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는 <정치경제학비판>에서 "의식이 물질적 생활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 생활이 의식을 규정"한다고 했다.
서울에서 전주로 돌아오는 고속버스 TV에서 예멘의 조혼문화에 반대하는 소녀들의 이야기와 유럽 전역으로 퍼지고 있는 여성인권운동 'FEMEN'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봤다. 무함마드는 9살짜리 여아자이와 결혼하여 살았다고, 그래서 그런지 이슬람 국가에선 조혼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남자 여자 둘 다 어릴 때, 또래 아이들이 결혼하는 건 그렇다쳐도 스물 여섯살 남자가 열두살 여자아이와 결혼한다. 결혼이 성사되는 건 간단하다. 남자들이 어린 아이들을 보고 '나와 결혼할 아이를 고르'면 된다. 대개 남자들은 학교를 마친 여자아이와 결혼하길 원하지 않는다. 아니, 학교를 마치길 싫어한다. 학교를 마치면 처녀성을 잃기 쉽기 때문이라나. 그래서 아이들이 어린 나이에 나이 많은 사람에게 시집 보내는 가족을 떠나고, 엄마를 고소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FEMEN 운동은, 여성의 육체는 자유로워야 하고,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여성으로의 자유고, '내 몸은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이유로 여성들이 반라(상의탈의)로 시위를 하는 것이었다. 가슴에 FREE를 써놓고. 그런데 여성들의 가슴이 전부 하얗게 가려져 있었다. 이게 의문이 들었다. 똑같은 다큐멘터리인데 <아마존의 눈물>에선 여성들의 젖가슴을 그대로 내보냈으면서, FEMEN을 다룬 이 다큐에선 여성의 젖가슴을 가린다. 자연그대로가 아니라 '이념'이 포함되었기 때문인가. 그놈의 이념이 대체 뭐길래 이렇게 나라의, 물리적으로 약자인 여성을 괴롭히는가. 종교가 대체 뭐길래.
국가에도 문화가 있다. 여기서 고민할 것은 그 문화를 그저 문화로 여기고 방치하느냐, 여성에게(또는 특정집단에게) 불합리하다고 제재를 가할 것인가가 충돌한다. 학부 때 철학과 복전하면서 들었던 <도덕철학>에서 발제했던 부분과 일맥상통한다. 여성할례도 그렇고.
삼 년만에 만난 친구와 언쟁이 있었다. 그 친구는 "일단 나는 기득권이고, 여당을 지지한다"고 했었다. 그것까진 좋다. 유럽에 대한 얘길 하다 독일 얘기가 나와서, 독일에 니체니 칸트, 헤세 같은 사람들을 책모형으로 세워놓은 조형물을 본 적 있냐, 정말 멋있는 것 같단 내 말에 "그깟 철학자들, 돈도 안 되는 거 해서 뭐한다고"하는 식의 말을 했다. 그래서 나는, 모든 학문의 뿌리는 인문학이고, 인문학의 뿌리는 철학이라고 했더니 그 친구는 아니라고 했다. 중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였는데, 일단 그 친구는 지금 직장인이고 나는 아직 대학원생이다. "진짜 친구는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 다 커서 만나는 친구가 진짜 친구다"라는 엄마의 말이 조금이나마 이해됐다. 사회문화적 공통분모가 없을 뿐더러 생각하고 있는 가치판단도 그렇고 너무 달라서 당황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