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당신을 못 잊고 있어요
며칠 전에 <사장학개론> 김승호 회장님의 강연을 보게 되었는데, 첫 강연의 시작이 바로 '2030은 강아지, 고양이를 키우지 말라는 것'이었는데 나는 그 말에 적극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우리 가족과 '견 (犬)'의 동거는 꽤 오래되었다.
아주 어렸을 적에 단독 주택에 살기 시작하면서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고 싶어 했던 우리 가족에게 처음 찾아온 건 바로 '곰순이'였다. 당시에 큰 고모가 강화도 섬에 살고 계셨는데 거기서 기르던 진돗개가 새끼를 낳으면서 그중 가장 까무잡잡하고 곰같이 생긴 녀석이 우리에게로 온 것이었다. 통통하고 귀여운 그리고 시커먼 밤톨이 같은 녀석에게 우리는 곰순이로 이름을 지어주었고, 마당에 작은 집도 놓아주었다. 몇 개월 후,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고 하교하던 오후에 엄마는 안절부절을 못했다.
그러고는 나에게 '잠깐 마당 청소하는 사이에 곰순이가 집을 나가버렸어 어쩌니' 라며 나에게 곰순이 집을 가리켰다. 몇 날 며칠을 울면서 밥을 안 먹었는지 모른다. 심지어 그날은 동네에 개장수가 떴던 날이었는데 아무래도 나가자마자 개장수에게 붙잡혀 간 것이 아닐까라는 우리 가족의 추측은 나를 더 슬프게 했다.
그 이후에 동네 할머니에게서 분양받은 시츄 '이슬이'를 키우게 되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지하철에서 엄마의 눈에 밟혀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믹스견 '토토' 어쩌다가 엄마와 사랑에 빠져버린 슈나우저 '아리'까지.
우리는 그렇게 세 마리의 견이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함께했다
그러다 내가 지방으로 대학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홀로 원룸 살이를 시작했다. 늘 내 옆에서 나를 깨워주던 세 마리의 강아지와 누군가 오면 미친 듯이 짖어대는 소리가 없으니 참 허전했다. 그래서 한 달에 서 너번은 부모님과 강아지를 보러 서울로 가곤 했다. 그러던 중 졸업을 1년 남겨놓고 지인으로부터 '너 강아지 안 키울래?'라는 제안을 받게 되었다. 너무 뚱딴지같은 소리였는데, 나는 곧 졸업 후에 서울로 올라갈 예정이기 때문에 고사를 했다. 그런데 그 지인은 강아지가 너무 예쁘다고 '네가 안 키우면 내가 키워야겠다. 그래도 난 강아지를 잘 모르니까 같이 가서 봐줄 수 있어?!' 라며 나와 함께 친구 한 명을 더 대동하고 강아지를 데리러 갔다.
강아지를 데리러 가는 차 안에서 짤막히 들은 이야기는 견주가 이제 졸업하고 본가로 가야 하는데 비밀리에 강아지를 키운 터라 강아지는 같이 갈 수가 없어서 분양을 한다는 것이었다. SNS에 올린 사진 상으로 강아지는 많이 어려 보였지만 참 예쁘게 생긴 여우 같은 녀석이었다. 같이 가는 내 마음도 좋지는 않았는데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주인은 나에게 '하늘이 좀 잘 부탁드려요' 하며 조수석에 훅 강아지를 올려놓곤 부랴부랴 사료와 이런저런 집기들을 차에 실었다. 산책 가러 온 줄 알고 하네스까지 찬 강아지는 나의 품에 안겨 덜덜 떨더니 마치 주인에게 '너는 왜 안 타는 거야!?'라고 묻듯이 짖었다. 얼마나 키웠는지 모르겠지만 대략 6개월 정도 된 것 같았다. 강아지의 상태는 건강해 보였지만, 그때는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이 상황이 강아지에게 얼마나 상처로 깊이 남았는지.
지인의 집에 도착하자 부모님께서는 마중을 나와계셨다. '엄마, 강아지 이쁘죠?!' 나에게서 강아지를 받아간 지인은 부모님에게 자랑을 했는데, 부모님께서 정말 탐탁지 않아 하셨다. 알고 보니 부모님 허락도 없이 무작정 강아지가 이쁘다는 이유로 입양을 해와선 허락을 받을 심산이었던 것이다. 부모님은 단호하셨고, 하루 만에 다른 곳을 알아보라며 강력하게 집에도 못 들이게 하셨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다른 주인을 찾을 때까지 임보를 해주려던 나는 녀석의 주인이 되었고, '하늘이'라는 이름 대신에 '별'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누군가들의 대책 없음과 무책임으로 주인을 잃은 '별'과 원룸에서의 동거는 쉽지 않았다. 집을 조금만 비웠다가 돌아오면 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분리불안에 이갈이까지 게다가 에너지는 또 어찌나 넘치던지 주말에는 4시간 이상씩 산책을 해줘야 했다. 밥도 정말 잘 먹고, 싸기도 많이 쌌다. 하지만 나 역시도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바로 졸업 후, 서울로 가야 하는 나에게도 별이는 큰 문제였다. 하지만 나도 부모님도 강경했다. 이미 3마리를 키우고 있는 부모님에게 미리 양해를 구했고 몇 날 며칠 부모님은 나와 별이를 받아들이기 위해 부부싸움을 하셨다. 결국 긴긴 싸움 끝에서 나와 별이는 서울 가는 차에 탈 수 있었고, 우리 집은 4마리의 견과 동거를 하게 되었다.
여차하면 나는 부모님이 허락을 해주시지 않는다면 자취방을 얻어서 나갈 생각도 하고 있었고, 취업 전까지 지방에 더 머물 생각도 하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주인이 바뀌는 일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별이가 오고 얼마 되지 않아 제일 막내인 '아리'가 요로결석으로 세상을 떠나 4마리에서 3마리가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나이가 오래된 이슬이는 백내장과 귓병을 앓다가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복수가 차서 힘들어하던 토토는 병원 진료를 받으며 의사 선생님과 오랜 결정 끝에 우리 가족은 토토를 안락사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그렇게 지금은 우리 가족에게 별이가 남았다.
벌써 10년, 우리 가족은 별이와 함께했다. 아직도 나는 별이의 나이를 모른다. 아직도 밝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어 뛰는 것도 힘들지만 웃는 모습이 참 예쁜 친구다. 에너지도 식욕도 어찌나 넘치는지 모른다. 그런 별이랑 함께 산책을 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나는 것 중에 하나는 10년을 함께해도 별이는 젊은 남자 사람만 보면 특히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만 보면 주인인 나도 안중에 없이 무조건 달려가서 안긴다는 것이다. (우리 가족 중에는 흡연자가 없다 ) 지금 나에게 별이를 키웠던 전 주인도, 별이를 데려오고자 했던 그 지인도 이제는 연락처나 정보 아무것도 없지만 얼핏 그 당시에 차창 너머로 본 주인은 남자였다는 사실 그것만 분명히 기억이 난다. 손에 담배 냄새가 가득해서는 정말 귀찮다는 듯이 옆에서는 여자친구가 울고 있었던 것 같다.
잘 지내시나요? 별이는 벌써 저와 함께 10년을 함께하였고 이제는 앞니도 다 빠지고 관절도 약한 노견이 되었습니다. 별이는 심장이 약한 친구예요. 그럼에도 3년 전에는 요로결석으로 심장이 약한데도 불구하고 큰 수술을 이겨냈어요. 아직도 '하늘'이라는 이름에 반응을 하고, 남자사람만 보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하고, 아직 우리 가족에게 10년이라는 시간을 같이 했음에도 곁을 안주는 분명한 선들이 보이곤 합니다.
씁쓸하지만 불쌍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 번쯤은 별이가 하늘이었던 시절의 주인을 꼭 만나게 해주고 싶지만 찾아낼 길도 연락할 길도 없어서 저는 늘 '별'이의 주인으로 화가 나기도 마음이 아프기도 그렇게 분양하고 가는 심정을 이해해보려고도 하며 그렇게 지내왔습니다. 강아지 나이로 10년이 지나가고 별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면 한 번이라도 전 주인을 만나게 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냥 모르는 채로 저희 가족과의 즐거운 추억으로 안녕을 해주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철없던 시절에 단순히 귀여운 마음으로 잠시 키우던 강아지가 있었는지도 아마 지금 기억이 안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해합니다.
그만큼 시간이 흐르기도 하였고 너무 짧게 키우셨기에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잠시 함께했던 강아지는 아직도 평생을 전 주인을 마음에 두고 살아가는 것 같아 현주인으로서 꼭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아직도 당신을 못 잊는 강아지를 위해서라도 모든 준비와 마음이 서지 않았다면 제2의 별이를 만들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떠나가면 그만이지만 그 상처를 평생 가지고 살아가는 하늘이 혹은 별이는 아직도 전 주인을 그리워하는 눈으로 저를 볼 때마다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바람을 쐬어주거나 간식을 주는 일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별이는 사랑이 큰 아이라서 당신을 못 잊는 것일지도 모르고, 저와 저희 가족은 굳이 그걸 잊으라며 억지로 덮을 생각 없이 오롯이 별이가 편하도록 함께해 왔습니다.
혹, 나중에라도 별이가 하늘이가 생각난다면 그때 그렇게 누군가에게 쫓기듯이 차에 태워 인사도 없이 보냈던 것을 조금이나마 후회해 주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이는 아마 지금에라도 당신을 보면 알아보고 달려가 꼬리를 흔들지도 모르는 그런 친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