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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대리 May 19. 2024

홍어와 막걸리

나날이 예민해지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복잡하지 않은 단순함이다 

예전만 하더라도 나는 '소음' 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조용함 대신에 적막함을 깨고 그래도 울려퍼지는 여러 소리들이 좋았다. 바람, 사람들 이야기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 공사소리, 택배소리, 배달소리 등등. 왜 그 모든 것들이 그 당시에는 좋았는지 나는 모르겠다. 소음 혹은 소리가 주는 공간감, 혼자 있는 느낌이 덜해서일까? 


그런데 지금은 그저 모든 세상의 소리를 듣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나에게는 여유가 없어졌다.


출처 : 퍼블리


이직에 이직 그리고 퇴사와 퇴사. 반복되는 이직과 퇴사에 지칠대로 지친 멘탈을 이끌고 '이번 면접에 모든 걸 걸어보자. 아님 말고' 식으로 반차를 쓰고 카페로 나왔다. 면접까지는 20분. 커피 한 잔을 식사로 떼우기 좋은 시간이다. 여름이 코앞으로 다가와서 그런지 직장인들에게는 점심을 먹고 복귀할 시간에 많은 사람들은 핫플레이스로 뛰어나와 자신들만의 시간을 만끽하고 있다. 어찌나 나라는 사람은 꼬였는지 나는 그 모습에 '다들 뭐하고 살길래, 이 시간에 나와서 놀고 있는거지?' 라는 마음이 불쑥 입으로 새어나왔다. 한탄이다. 


카페에서 내 입맛에 맞을지 모를 아이스 더치라떼 한 잔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자 앞뒤로 지긋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삼삼오오 모여 저마다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무도 가까이 앉아서 그런것인지 아니면 목소리가 너무나도 큰 것이었는지 내 앞에 앉아계신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은 모임에서 알게 되었으며, 할머니는 이번에 따님 덕분에 갤럭시 최신 사양으로 핸드폰을 바꾸셨으며, 지금 막 들어온 할아버지는 그 업계에서 굉장히도 유명한 인사였으며, 오늘 이 카페는 굉장히 흡족하다는 이야기를 나는 단번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들을 수 있었다. 



면접을 잘 보라는 남자친구의 전화마저도 달그락 거리며 몰려드는 주문탓에 분주해진 카페 주방의 북적임도 브런치 시간에 연년생 남자아이 둘을 데리고 나와서 이리저리 카페를 휘젓는 모습을 어찌할 바 모르는 부부의 모습도 나는 보고 듣고 있자니 편두통이 몰려왔다. 


결국, 노트북과 커피잔을 들고 가장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위잉- 위이이이잉!!!


날카로운 철사 자르는 굉음이 내 귀를 찔렀다. 카페 옆에 인테리어 현장 목공소가 있다니. 심지어 이러한 핫플레이스에. 나즈막히 울리는 클래식함에 굉음이 섞여 굉장히 기괴한 소음이 만들어졌다. 나는 잠시 멍하니 내 앞에 위치한 면접을 보게 될 회사를 바라보다가 눈물을 흘렸다. 너무나도 이유없이 화가나면 그 화가 절정을 지를 쯤에는 뒷목이 아주아주 많이 뻐근하다. 그리고 그 뻐근함과 분노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찌할 바를 모를 때에는 그냥 눈물이 나온다. 


마치 세상이 나를 '억까' (억울하게 깐다 등등의 의미) 한다는 말이 몸소 느껴지는 하루였다. 





잠시 생각해보면 유독 예민참이 차고 넘치는 날이다. 

별 것도 아닌 일에도 나는 괜시리 예민해졌다. 


괜시리 한 끼 굶어서 예민해지기도 하고, 지옥철 하루이틀도 아님에도 내 옆에 의도치 않게 붙어선 사람에게 불쾌감을 느끼고 (상대도 원치 않았을텐데 말이다) 아이들의 해맑음마저 노이즈캔슬링을 하고 싶을 정도로 아무런 소리도 사람도 없는 곳에 외로이 홀로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도 이제는 그런 날에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나는 너무나도 잘 알게 되었다. 


그런 날은 내가 많이 지쳐있다는 뜻이다. 여유가 없을 정도로. 내가 아주 많이 지쳤다는 증거이다.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려서 먹고 싶었던 홍어를 샀다. 그리고 막걸리도. 집으로 돌아와서도 반차를 써서 그런지 아직도 하늘은 맑았고, 해는 쨍쨍했다. 빠르게 씻고서 잠시 아무런 소음도 없이 막걸리에 홍어를 먹었다. 행복했다. 행복은 그리 멀리있지 않은데 오늘 내가 유독 예민했던 건 아무래도 배가 고팠고, 허기졌고, 쉬고 싶다는 간절함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했다. 홍어와 막걸리에 나는 다시 평정심과 여유를 찾았다. 


고작 홍어와 막걸리에 나의 하루의 끝은 괜시리 나의 예민함으로 나를 스쳐갔던 모든 이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이렇게 쉽사리 풀어질 것을 나는 왜 그리도 예민하게 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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