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라도 나에게 답을 알려줘
나는 1년마다 사주를 보는 이상한 습관을 가졌다.
지나고 보니 늘 신년 혹은 연중에 한 번은 '사주'를 보며 지금 나의 상태가 어떤지를 항상 체크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100% 맹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주로 항상 내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를 대비하고는 했다.
물론, 안 좋은 이야기들은 뒤로한 채 내 귀에 걸리는 이야기들만 남아 계속 한 해 동안 상기시키곤 했다. *늘 고집이 세서 어차피 좋은 이야기 안 좋은 이야기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들을 거란 사주 선생님들의 말이 생각난다.
처음 사주에 발을 들이기 시작한 것은 대학시절 지하상가 5,000원짜리 타로였다. 앞으로 나의 상황에 대해서 궁금하면 찾아가 봤었던 것 같다. 확률은 반에 반도 못 미쳤고 심지어 아주 뚱딴지같은 점이 나왔을 때는 이미 대학교 3학년쯤 되어서야 '아, 이거 다 미신이구나' 할 정도로 나는 타로점에 관심도 많았고 늘 내 미래가 궁금했다. *단순한 궁금증이었다. 5,000원도 늘 비싸서 볼까? 말까?를 망설였다.
취준생이 되어서는 친구와 함께 먼 곳의 사주를 보러 다니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사주는 정말 확률적인 것들이라서 반의 반도 타로의 확률만큼이나 내 미래를 잘 맞추지는 못했다. 취업준비생으로 오래오래 늙어갈 것 같은 그 시절의 두려움은 취준생 지갑에서 5만 원, 10만 원을 빼갔다. 그리고 그 사주는 모두 틀렸다.
*늘 모든 것은 과거는 잘 맞추지만 미래는 잘 맞추지 못한다.
그렇다 보니 나도 내 사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간략하게 아는 수준이다.
- 40대에 부동산으로 성공한다
- 사주에 '토(흙)'가 많다
- 외로움을 많이 탄다
- 자유롭다
- 고집이 세다 (답정너)
- 건강 (소화기관, 장, 생식기) 이 좋지 않다, 유의해라
- 결혼은 늦게 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대부분 누군가에게 할 수 있는 말들이기도 한 것 같다.
그 외에는 월별로 나타나는 특이한 이슈가 전부였는데 그런 자잘한 이슈들은 정말 확률이 50% 였다. 작년에는 과로로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했는데 정말 과로 때문에 병원신세를 몇 차례 신세 졌다. 50.5% 만 넘어가도 '그 집 사주 선생님 용한 것 같아'라는 소리가 나오곤 했다.
그리고 최근 남자친구와 신년이 한 참 지나기는 했지만 신년사주를 보러 가게 되었다. 작년 신년 사주를 보고서 꽤나 맞는 것들이 있어서 올해도 역시 어떨까 싶은 마음에 올 해는 신년사주와 궁합을 보게 되었다.
나와 남자친구의 생년월일을 분석하던 사주 선생님께서는 남자친구 그리고 나를 순서대로 봐주셨다. 대부분 남자친구도 나도 서로의 사주에 대해서 알고 있던 상태였기에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꽤 놀라웠는데 우리의 관심이 집중된 것은 바로 '궁합'이었다.
둘, 전생에 엮였었네요! 남자분이 조부모, 여자분이 손주예요.
도대체 그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사주선생님께서도 남편분과 이런 사주라고 하는 것이 위로였는지 공감이었는지 조차도 분간이 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냥 '재미'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주를 듣다 보면 이렇게 알게 모르게 '진짜일까?' 싶은 재미의 요소들을 발견하게 된다.
늘 남자친구와 이야기했던 것들이 있었다. '우리는 도대체 전생에 뭐였길래... ' 좋으면 좋은 의미로 싸우면 싸운 의미로 늘 우리는 우리의 전생에 대해서 궁금해했다. 그런데 궁합점을 보니 전생에 조부모 - 손주의 관계라니. 그 답은 나름 서먹했던 우리를 웃게 했다. 그 이후로 이어진 대답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서로의 톱니바퀴에 맞추듯이 맞춰가는 합이라니. 심지어 결혼도 서두른다면 내년 1월이지만 현실상 어렵기에 3년 안에 결정이 날 것이라고 했다. 천생연분까지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그다지 좋은 평은 아니라는 생각과 동시에 누구나 할 수 있는 추론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꼬박 1시간을 넘게 앉아서 서로의 사주와 궁합을 보고 나오니 왠지 알 수 없는 허기가 졌다.
남자친구와 기가 빨린 것인지 아니면 사주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하느라 그랬던 것인지 우리는 한편에 위치한 피자집에서 피자 한 조각과 사이다를 허겁지겁 먹었다. 그렇게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꽤나 골똘히 그동안의 사주를 봤던 시간들을 생각했다.
왜 그렇게 과거를 미래를 궁금해할까? 사실, 듣고서도 늘 나는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말이다. 꼭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 보고 실패도 하고 성공도 하면서 살 것을.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사는데 약간의 느껴지는 불안감에 작은 합리화라도 심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내 선택이 맞다는 타인의 지지와 응원을 얻고 싶은 것이었을까?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집에 다다를 쯤에서야 이제 내 미래를 궁금해하는 일 따위는 집어치우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남들 눈치 보지 않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늦기 전에 더 후회하기 전에
어차피, 확률게임
나는 믿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