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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대리 Mar 14. 2024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있나요?

저는 지금이 좋습니다 

회사 앞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나란히 위치해 있다. 


어느 날엔가 점심시간에 소화를 하기 위해 학교를 크게 한 바퀴 돌았는데, 점심시간이라서 그런지 학교 안이 참으로 복잡스럽고 시끄러웠다.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길게 늘어선 식당줄 그리고 그 안에서 장난치고 있는 교복 입은 학생들의 모습을 잠시 넉을 놓고 바라보았다. 


20대 중반부터 길거리에서 짧은 교복, 타이트한 교복, 리폼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저게 교복이야, 사복이야'라는 생각을 하곤 나 혼자 그 모습이 우스워서 웃었다. 겨우, 그 학생들과 얼마 차이도 나지 않으면서 조금 어른이 되었다고 어른짓을 하는 것이 참 웃겼다. 그런데 이제는 그 나이를 세는 것이 의미 없을 정도로 서른 줄이 넘고서 교복 입은 학생들을 보니 그 자체로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주어진다면 나는 저 시절로 돌아가고 싶을까? 




나는 단 번에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전혀 학창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가 않다. 


학창 시절의 나는 조용했고 소심했지만 같이 어울리는 친구들에게만큼은 재미있고 활발한 사람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T와 F의 비율이 7:3 정도인 것 같은데 사실 엄청난 기쁨 그리고 엄청난 슬픔 앞에서 오히려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라서 츤데레라는 오해를 많이 받기도 했다.


학창 시절에 꽤 친했던 친구가 있었는데 어느 날 키우던 페릿이 무지개다리를 건너면서 한 동안 점심도 거르고 울기만 했었다. 그때 나는 그 친구의 아픔을 감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기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휴지를 챙겨주거나 점심을 거른 친구가 걱정되어 조용히 매점에서 간식들을 사다 주고 집에 데려다주는 것이 전부였는데 나중에 말하길 그런 것들보다 자주 위로의 말을 건네주기를 바랐다며 나에게 서운하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꽤 상처를 받았던 것 같다. '괜찮아?'라는 말조차도 나는 그 친구에게 실례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건 친구 사이를 멀어지게 만드는 행동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늘 학기 초에는 북적이던 내 주변이 '츤데레'라는 이유 혹은 '무심하다'는 이유로 늘 학기 말에는 친구들과 사이가 소원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 친하고 오래 본 친구들은 늘 내 곁에 남아주었다. 나는 아직도 그 친구들이 고맙지만 이제는 서로 다른 길들을 가느라 너무도 자연스레 사이가 소원해졌다. 

그래서 그런지 나에게는 항상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참으로 소모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학창 시절이었다. 지금에서야 혼밥, 혼술 등 '혼자서'라는 수식어가 전혀 이상하지 않지만 그 당시에는 '혼자서' 무언가를 한다는 행위 자체가 그리 좋게 비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나에게 행복했던 기억이라면 부모님과 주말 저녁마다 집 근처 삼겹살집에서 거하게 회식을 하고 노래방에서 점수내기를 했던 여름날 밤, 시험이 끝나고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우리가 자주 가는 떡볶이집 순대볶음집을 가던 때, 일요일마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가서 아이쇼핑을 하고 먹을 것들을 잔뜩 사 와 개그콘서트를 보며 마무리하던 밤, 야간 자율학습을 처음으로 빼먹고 친구들과 노래방에 갔던 날 등이 나에게는 학창 시절 교복을 입었던 그 시절에 느꼈던 행복한 기억의 전부이다. *아직도 이것들 외에는 딱히 나에게 '행복'으로 남은 학창 시절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인생을 살아온 거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늘 조용했고 학생이라는 본분을 다하면서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늘 참고 책임감으로 버티며 살아왔던 K-장녀였던 것 같다. 지금은 온전히 내 삶을 누리고 자유롭게 살아가니 당연스레 나는 과거 보다 현재가 더 좋아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나에게 누군가 다시 재차 '과거로 정말 안 돌아가고 싶어?'라고 질문을 한다면 부모님이 지금의 내 나이였을 때 내가 고작 초등학교 6학년이던 그 시절로 돌아가서 부모님의 청춘을 다시 보고 싶다고 늘 생각한다. 그리고 만약 돌아간다면 나는 부모님께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를 생각하곤 한다. 


나는 과연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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