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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대리 Feb 28. 2024

일요일에 뭐 하시나요?

저는 전국노래자랑을 봅니다

아주 어렸던 시절 내가 태어나고 자란 신림동에서 엄마는 동네 ’ 통장(반장)’ 활동을 하셨다.


지나고 생각해 보니 그 시절에도 지금도 엄마는 항상 어느 무리에서 리더로서 인싸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동사무소에서 줄곧 행사에 참여해 맛있는 음식들을 늘 얻어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가장 기억에 남는 행사가 있는데, 바로 < 전국노래자랑>이다. 그 시절 우리 동네에서도 <전국노래자랑> 방송을 한다며 각 동에 ‘통장’ 들을 통해서 모든 동네 주민들이 대대적으로 방청 참여를 하라는 무언의 공고가 내려왔던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엄마의 손을 따라잡고 동생과 함께 방청석 주민으로 앉아 녹화에 참여를 하였다. 엄마는 응원단장으로 신림동 주민으로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어떤 노래든지 항상 뒤에서 춤을 춰주고 분위기를 돋우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나는 방송 현장을 본다는 신기함 그리고 연예인‘송해’ 아저씨를 마주한다는 놀라움으로 무대를 지켜보다가 너무 길어지는 녹화시간 때문에 모르는 할머니 무릎에 곯아떨어졌다. 그래서 나의 기억은 방송녹화에 참여했다, 엄마는 응원을 했다, 송해 아저씨를 봤다는 기억이 끝이다. 그것이 나의 첫 <전국노래자랑>의 경험이자 기억의 전부다.


송해 아저씨가 돌아가신 후, 한 동안 <전국노래자랑>의 MC는 누가 될 것인가? 에 대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던 시기가 있었다. 누가 되더라도 참 막대한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자리였는데 개그우먼이자 방송인 김신영 님이 되고서도 한 동안 뜨거운 주제로 오르락내리락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집은 아직도 방송 수신료를 내고 있지만 스마트 TV로 내가 볼 수 있는 건 OTT와 유튜브 채널 밖에 없다. 케이블을 연결하면 얼마나 볼까 싶어서 그리고 평일 내내 시간을 내기가 힘들어 연결을 하지 못했는데, 남자친구의 집에 들렀다가 우연히 일요일 점심 새로운 사회자 김신영 님의  <전국노래자랑>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부터 지금까지 1년 동안 나는 일요일 점심마다 <전국노래자랑>을 본다.


<전국노래자랑>을 보는 재미가 쏠쏠해졌다는 건 어쩌면 내가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수줍게 나와서는 육아 스트레스를 풀며 락큰롤을 선사하는 어머님의 노래, 찌든 직장인과 대표로서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광기 어린 눈빛의 인테리어 사장님, 사람 좋은 미소로 나와서는 건들거리며 최신 세대 노래를 꿰뚫고 계신 칠순의 할머니, 조부모님의 대한 애정으로 곱게 차려입은 한복을 입고 나온 초등학생 자매, 친구들과의 즐거운 추억을 위해 웃긴 분장에 교복을 데코레이션 하여 준비한 안무까지 깔끔하게 준비한 여고생들까지. 게다가 지역의 특산물과 특산품 구경은 덤이다. 그렇게 <전국노래자랑>의 매력에 빠졌다. 이제는 일요일 점심에 챙겨보지 않으면 좀 궁금할 지경이다.


우연히 오늘 점심도 <전국노래자랑>을 보다가 ‘나는 왜 일요일마다 이 프로그램에 빠졌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채널과 플랫폼이 다양해질수록 이제는 <전국노래자랑> 말고도 시민들의 일상과 삶 그리고 특출 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는 채널이 참 많아졌는데 나는 그 오리지널이 바로 <전국노래자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쩌면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향수를 간직한 유일한 프로그램이라서 갑자기 감수성이 풍부해진 30대가 되어서야 더더욱 일요일 <전국노래자랑>을 찾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끝에 엄마의 손을 잡고 따라다녔던 그 시절의 나와 30대의 동네 인싸로 거듭났던 신림4동 반장 신여사님의 젊음이 느껴져서 나는 일요일마다 <전국노래자랑>을 보며 90년대로 여행을 떠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전~국~ 노래자랑, 송해 아저씨의 인트로가 아직도 귀에 서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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