸워왔던 송태섭이나 강백호만이 아니라 서태웅 역시 그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싸움을 걸어오는 상대에게는 싸움으로. 순식간에 여럿이 나가떨어지는 피칠갑의 상황 속에서 상황은 빠르게 불이 붙는다. 풍전과의 속도전처럼.


"부탁이에요. 그만 돌아가주세요."


 폭력사건이 벌어진 걸 들킨다면 모두의 꿈이 물거품이 될지도 모를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평안평안을 이름에 지니고 있는 이달재가 앞으로 나선다. 폭력을 폭력으로 막으려들던 연쇄를 단번에 끊어내면서 달재는 이 비극적인 게임의 룰을 아예 파기해 버린다. 동일한 방식으로 맞부딪히기를 바라는 상대의 의도와는 다르게 달재는 폭력이 아닌 언어와 이해의 영역으로 아이들을 돌아오게 만든다.


"올해는 좋은 신인도 들어왔고 태섭이도 돌아왔고 잘하면 좋은 성적을 낼 수도 있을지도 몰라요. 부탁입니다. 돌아가주세요."


내가 갖지 못한다면 파괴해 버리겠다는 유아적인 발상으로 부원들을 폭행하는 정대만과 양아치들을 상대로 달재는 설명을 하고 이해를 구한다. 상대를 구제불능의 문제아들로만 여겼다면 할 수 없는 행동이다. 달재의 희한한 구석 중 또 하나는 타인의 선의를 믿는다는 점이다. 한눈에 봐도 탈선의 정도를 (그래봤자 슬램덩크에 등장하는 양아치들의 수준은 건전하기 그지없지만) 즉각적으로 알 수 있는, 도무지 학생으로는 안 보이는 철이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달재는 그들을 폭력으로 제압해야 할 대상이라기보다 대화로 이해시킬 수 있는 대상으로 받아들인다. 진심은 반드시 통한다.  그는 스스로 정립한 자신만의 룰을 양아치 몇 사람을 만났다고 해서 수정할 생각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기 세기로 유명한 송태섭, 서태웅, 강백호가 달려들어도 정리가 안 되는 혼돈 속에서 가장 작고, 무엇보다 누굴 한 번도 때려본 적도 없었을 것 같던 이달재가 앞으로 나선다. 물론 세상은 그렇게 나이브하지 않아서 이후 흠씬 얻어터지기는 했지만 타인이 멋대로 정해놓은 게임의 룰에 동의하지 않는 달재의 개입으로 기류가 바뀌고 이후 농구부 최후의 날 에피소드는 채치수와 권준호가 돌아가며 정대만을 팩폭 하다 결국 안감독의 등장과 불량아의 회개로 이어지며 희대의 명장면을 탄생시켰다. '농구가 하고 싶어요.' (정대만 너는 꼭 나중에 달재한테 사과해라.)


강백호가 장난으로 거는 헤드락에도 벌벌대다가도 농구부 최후의 날도 그렇고 풍전전에서도 그렇고 가장 거칠고 위험한 순간에는 오히려 앞으로 나서는 아이, 그리고 그런 그가 불량배에게 머리를 숙여서라도 소중히 지키고 싶었던 농구부는, 그러니까 달재에게 농구란 어떤 의미였을까?


가장 보통의 존재가 피해자의 곁에 서다.


원작에서 송태섭과 이달재의 이야기가 제대로 다뤄진 적은 없지만 아마도 달재는 송태섭에게 농구가 어떤 의미였는지를 이해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실질적으로 집단적 이지메를 당하며 험악한 학교 생활을 해왔을 송태섭의 거의 유일한 친구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나약함을 감추기 위해 아이들이 부지불식간에 저지르고 마는, 가장 비열한 형태의 폭력 중 하나인 이지메는 그 특성상 도움을 주고자 하는 사람들조차 피해자의 곁에 서기가 매우 어렵게 만든다. 대체로 무리 지어 다니는 미성숙한 가해자들의 눈에 띄게 되면 그 역시 새로운 표적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의 반대편에 서려드는 경향이 있고 때로는 심지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혐오의 감정을 투사하기도 한다.


혐오는 자신이 가진 가장 근원적인 공포의 정체를 알려준다. 폭력 앞에 제대로 대항하지 못하는 약자들의 모습으로부터 혐오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는 자신 역시 순식간에 그런 무기력한 존재로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근원적인 두려움이 존재한다. 다음 피해자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생존 본능이 작동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피해자를 향해 연민과 연대를 보내기보다 그 피해가 자신에게 넘어오지 않도록 차갑게 선을 긋고 오히려 자신으로부터 가해자를 가장 멀리 떨어뜨려놓기 위해 피해자의 고립을 가속화시키는 비열한 선택을 하기도 한다.


송태섭이 오키나와를 떠난 게 초등학교 시절이었으니 이달재와 송태섭이 처음 만난 것은 중학시절이었을 것이다. 작 중 언제나 홀로 다니던 송태섭의 성격에 미뤄봤을 때 송태섭이 이달재에게 먼저 말을 걸었을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시빗거리를 찾아내려 드는 적개심으로 가득한 가나가와현 아이들을 상대하기도 바빴을 일상에서 별다른 특징도 없고 싸움판에 나타날 리도 없는 (아마도) 모범생 이달재에게 송태섭이 관심을 가질 리가 없다. 그러니까 이 둘이 친구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은 결국 이 관계의 주도권이 달재에게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마도 달재는 어디선가 얻어터졌거나 혹은 얻어터지고 있었거나 어쩌면 오히려 가해학생들을 패고 있었을지도 모를 송태섭에게 먼저 말을 걸었을 것이다. 그것이 무슨 내용이었든. 송태섭의 인생에 있어서 그의 중학시절은 아시다시피 오키나와에서 가나가와로 전학을 와 본격적으로 이지메가 시작되던 극악의 시기였으므로 말하자면 이달재는 송태섭이 인생의 가장 최악의 순간들을 맞이하고 있을 때 그에게 먼저 다가갔던 셈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달재는 송태섭에게 먼저 말을 걸었던 것일까? 농구 만화이니 만큼 아마도 달재 역시 초등학교 시절부터 농구를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 능남과의 연습 전에서 등번호 6번을 받아 들고 울먹거리던 모습에서 달재의 농구에도 꽤 오랜 역사가 존재할 거라는 단서를 읽는다. 채치수 지휘하의 북산 농구부는 단순한 부활동 수준을 한참 벗어난 곳이었다. 꿈에서조차 채치수의 호령에 시달리면서도 달재는 단 한 번도 북산을 떠나본 적이 없다. 어렵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 잘하지는 못해도 계속해서 하고 싶었던 것. 분명 그에게도 농구는 중요한 의미였을 것이다.


농구는 기본적으로 팀스포츠다. 혼자서는 할 수 없다. 무난한 성격의 달재에게는 아마도 친구들이 있었을 것이다. 많지 않을 수는 있어도. 그러니까 달재는 북산 농구부에 입부하기 전부터 이미 친구들과 코트 위를 뛰며 경기를 해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렇다면 그게 무척 즐겁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혼자 다니면서도 농구공을 들고 다니는, 팀플레이일 수밖에 없기에 결국은 함께 코트 위로 올라줄 누군가를 기다렸을 송태섭이 궁금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시에 이달재를 지켜보고 있자면 실은 농구는 그에게 별 상관없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달재는 다정하기 때문이다.


다정하다는 것은 그 누구보다 강인한 사람만이 유지할 수 있는 태도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진실로 다정하기 위해서는 정말로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그것은 돈이나 물질로 대신할 수도 없고 힘이나 권력으로도 채워 넣을 수 없는 정신적인 성숙의 영역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완전하다. 그래서 상황에 따라 어느 순간은 상냥하다가도 어느 순간은 비열해지기도 한다. 그 편이 자연스럽다. 살다 보면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입기도 하고 되려 상처를 주기도 하는 법이다. 개인의 힘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예기치 않은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행운과 불운의 교차 속에 지금껏 맺어온 관계의 역학이 뒤바뀌기도 하면서 우리는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용서를 하기도 하고 받기도 하면서 성장해 나가는 거다. 그것이 적절한 수준의 자극이라면.


그러나 때로는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용량을 넘어서는 사건들의 습격으로 상냥했던 자아에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거대한 상흔이 남기도 한다. 그렇게 어떤 부분이 망가져버리게 되면 사람은 돌이킬 수 없게 변하기도 하는 법이다. 언젠가는 넉넉하게 타인을 품을 줄 알았던 마음이 한 사람도 제대로 안아줄 수 없게 형편없이 위축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 가변적인 상황 속에서 다정이라는 태도를 한결같이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일관성이야말로 다정함의 전제이기도 하니까. 달재의 삶에도 고통과 굴곡이 없을 리가 없다. 드러나지 않는 많은 사건들을 경험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역시 자신의 내면을 정립해 나갔을 것이다. 송태섭이 스스로를 지키며 쌓아 올린 용감함처럼 달재는 다정함을 통해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이해한다.  


시작이 농구에 대한 흥미였든 아니면 단순히 사람에 대한 관심이었든 어쨌든 그는 송태섭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윽고 그가 처한 상황을 함께 인지했을 것이다. 다수의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한 사람을 공격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달재는 결정한다. 자신 역시 폭력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보다 훨씬 더 큰 어떤 마음이, 그러니까 부당한 일을 당하면서도 결코 굽히지 않는 어떤 아이를 향한 상냥함이 달재를 움직이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자신보다 덩치가 큰 선수들의 모습에 종종 흠칫 놀라고 질리도록 재능 넘치는 상대팀의 움직임에 자주 위축되는 달재를 떠올려봤을 때 그는 그리 용감한 편이 아니다. 사람을 편견 없이 바라보고 (그는 불량스러운 강백호의 외모에도 불구하고 그의 내면을 비교적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게다가 전술했듯이 농구부 최후의 날 정대만 패거리에게조차 편견 없이-두렵지만-정중하게 대화를 시도한다.) 상냥하게 타인을 돌봐주지만 영웅적인 행동에 앞장서는 타입의 성격은 아닌.


아마도 달재는 그런 자신과 전혀 다른 송태섭의 모습을 지켜보며 그와 닮고 싶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아무 이유 없이 가해지는 린치, 피해가 돌아올까 봐 선을 긋는 다른 아이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지지 않고 건방져 보이기까지 하는 태도로 물러나지 않는 그 강인함의 근원이 궁금했을지도 모른다.


그게 어느 날이었든 분명 달재는 송태섭에게 말을 건네었을 것이다. 수많은 아이들이 두려움에 비겁하게 외면했던, 그 작은 연결점은 송태섭에게도 어쩌면 꼭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 사이의 이야기가 작중에 제대로 드러난 적이 없기에 우리는 다만 이 둘이 같은 중학교를 졸업했고 함께 북산의 농구부에 입부했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서 비로소 송태섭의 이야기를 다루며 모두가 알게 됐듯이 이달재와 송태섭이 친구라는 사실은 집단적인 이지메에 시달리던 송태섭 최악의 시절을 이달재가 함께 했을 거라고 유추하게 만든다.


그 배경이 이지메가 가장 극심한 국가였던 일본이라는 사실 때문에 이건 더욱 놀라운 일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노우에의 슬램덩크가 연재되던 1990년대는 일본의 이지메 문화가 극에 달하던 시기였다. 학교에서만이 아니라 직장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하는 따돌림. 피해자를 보호하려 들거나 이지메를 저지하려들면 그 사람마저도 이지메를 당하는 악질적인 메커니즘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 등교를 거부하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집단의 정서를 중시하는 일본의 사회적인 분위기는 더더욱 다수에 속하는 가해자들을 거리낌이 없이 만들었고 피해자들을 필요한 도움으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오키나와인, 재일한인, 이주민과 외국인 노동자 등 일본에서도 가장 약하고 이질적인 존재였던 이들이 쉽게 이지메의 대상이 되어 고통받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피해자의 곁에 선다는 것은 얼마만큼의 결의가 필요한 일이었을까?


오키나와 사람이었던 미야기 료타. 필요하다면 세상 모든 것들과 다 싸울 것처럼 굴던 중학생 아이 곁에 어느 날 불쑥 머리 하나가 더 나타났다. 안녕. 나는 야스다 야스하루라고 해. 잘못하면 함께 이지메를 당할지도 모를 상황 속에서 야스하루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료타 곁에 서기로 마음먹는다. 좋아하는 농구도 다른 아이들과 더는 함께 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료타 옆에 서기로 결정한다. 겁이 많고 여리지만 이제껏 그 누구도 보여주지 못했던 용기를 작은 몸 안에서 쥐어짜 내서 말이지. 이름처럼 봄 같은 다정함. 어쩌면 그 순간은 아버지와 형이 사라진 이후 차가운 바다에 멈춰있던 송태섭 시간이 처음으로 움직였던 찰나였을지도 모르겠다.


달재가 강백호나 서태웅처럼 유별나게 재능있고 강인한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에서 나는 이상한 위안을 얻는다. 현실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가장 평범한 존재가 피해자의 곁에 선다는 것의 의미. 강백호의 곁에 선 양호열처럼 싸움을 잘하지도 못하고 남훈의 옆을 지키는 강동준처럼 농구를 잘하지도 못하지만 오히려 송태섭에게는 평범한 이달재의 존재야말로 가장 큰 위로와 힘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때문이다.


달재는 일본 주류 사회가 오키나와 사람들을 향해 가하는 구조적인 차별을 멈추게 할 수 없다. 이지메를 하는 가해자들을 말리거나 피해자들을 보호해줄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위로하는 것은 어떤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바로 작지만 따뜻한 일상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구조적인 문제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미래에도. 그러나 따뜻한 일상은 사람으로 하여금 가혹한 현실을 버틸 수 있게 만든다. 언제나 그랬었다.


달재는 송태섭의 문제를 해결하진 못하지만 그의 일상이 되어준다. 송태섭에게 가해지는 구조적인 차별과 폭력은 전과 변함없이 지속됐을 것이다. 그가 더 강하게 성장하면서 빈도와 강도는 달라졌을지라도. 그러나 분명 그 날 이후 송태섭의 세상은 전과는 달라졌을 거야. 달재가 그의 곁에 있기에 송태섭은 바짝 날이 서 있는, 오키나와에서 온 이질적인 존재가 아니라 보통의 학생이 될 수 있었다. 함께 등하교를 하고 점심을 먹고 농구를 하고 시비를 걸어오는 놈들로부터 함께 도망치기도 하는, 바로 달재가 있는 풍경. 다정한 사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변화다.


가장 보통의 존재가 용기를 낼 때야 비로소 세상은 바뀌는 법이다. 사람은 결코 홀로 싸울 수 없다. 그리고 모든 순간을 투쟁하며 살 수도 없다. 결국 생을 채우는 것은 소소한 일상. 그리고 긴 싸움에 필요한 것은 긴 호흡. 로우템포로 이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강력한 응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송태섭이 폭력사건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 농구부로 돌아온 날, 달재는 즐겁게 그와 함께 1on1을 한다. 여지없이 또 지기는 했지만 변함없이 뛰어난 기량을 보이는 친구의 복귀를 누구보다 기뻐하는 달재 옆에 서있는 송태섭의 얼굴에 고등학생다운 장난기가 가득하다. 가나가와현의 아이들에게 린치를 당할 때도, 정대만 패거리와 옥상에서 대치할 때도 도무지 아이의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표정을 짓던 어른스러움이 사라진, 좀처럼 쉽게 보여주지 않던 아이의 얼굴을 거리낌 없이 보여줄 수 있는 대상. 송태섭에게는 가족이 아닌, 그러니까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첫 존재가 이달재였을 거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윤대협과의 1on1처럼 농구 실력 향상에는 큰 도움이 되진 않았겠지만 송태섭은 달재와의 대결이 무척 즐거웠을 것이다. 고통으로 무거운 그의 농구가 숨을 쉴 수 있는 가벼운 공간을 달재가 만들어줬다. 그리고 이 곳에서 송태섭은 처음으로 안전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완전한 무장해제. 작지만 커다란 위로.


작은 체구에 결코 용감하다고 할 수 없는 여린 성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주저하지 않는 이 이상한 아이는 걸려오는 시비를 피하지 않고 다 박살내려드는 또 다른 작은 아이와 함께 시간으로 보내며 닮아가기 시작한다. 아무리 꺾으려 들어도 결코 꺼뜨릴 수 없는 송태섭의 투지와 용기를 가장 가까이서 목격하면서 달재 역시 조금 더 견고하게 자신의 내면을 쌓아나갔을 것이다. 송태섭이 달재의 다정함으로부터 위안을 받으며 애정을 나누는 법을 서툴게 배워갔을 것처럼.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성장하기 마련이니까.   


나는 정말로 달재가 홀로 다수의 폭력에 맞서 굽히지 않았던 송태섭으로부터 용기를 배웠을 거라고 믿는 편이다. 상냥한 마음에 그 용기가 더해져 결국은 농구부 최후의 날 달재는 박철 패거리 앞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시비가 붙으면 맞붙으려 드는 송태섭을 진정시키기 바빴던, 싸움을 싫어하고 회피하고자 했던 아이가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앞으로 나설 수 있었던 것은 강인한 다정함으로 스스로가 그 곁에 서기를 선택했던, 그래서 결국은 배워가기 시작한 어느 친구의 용기를 빌려왔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걸 좋아한다.


소중한 것들을 다정하게 지켜내며


수없이 가해지는 린치를 받아내면서도 결코 중요한 것들을 포기하지 않았던 송태섭처럼 달재 역시 거칠게 날뛰는 거대한 체구의 양아치들 앞에서 뒤로 물러나지 않는다. 그것은 물론 그 자신에게도 농구가 소중했지만 동시에 자신의 친구에게 농구가 어떤 존재인지를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물론 주장인 채치수에게도.


송태섭의 긴 방황을 지켜보며 달재는 북산의 농구부가 그가 돌아올 장소가 되길 바랐던 것 같다. 송태섭의 깊은 상실과 슬픔,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구 코트 위를 떠나지 못하는 그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부상이 회복되면 반드시 돌아올 친구를 위해 달재는 농구부를 소중하게 지키려 든다. 본격적으로 회개한 정대만이 합류하기 전의 북산. 채치수 말고는 이렇다 할 선수도 없는 작은 무명의 농구부라도 서태웅과 강백호의 합류로 이제 막 새로운 가능성이 엿보이는, 그래서 어쩌면 송태섭이 눈부시게 개화할 수 있는 토대가 될지도 모를, 그리하여 바보스러울 만큼 우직하게 농구를 향한 열정을 불태우는 주장의 전국제패라는 허무맹랑한 꿈이 현실화될 수 있을지도 모를 장소를 그는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했다. 실로 다정한 마음이다.


본능적인 감각으로 타인의 내면을 직관하는 타입인 강백호와 서태웅이 유달리 치대는 인물이 바로 달재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달재의 이 상냥한 내면을 기민하게 감지한다. 다소의 애정결핍을 보이는 강백호는 북산 농구부에 흥미를 느낀 이후로 유독 달재를 자주 납치한다. 시시콜콜한 부의 이야기나 자신이 잘 보여야 하는 주장 채치수에 대한 정보 수집하기도 하고 궁금한 게 있으면 스스럼없이 물어볼 수 있는 인물이 바로 달재인 것이다. 다소 거친 방식의 접근이지만 달재는 그런 강백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준다. 빨간 머리에 문제아로 유명하지만 만만치 않은 희대의 문제아 송태섭과 함께 다녔던 시절 쌓아 올린 강단만으로도 달재는 선배 노릇을 제법 잘 해낸다. (그가 정말로 강백호를 두려워했다면 이미 오래전에 '부탁이니 그만해줘'라고 정색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강백호는 그 다정함을 정말 좋아한다.


외톨이었던 아이의 곁에 기꺼이 서길 마다하지 않던 소년. 압박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해내고야 마는 흔들리지 않는 내면과 타인의 선의와 진심의 힘을 믿는 강인함까지. 자신보다 덩치가 큰 불량배들에게 위협을 받으면서도, 스포츠답지 않은 폭력적인 경기 운영 방식에 맞닥뜨리면서도 자신만의 페이스를 잃지 않는 단단함으로 달재는 자신의 가장 큰 강점을 타협하지 않는다. 한두 번 얻어맞았다고 해서, 거친 파울을 당한다고 해서 스스로의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하고 신뢰 가득한 시각을 수정하지 않는다. 다소 고집스럽게 달재는 타인의 가장 선한 면을 발견하려 노력하고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에게 상냥한 배려와 연대를 잊지 않는다. 언제나 중심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그리하여 누구에게든 곁을 기꺼이 내어주는 작은 나무처럼.


그러니까 나는 다정하다는 것이 단순한 성격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어느 순간 상냥했다가 쉽게 차가워지는 그런 변칙적인 것이 아니라 이 수많은 사건들 속에서 혼란과 화해를 반복하며 탄탄하게 쌓아 올린 어떤 변함없는 경향성. 마음이 박살 나더라도 그것을 그러모아 다시 누군가를 안아줄 수 있는 공간을 기어코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달재의 다정함이 지닌 가장 강력한 힘이다. 강백호에게 양호열이 있듯, 송태섭에게 달재가 있어 정말로,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언제까지고 소중한 것들을 다정하게 지켜낼 것이니까. 몇 번이고 북산을 위기에서 구해냈듯이.


시간이 흐를 수록 나는 점점 더 우리에게는 달재와 같은 존재가 더 많이 필요하다고 믿게 된다. 어느날 대단한 누군가가 나타나 모든 문제들을 일거에 해결해줄 수 있는 게 아니라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 곁을 지키려고 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용기가, 그 다정함만이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는 생각때문이다.


그러니까

다시말하지만,

가장 보통의 존재야말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그렇게 믿고 있어. 진심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