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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대리 Feb 18. 2024

용의 꼬리일까? 뱀의 머리일까?

전 회사에서 이직 제안이 왔다

어떻게 요즘 잘 지내니?
다름이 아니고 얼굴을 한 번 보고 얘기하면 좋을 것 같은데?



새로운 회사에 출근한 첫날, 나의 첫 회사의 상사에게 번갈아 가면서 전화가 왔다. 전화의 요지는 ’함께 일하자 ' 는 스카우트 제안이었다. 새로운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새로운 이직 제안은 참으로 솔깃하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 마음이 무거운 제안이기도 했다. 첫 회사는 으레 그렇듯이 애증의 관계다. 




<처음> 이라는 이유로 사회 초년생으로서 영혼을 갈아 넣었던 일들의 연속. 


아무것도 모르지만 열정 하나로 했던 일들. 그리고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회사에 대한 고민을 같이 모색하며 삼촌, 아빠뻘의 아저씨들과 함께 논쟁을 펼치면서도 회사에 제대로 된 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신념으로 버텨온 그 주옥같은 나날들이 하나하나 애증으로 남았다. 아직도 첫 회사의 상사들이 전화가 오고, 술자리를 함께한다는 이야기를 하면 내 주변 사람들은 놀라곤 한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지?’에서 시작해서 ‘아저씨들과 무슨 얘기가 가능하니?’로 끝난다. 생각보다 다른 건 없다. 그저 상사이지만 동료인 사람들과 술 한 잔에 회사에 대한 회포를 푸는 일. 


그뿐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퇴근을 하고서 첫 회사의 상사들과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리고 좀처럼 시간이 나지 않는 서로의 일정을 고려해 저녁시간 온라인 화상회의로 남은 이야기를 마무리 짓기로 하였다. 부랴부랴 퇴근을 마치고 회의 준비를 했다. 그리고 접속한 대표와 오랜만에 인사를 나누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새로운 회사를 세우고 싶은 대표는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적임자로 나를 뽑은 것이었다. 여러 가지 사업에 대한 계획과 구체화된 그림들을 이야기하다가 나는 ‘그래서 조건이 어떻게 되는 거예요?’로 원론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버버 하던 27살의 사회 초년생과 33살의 직장인은 그동안의 갭차이가 생겼다.


대표 : 그건 네가 같이 일하는 의지가 있으면 천천히 맞춰가는 거지
나 : 음. 제가 4년 전하고는 많이 달라졌어요. 지금 제 연봉은 0000 만원이고, 저도 이 수준에 맞춰서 지금 제 생활이 돌아가고 있어요.
대표 : 음. 그동안 많이 받고 있었구나. 그래, 너도 많이 달라졌겠다
나 : 업무는 이해했고, 근무조건에 대해서는 맞춰주시는 걸로 이해하면 되는 걸까요?




언제나 ‘돈’ 얘기는 참으로 무겁다. 



무겁고 예민한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가볍고 위트 있게 하는지 나는 그 방법을 모른다. 하지만 첫 직장에서 나는 3년 내내 3,000만 원이라는 박봉으로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일을 해왔고 계약직 직원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동안 혼자서 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모든 일들을 했다. ( 물론, 그 덕에 지금까지 커리어가 쌓인 것 같기도 하지만 늘 모든 것은 동전의 양면이다) 


하지만 그 끝에 돌아온 건 더티한 '퇴직금' 정산이었다. 그래서 ‘애증의 관계’가 될 수밖에 없으며 나에게 근로 조건 중 연봉은 참으로 중요한 사항이 되었다. 더 이상 ‘하하’ 웃으며 수긍하는 시기를 너무 지나버린 때 묻은 직장인이 되었다. 화상회의의 결론은 1주일간 생각해 보는 것으로 결론이 되었고, 대표는 마지막까지도 내 연봉을 맞춰주겠다는 이야기 대신에 '그 정도는 우리도 해줄 순 있을 거야' 의 애매모호함으로 대신했다. 그리고 애매모한 대답은 오히려 나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현재의 회사는 기존에 내가 해왔던 업무에 플러스가 되는 요소들이 있었다. 다시 사회 초년생의 마인드로 돌아가 스터디도 해야 하고, 조금 더 상위 레벨로 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산업군에서는 우위에 속하는 쪽이었다. 고로 굳이 따지자면 용의 꼬리였다. 반면, 제안받은 첫 회사 대표의 회사는 이제 막 세워지는 스타트업이었다. 그나마 믿을 건, 대표님의 인사이트 그 외에는 아무것도 정해진 것은 없었다. 하지만 일 만큼은 너무나 흥미로웠고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앞 단에서 움직이는 플레이어였다. 굳이 따지자면 뱀의 머리였다. 남자친구와도 심도 깊은 (?) 논의가 이어졌지만 어느 것도 쉽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음이 편했다. 그 편안함의 이유를 나중에서야 알 수 있었다. 

결국, 나는 [용의 꼬리]가 되기로 했다. 


전 회사의 대표는 구구절절 많은 이야기들로 1개월이 넘게 나를 회유하였지만 나는 사과와 함께 제안을 고사하였고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생각보다 복잡한 제안으로 결정을 내리기가 참 힘들었는데 마음만은 편했다. 제안을 고사하고서야 내가 알게 된 것은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의 연봉에 애매모호함으로 대답을 한 (구) 대표의 마인드가 다시금 27살의 나의 기억을 불러왔다.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사람의 본색은 결코 변하지 않는 법이다. 멀리 거리를 두어야 할 사람이 있고, 가까이 두며 깊이를 알아갈 사람이 있다. (구) 대표는 나에게 전자와 같은 사람이었다는 걸 잠시 긴 시간이 지나서 퇴색할 만큼 잊고 있었다. 


'어떠한 조건이었으면 갈래?' 라고 묻는 남자친구에게 나는 꽤 많은 고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조건이었어도 (구) 대표와는 함께 일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일들이었지만 고로 그것은 다시금 사회 초년생으로 돌아가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며 박봉으로 의리로 정으로 그리고 그 끝은 사업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일단 해보자는 실체 없는 비전으로 가득한 제안이었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서로 각자의 영역에서 고군분투하며 느끼는 것들이 있었을 테니 나는 그것에 아주 잠깐의 '희망'을 품고 그리고 옛 애증의 관계로나마 (구) 대표의 이야기를 오래도록 들었던 것 같다. 



나의 긴긴 고사하는 문자에 대한 답은 '그래, 잘 지내라'는 단답이었다. 그리고 그 단답은 내 선택이 조금 더 나은 결정이었음에 힘을 실어주었다. 용의 꼬리가 되든 뱀의 머리가 되든 어떠한 조건에서 결정을 내리기 조금 쉬운 방법은 바로 어느 쪽이 덜 찝찝하냐는 것이다.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찝찝함과 미련 그리고 잘 된 결정인가에 대한 후회는 남지만 오히려 '덜' 남는 쪽으로 선택하는 것이 그나마 낫다. 


것이 용의 꼬리이든 뱀의 머리이든

그렇듯이 버텨낼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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