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공구, 살기 위해 했습니다

천국에 먼저 간 성모 꽃마을 38기 동기들에게

by 안부

"가연아, 너 그러다 큰일 나.“

”한 조각 만 드세요. 괜찮아 괜찮아.“


방에 누워 수다를 떨다 치킨이 가장 먹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치킨을 시켰다. 이제 막 항암을 마치거나 항암 중인 사람들은

진짜 치킨이 배달되자 기절할 듯 놀랐다.


나는 먹고 싶은 건 먹고살자는 주의였다.

나를 제외한 대다수의 사람 들은 물 한 모금조차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엄마는 직장 때문에 곁에서 돌봐줄 수 없어,

미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조심스레 말했다.

“시설이 잘 갖춰진 요양원에 가는 건 어때?”

나는 고개를 저었다.

“환자들이랑 같이 있으면, 내가 더 아파져서 힘들어.”

내 감기 기운이 앞자리 사람의 말기 암보다 더 괴로울 리 없다는 건 알았다.

그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 스트레스가 가슴속에 뿌리처럼 내려앉았다.


”크리스티나, 청주에 성모 꽃마을 이라는 곳이 있어. 거기 가 볼래?“


성당 지인은 청주에 신부님이 운영하는 암 환자 교육 시설을 추천해 주셨다.

그분의 말을 듣고 마음이 흔들렸다. 엄마의 걱정을 줄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매일 미사 책 맨 뒤 표지에 몇 년째 광고가 실리는 곳이긴 하지만

눈여겨본 적은 없었다. 일주일 교육을 들으면 일주일 쉼터를 이용하거나,

한 달 동안 장기 요양을 할 자격이 주어진다고 했다.

특별한 일정이 없던 나는 망설임 끝에 접수일을 기다렸다.

매월 둘째 주 월요일에 접수 전화만 받는다.

입소문을 타고 인기가 많아져 입소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담당자 연결이 얼마나 어려운지 몇 번의 고배 끝에 통화가 이루어졌지만,

대기자로 남아야 했다.


‘이 교육이 더 필요한 사람이 있겠지’


대기하는 것조차 잊혀져 갈 때쯤 나에게 기회가 왔다.


낯가림이 심했던 나는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38기로 입소했다.

하루의 일정을 간략하게 듣고 6인실 배정을 받았다.

다양한 연령층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 기수 중에서 내가 가장 어렸다.

나의 철없는 말과 행동에도 언니들은 그저 웃으며 잘 챙겨 주었다.

”이거 유기농이에요? 간이 너무 쎄다. 환자들을 이렇게 해주면 어떡해.“

첫 날 저녁. 여기저기 불만이 터져 나왔다.

차라리 환자식이 아니어서 좋았다. 정성 가득 들어간 샐러드와 각종 나물,

다양한 조리법으로 만든 음식들. 시중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식재료를 쓰니

색다르고 맛있기만 했다. 볼멘 소리가 들리자 신부님은

예상했다는 듯 당황하지도 않고 의연하게 대처했다.


”다들 집에 가면 외식 안 할 거예요? 여기서 일주일 환자식 한다고 뭐 달라지나?“


틀린말이 아니기에 조용해졌다.

‘굳이 왜 맛없는거 먹으면서 스트레스를 받는가‘의 내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맘에 쏙 들었다.


오전에 미사를 드리고, 2시간 정도 교육을 받았다.

암 환자가 된 사람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그리고 오후에 잠깐 레크레이션을 하고 나머지는 모두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너무 편하고 좋았다. 고요함도 좋았다.

저녁이 되면 정원 가운데 크게 세워져 있는 예수님 동상 앞을 맴돌았다.

갑자기 암환자가 되면 적절한 치료도 중요하지만 심적 위안이 더 필요한 상황이 된다.

교육을 받으며 친해진 우리는 장기요양을 신청하기로 했다.

한 달을 같이 보내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교육생들 중에서 비교적 어린 편에 속해서 였을까.

화장품 이야기, 다이어트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옆방의 어르신들이 말하는 건강식품에는 관심 없었지만

어떤 화장품이 좋다고 하면 함께 공구를 진행했다.


당시 108배가 살 빼는데 특효라고 하자

우리는 매일 오전 강당에 모여 108배를 연습했다.

다양한 부상자가 속출하여 일주일만에 멈춰야 했다.

우리는 하루하루가 두려웠지만 즐거웠다.

공기 좋은 곳으로 여행도 함께 했다.

평창으로 가는 길에 어느 가수의 자살 기사를 보게 되었다.

그의 선택에 주영언니는 한 숨을 쉬었다.


”우리는 하루라도 더 살아보려고 발악하느라

이 곳 저 곳 찾아다니는데, 진짜 허무하다.“

그 사람은 얼마나 힘들었기에 그런 결정을 한 걸까.

몸이 아픈 것과 마음이 아픈 것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너무 아플 때 그런 생각을 해보았기에 이해가 됐다.

세 살 아들을 키우고 있는 보순언니가 말했다.


“난 오늘도 우리 경목이 스무살까지 만 살게 해 달라고 기도했어.”

그 기도를 너무 잘 들어주신 걸까. 다른 기도는 안 들리셨던 걸까.

두 번의 재발에도 잘 버텨온 언니였다.

올해는 아들이 열 아홉. 지금 한 달 전부터 고열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보낸 카톡 메시지의 숫자가 없어지지 않는다.

성모 꽃 마을 38기. 하나 남은 내 마지막 동기.

하늘에서가 아니라 지상에서 만나길. 이 걱정도 나의 기우였길 간절히 바란다.

내가 쓴 글이 상을 받았을 때 시력이 떨어져 볼 수 없다고

녹음해서 보내달라던 주영언니,

여자는 피부가 생명이라며 양산이 없으면 밖을 나가지 않던 뽀얗고 예쁜 진선이,

청담동 며느리지만 박근혜와 문재인 사이에서 홀로 싸우고 있던 나리언니,

(내가 마흔 되니 이해되는) 늘 만 나이로 자신을 소개하던 현욱언니 ,

인기 많은 블로거가 될 수 있었던 주영언니,

모녀가 유방암에 걸려 엄마와 교육을 같이 듣게 된 승희언니,

백치인가 싶을 정도로 언제나 밝은 미소로 함께 웃게 만들었던 히피족 수정언니.

이제 나와 보순언니만 남겨놓고

하늘에서 천국의 친구가 된 사람들.


우리 동기들은 지상의 지분보다 하늘의 지분 더 많아졌다.

오늘도 하늘에 대고 말한다.

“나 조금만 더 신나게 놀다 갈게. 어디 가지 말고 기다려.”

“나 낯선 곳 무서워 하니까 모두 버선발로 마중 나와 줘.”

“우리 꼭 만나자.”

“다들 그때까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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