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울대리 Feb 22. 2024

대표님은 왜 그럴까?

퇴근 마지막에 회의를 하는 이유 

소울대리, 우리 잠깐 이거 이야기 좀 하자 


퇴근 30분을 남겨놓고 대표님과 1:1 회의가 열렸다. 

급한 대로 대표님 자리에 나란히 앉아서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봤다. 


내일 오후 1시가 제안서를 제출해야 하는 마감일이라 사실상 오늘 밖에 시간이 없는 셈이다. 

문제는 제안서를 지금에서야 다 뜯어고치고 싶은 마음이 드는 대표님의 이상과 현실의 충돌 그 사이에서 나는 퇴근을 하지도 의견을 낼 수도 없는 입장에 놓여있었다. 입사를 하자마자 나는 이 제안서 작업에 메인으로 투입되었고, 거의 한 달이 넘게 나는 자리에서 제안서만 붙잡고 있느라 이제는 누가 자다가 내 옆구리를 찔러도 우리 제안서의 내용이 술술 나오는 지경이었다. 물론, 수십 번 보고도 했고 우리 제안서의 방향에 대한 콘셉트 회의도 타 팀원들과 대표님과 자주 많이 아주 오랫동안 했다. 문제는 그때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지금 보이기 시작했고 생각보다 선정률에 가까워지자 대표님의 마음은 조급과 경쟁의식이 활활 타오른 것이었다. 



이거 고치고, 이건 이렇게 보완하면 좋겠고, 이건 내가 자료 줄게 한 번 편집해 줘. 

그리고 이거 이렇게 가자! 그게 좋겠다. 

그럼 이렇게 바꾸면 되고, 이 수치는 경영팀에 한 번 확인해 주고 이 장표 강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나는 순간 속으로 '뭐지? 왜 코앞에 닥친 시험 벼락치기 하는 사람처럼 이렇게 급급하게 하는 걸까?' 라는 생각과 동시에 그 동안 스쳐지나간 기억들이 하나 둘 씩 새록새록 떠올랐다. 


하루 종일 내가 마지막으로 검토해 달라는 요청에도 '네' 단답으로만 보내다가 퇴근 직전에 와서야 하필 내용을 보완하고 싶어 하는 심리. 나는 모든 의문을 꾹 눌러 내리고 '네, 알겠습니다. 의견 주시는 대로 보완하겠습니다'로 인사를 하곤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하나 둘 직원들이 나가고 텅 빈 사무실에 나 혼자 음악도 없이 앉아 타닥 거리는 키보드 소리와 철컥 거리는 마우스 소리만이 사무실을 감쌌다. 




도대체 내 퇴근은 언제가 될까? 



나도 이렇게 야근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야근을 해야 하는 상황도 있지만 왕복 4시간 출퇴근 거리는 나를 야근 혐오자로 만들어버렸고, 지난 회사에서의 불필요한 비효율적인 야근의 기억은 나를 6시만 지나도 좀 쑤시게 만들었다. 한 참을 보완 작업을 하다 보니 큰 문제들에 대한 보완은 아니었다. 조금 더 색상이 이쁘면 좋겠고 (나는 디자인 전공자가 아니다) 조금 더 우리 회사의 강점이 수치로 잘 드러나면 좋겠고 (이건 내 영역이 아닌 경영팀의 확인 필요한 영역이다) 과거 레퍼런스에 대한 사업들이 조금 더 추가되면 좋겠고 (이것 또한 대표의 셀렉이 이루어져야 하는 영역이다) 고로 입사 1개월 차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다지 없는 보완요청이었다. 결국, 한 참을 대표의 쉼 없는 요청사항을 반영하여 마지막 최종본을 넘겼다. 



음. 이 정도면 이제 내가 혼자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 퇴근하고 내일 마저 합시다! 



텅 빈 사무실을 부랴부랴 나와서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겨우 1시간 야근을 했을 뿐인데 집에는 거의 10시가 가까워 도착을 했다. 밥을 먹을까, 반주를 할까 고민을 하다가 남은 당근 하나로 저녁 끼니를 때우곤 잠을 청하기로 했다. 그리고 당근을 씹으며 생각했다. 



세상에 내가 만난 대표들은 퇴근 코앞에서야 회의를 하는 걸까? 

왜 하필 그제야 집중력이 살아나는 걸까? 



대부분 내가 만났던 대표님들은 그러했다. 특히, 중소기업에서 지원 사업의 제안서는 곧 기업의 레퍼런스와 먹거리(수익)로 연결되는 중차대한 과업이기 때문에 어떤 대표님은 제출 1.5일을 남겨놓고 내용을 다 드러내고 싹 바꿨으며, 어떤 대표님은 제출 직전에야 벼락치기하듯이 자신의 발표 흐름에 맞춰 제출 직전까지 구성을 바꾸느라 제출 1시간을 남겨놓고 부랴부랴 마지막 작업을 했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게 다 끝났다고 생각한 무렵 퇴근을 앞두고 대대적인 회의가 진행되더니 결국 새벽까지 밤샘작업을 한 끝에 제안서를 제출하고 그다음 날 뻗어버린 적도 있었다. 



아무리 잘하고 우는 시늉을 하며 봐달라고 징징대어도 결국 코 앞에서야 '이건 아닌 것 같아. 우리 회의하자!'라는 말이 나오는 건 대표로서의 만국 공통의 DNA 인걸까? 만약, 내가 대표가 되었다면 어땠을까? 그들의 퇴근 전 회의 의도가 이해가 되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직원으로서 긴긴 의문끝에 결국 나는 오늘도 내 자리에서 나의 밥벌이를 버텨냈음에 나 자신을 격려했다. 


내일도 버티자 





작가의 이전글 다낭성 난소 증후군을 아시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