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울대리 Aug 16. 2024

우리 모두는 어쩌면 좀 취해야 할지도 몰라

스무 살이 갓 되었을 무렵에 왠지 ‘어른 흉내’가 내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오뎅탕에 쑥갓까지 듬뿍 넣어 맛 좋게 끓여놓고 집 앞 슈퍼에서 소주병을 하나 샀다.

‘학생이 마셔?’ 라는 슈퍼 할머니 말에 빙그레 웃으며 ‘네’ 를 대답하곤 당당히 소주병을 봉지도 없이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예쁜 잔까지 꺼내어 오뎅탕 한 입에 소주 첫 잔을 들이켰다. ‘으웩’ 한 잔을 입에 털자마자 그 맛은 참으로 썼다. 너무 썼다. 매우 지독히도.  회식할 때는 선배들이 주고, 동기들이 주니까 그냥 마셨는데 정말 아무런 일이 없이 소주를 마시니 그 맛은 ‘쓰다’ 그 자체였다. 나는 소주는 냉장고에 넣어두고 사이다로 오뎅탕을 맛있게 먹었더랬다.


그게 내 첫 혼술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혼자서 ‘어른’ 흉내를 내보겠다며 소주 한 잔도 버거워하던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혼술을 시작했던 시기가 바로 30대였다.


조금은 흐릿해야 살아가는 세상


친구들이 결혼할 때 나는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그 때 집 냉장고에도 갖가지 재료들이 많았는데도 조미김 하나, 소주 한 병, 물 한 컵. 그렇게 혼술을 시작했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소주 한 병이 늘 손에 들려있었다. 남들은 잘 연애하고 잘 결혼하는 것 같은데 그런 시기에 맞이하는 헤어짐은 마치 ’소울대리 인간관계 실패‘라는 낙인을 찍어주는 것 같았다. 그저 남녀 사이에 흔한 헤어짐이었을 뿐인데 주변 친구들이 하나 둘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있는 상황에 나는 이별을 맞이하니 왠지 뒤떨어져 있는 실패자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 소주 한 잔은 정말 달았다. 며칠을 그렇게 아무런 안주도 갖추지 않고 소주와 물로 혼술이 계속되었다. 상대방이 그리워서라기보다는 그저 마음이 참 헛헛했고, 그런 기분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방법을 잘 알지 못했다. 심지어 그 시기에는 그 비싼 위스키도 한 번에 다 마시고 다음날 토하고 술병에 앓아눕는 바보 같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가끔은 자극적인 안주가 어떠한 말보다 도움이 될 때가 있다


그렇게 두 번째 혼술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때에 내 혼술은 내 건강을 위협하기도 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밥 대신에 빈 속에 늘 소주와 물, 제대로 된 식사도 하지 못했으니 건강을 잃는 건 당연했다.


어쩌다 보니 남들이 결혼을 할 때, 나는 집주인이 되었다. 그리고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이직도 하고, 부동산이라는 세계에서 ‘부’ 하나로 서로의 과거와 나이 그리고 직장을 따지지 않고 오로지 부동산을 공부하는 사람들과 커뮤니티를 갖기 시작하면서 내 환경들은 점점 바뀌어가고 있었다. 다만 문제라면 집주인이 되고서 매 달 나가는 대출이자가 아까워서라도 집에 애정을 가지고 붙어있게 되었다. 그러니 당연히 집순이가 되고, 집 곳곳에 내 손이 안 닿은 곳이 없다. 그리고 집에서 먹는 혼술과 혼밥이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이제는 예전처럼 즉흥적으로 충동적으로 감정적으로 술만 찾지 않는다. 조금은 귀찮아도 최대한 나의 혼술 안주는 직접 내가 요리를 한다. 술도 가끔은 소주, 맥주, 복분자, 위스키, 하이볼, 전통주 등 주종도 그날의 내 취향에 따라서 선택하기도 한다. 혼술을 위해 멀티쿠커와 에어프라이어도 구비하고, 트러플 소금부터 온갖 향신료를 구비할 만큼 나는 내 혼술안주에 진심이다.


시간이 갈수록 변하지 않는 초록병과 파란캔의 취향은 오리지널 그 자체이다


그렇게 세 번째 혼술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얘기한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술 먹는 행위에 그리고 술에 취한 행동에 ‘지적’을 한다. ‘으이그,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술을 마시고.. 쯧쯧’ 심지어 나이가 들어서 마시는 혼술은 청승맞다고도 표현을 하고, 아직도 술을 마신다고 하면 철이 없다고 표현을 한다. 그래서 나는 한 때 ‘나이가 들면 술을 안 먹게 되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사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스스로 주량을 알아야 하고 더더욱 남들 앞에서는 조심을 해야 한다. 언제까지고 내 나이도 잊은 채 술만 마시면 20대로 돌아가 머리에 꽃을 꽂은 미친년처럼 다니고서 다음 날 사과를 하는 짓은 그만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건 나이의 문제가 아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조심을 하고,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덜 조심해도 되는 문제도 아니다. 그저 늘 술을 앞에 둔 모두가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나이가 지나면 지날수록 나도 이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삶의 문제들이 늘 내 앞에 놓여있다.


내가 커갈수록 나이가 들어가는 부모님에게 큰 목돈이 필요하게 되어 내가 가진 적금을 깨고 드린 후 의젓한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했다는 마음도 들지만 마음 한 켠으로 허무함과 속상한 마음이 드는지 나도 잘 알 길이 없다. 그럴 때에는 누군가에게 동네방네 이런 일이 있었다고 얘기하는 것보다 그저 조용히 내 집에서 ‘그래, 잘했다. 잘했어 내 자신‘ 이라며 훌훌 털어버리기에 소독약처럼 소주 만한 처방약이 없다. 경력직으로 무언가 연봉만큼의 밥값은 해줄 거란 사람들의 기대를 안고 입사해 그만한 성적을 내지 못했을 때 그리고 나만 아는 실수를 나만 발견하게 되었을 때 다가오는 답답함과 기운 빠짐, 그 무거움과 부담감은 그 저녁 히야시가 잘 된 맥주가 최고의 처방이다. 이제 막 육아를 시작해서 아이도 울고, 나도 울고 싶어지는 순간에 모두가 잠든 저녁 그저 소맥 한 잔이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친구들 육아 고충의 이야기이다, 아이는 이쁘지만 육아는 고통스럽고 본인의 적성이 아니라며 수화기 너머로 울었던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


그냥 추적추적 비 오는 날 집에서 혼자 아무런 간섭도 없이 멍만 때리고 도파민만 충전하다가 부침가루를 더 넣어야 하는지 물을 더 넣어야 하는지 모르게 어쩌다 만들어진 부침개에 막걸리 한 잔이 이 세상을 다 가진 행복으로 다가오는 날도 있을 것이다.


술이 결코 보약이라는 이야기도 아니고, 술이 무조건 해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도 지금의 내 인생이 처음인 것을 그 속에서 술 한 잔 기울일 여유는 있어야 이번 생도 좀 살만하지 않을까?

멀쩡히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가기에는 참으로 세상은 조금 퍽퍽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약간은 취해야 조금은 세상이 아름다워 보일지도 모르기에 나는 오늘도 혼술, 이라고 자기 합리화를 해본다.








이전 01화 나는 어쩌다가 혼술이 취미가 되었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