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가 언제 서른 넷이 된거니!? 아직 서른이잖아, 나이 올리지 말아~'
주말마다 부모님을 뵈러 갈 때면 항상 부모님은 내 나이를 듣고 놀라신다.
그도 그럴것이 나는 아직도 부모님께 서른 언저리에 있는 아이같을 뿐, 서른 넷 서른 중반에 접어든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가에 머무르는 날에는 늦잠을 자더라도 꼭 아침을 먹으라며 나를 깨우시고, 내가 좋아했었던 치킨 혹은 음식들을 한아름 퇴근길에 사오신다. 그리고 아직도 부모님과 술한잔을 기울이는 나를 새삼 신기하게 쳐다보기도 하신다. 월급받는 직장인의 삶을 산지도 꽤 되었건만 아직도 부모님은 식당에서 내가 돈을 내는 행동에 '괜찮나!?' 하는 우려섞인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곤 하신다. 아직도 부모님 눈에 나는 서른 아니 서른 중반이어도 그냥 '아이' 일 뿐이다.
그래서일까? 아니, 부모님 때문은 아니다.
사실, 나는 아직도 미성숙한 사람이다.
아직도 변덕이 죽 끓듯이 끓고, 짜증을 내다가도 웃고, 웃다가도 울고, 감정에는 얼마나 솔직한지 감정이 고스란히 표정에 드러나는 사람이다. 이유없이 싫기도 하지만 이유없이 좋기도 하고. 곧 죽어도 내 고집에 미안하다는 말은 왜 그리도 나오지 않는지. 그나마 사회 생활에 단련되면서 회사에서는 모나지 않은 철저한 어른으로서 어른인척 하는 삶을 살아가는 미숙한 어린이에 불과하다.
연애는 어떤가, 싸우고 화해하고 싫었다가 좋았다가 애정결핍이었다가 자유롭고 싶다가. 가끔은 내 연애 상대방에게 미안함이 들기도 하다가 늘 나만 예뻐해주길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들이 마구마구 든다. 나는 되지만 너는 안되는 내로남불 마음에 나는 자괴감이 든다. 어린아이처럼 떼쟁이가 되기도 하고, 질풍노도 시기의 사춘기 여중생이 되기도 한다. ( 적고보니 내 상대의 연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
이런 내가 결혼을 할 수 있을까?
이런 내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이런 내가 대형 프로젝트를 맡을 수 있을까?
이런 내가 회사 밖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런 내가 팀을 이끌라고!?
이런 내가 집을 사서 집주인이 된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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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런 내가' 어떻게든 살아지는 걸 보면 그저 신기하고 경이롭다.
쭈구리같은 내가 글을 쓰고, 이직을 하고, 집을 사고, 연애를 하고,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팀을 이끌고.
시간이 흘러가 저절로 얻는 것들이 있지만 결국은 시간이 흘러가 어린이이고 미성숙한 나의 모습을 점점 드러내지 않고 어른인 척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가는 것에 나는 내가 스스로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때때로 '나는 아직 어린데.. 나는 아직 어리다구요!' 라는 말이 내 목 끝까지 올라오지만 결국 그 마저도 이제는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를 조금은 알게 된 나이가 되었다.
그래도 나는 아직 아빠에게 받는 용돈이 좋고,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이 좋고, '넌 잘하고 있어, 충분히 잘 하고 있어' 라는 말을 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기 보다는 그런 말을 듣는 게 더 좋은 미숙하지만 자라나고 있는 서른의 중반을 걷고 있다. 우리 모두 잘 하고 있다는 응원의 말을 건네는 내 동년배들의 그나마 행복하게 살아간 사람이 되고 싶지만 나는 그저 잘 버티고 있는 서른 중반의 흔한 직장인일 뿐이다.
그래도 우리 잘하고 있지..?
좀 미숙하면 어때, 지금을 잘 살아내고 있는 걸.
이 치열한 인류애가 사라져가는 현실에서 나는 오늘도 내 몸뚱아리를 잘지키고, 굳건히 사무실 내 책상 하나를 온전히 지켜내었으니 오늘도 그것으로 나는 만족한다. 가끔은 이런 사소한 일상을 버텼음에 나는 나를 응원한다.
그런 날이 필요한 날이 있다.
그냥 특별한 이벤트가 없는 하루를 잘버텨냈다고 응원해주는 날, 그런 날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