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사람> 읽고 50km 걸은 초등 3학년 조카들
“헬프미 헬프미 도와주세요. 누구든 저희 좀 도와주세요.”
나지막이 들려오는 강희의 외침이었다.
가는 길목에 편의점만 있으면 여정이 하나도 힘들 것 같지 않다는
기세는 어디로 갔을까.
시작한 지 세 시간이 지나자 고개를 들지 못하고 조용히 외치고 있다.
나의 첫사랑 쌍둥이 조카들.
너무 작고 소중하기만 하던 아이들이 어느덧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조카아이들은 하정우의 <걷는 사람>을 읽은 후 도보 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다.
어린아이들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기특해서 입꼬리가 올라간 채로 물었다.
“그래서 누구랑 가는데?”
내 물음에는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가만히 들어보니 참여자는 언니, 조카들과 나, 이렇게 네 명.
당연히 내 의사는 묻지 않았다.
만나자마자 여행 브리핑을 하는 걸 보면 딱히 내 의사를 물어볼 의지가 없는 사람들 같았다.
루트도 야무지게 잡았다. 첫 여행이니만큼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택했다고 한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인천 송도에서 수원 할머니 집까지 50km의 거리였다.
성공하면 다음에는 태어난 곳인 보령까지 걸어가 보겠다는 야심 찬 포부도 보여줬다.
50km는 하루에 다 걸을 수 없는 거리여서 이틀에 걸쳐 걸어보자고 이야기를 했다.
네 명이 머리를 맞대고 구글 지도를 켰다.
첫날 어디까지 걸을 것인지 목적지를 정하고 세부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 팀은 답사 따위는 없었다. 나는 단체행사 준비 할 때는 미리 혼자라도 꼭 그 길을 걸어봐야 했다.
이번엔 소수였고, 국내여서 어떤 상황이 닥쳐도 바로 해결 가능할 것 같아서였을까.
답사 없이 무작정 떠났다.
첫날 목적지는 물왕저수지, 출발지로부터 23km의 거리 차로는 30분 남짓.
아이들과 함께 걷는 건 처음이기에 얼마의 시간이 소요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우리는 발가락에 물집이 잡힐 것을 염려해 발가락 양말을 나눠 신고 길을 나섰다.
“이모! 저는 가는 길에 편의점만 쫙 있으면 전혀 힘들지 않을 것 같아요!”
신이 난 강희는 어깨를 들썩이며 설레고 있다.
송도를 빠져나오자 공장과 큰 트럭이 지나다니는 큰 길이 대부분이었다.
아이의 기대는 점점 실망으로 바뀌며 얼굴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두 시간 정도 걷고 만난 기적 같은 편의점에서 우리는 라면을 먹고 누워
오늘은 여기까지 걸었으면 좋겠다고 먼저랄 것 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누가 기획했어? 기획자 잡아와!”
다들 조용해졌다. 잠시 후 모두 큭큭 거리기 시작했다.
의미 없는 기획자 탓을 하며 우린 시작했으니 끝을 보자고
하나의 낙오자도 허락할 수 없다며 큰 소리를 내 본다.
사실 내가 제일 먼저 낙오될 것 같아서 자신에게 하는 소리였다.
지쳐갈 때쯤 오늘의 일정이 끝나고 저 멀리 천사가 보인다.
픽업 나온 형부를 보며 함께 발을 동동 굴렸다.
“온다! 온다! 우리의 구세주가 보인다!!”
말을 잃었던 우리는 다시 수다쟁이가 되었다.
아이들은 아빠를 만나 하루 동안 일어난 일들을 말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일 걸을 수 있겠어? 혹시 오늘 밤에 아픈 사람 있으면 숨기지 말고 꼭 이야기해야 해!”
둘째 날 아침이 되자 방을 돌아다니며 컨디션을 체크했다.
몸살이 난 사람도 없었고 오늘도 충분히 걸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이 컨디션이 안 좋으면 다음에 마저 걷는 것도 괜찮다고 멘트까지 준비했지만
아이들은 생각보다 강했다.
형부는 출근길에 전날 마무리 지었던 장소로 우리를 데려다주었다.
조금의 착오도 없이. 놀라울 정도로 정확히 그 자리에.
혹여나 형부가 조금이라도 더 갈까 봐 불안했던 언니는 말했다.
“오빠! 여기 여기! 더 가면 안 돼. 딱 여기야!”
둘은 천생연분. 공대생들이어서 그런지 뭐든 한 치의 오차가 없다.
어제는 천사, 오늘은 조금 다르게 느껴진 형부의 모습에 조금만 더 가서 내려주지 하는
내 마음속 비명은 안 들렸나 보다. 혼자만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하루를 시작했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오늘 하루만 걸으면 이 길이 완성된다. 끝이 보이는 여행은 하나도 힘들지 않다.
우리의 여행 계획을 이야기하니 할아버지는 가는 길에 간식을 사 먹으라고 용돈을 주셨다.
가장 꼼꼼한 강희에게 총무를 맡겼다. 비극의 시작이었다. 한번 들어간 돈은 나올 줄 몰랐다.
본인이 기다린 맥도널드와 파리바게트에서는 흔쾌히 지갑을 꺼냈지만
나에게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은 허락하지 않았다.
“강희야,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사주면 안 돼?”
“안 돼요.”
“너는 햄버거 먹었는데, 난 왜 안 돼?”
“할아버지가 아껴 쓰라고 하셨어요.”
’ 써 글놈.‘
더럽고 치사해서 내 돈으로 사 먹겠다며 씩씩거리며 카페로 갔다.
그랬더니 강아지 두 마리가 쪼르르 따라와서 내 뒤에 서 있는 게 아닌가.
“너희들이 줄을 왜 서?”
“우리는 한 잔으로 나눠 먹을 수 있어요.”
“난 너희를 사줄 생각이 없는데 무슨 말이야?”
10살이나 35살이나 수준은 비슷했다.
서로가 만족할 만한 음료를 받아 든 우리는 이제 목적지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 힘내자며
다시 한번 파이팅을 하며 걷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힘들어 보일 때마다 아이스크림과 간식을 입에 넣어주며 길을 이어갔다.
목적지까지 조금 남겨놓은 시점에서 아이들은 다시 벤치를 찾아 눕기를 반복했다.
동네에 들어서니 활짝 웃으며 마중 나온 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너무 반가웠지만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여기서 웃을 수 있는 건 할머니뿐이었다.
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걸어왔냐며 기특하고 반가운 마음에 서로를 끌어안았다.
그렇게 마지막 3km는 모두 함께 걸었다.
최종 목적지인 아파트단지에 들어서자 한 번도 힘들다고 말하지 않던 건희가 울기 시작했다.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쌍둥이라도 첫째라 다른 건가. 아니면 과묵한 아이라 다른 걸까.
여행길 내내 힘들다고 중얼거린 강희를 돌보느라 건희는 괜찮냐고 묻지도 않았다.
아픈 곳 없이 내내 잘 걷길래 괜찮은 줄 알았다.
묵묵히 걷던 아이가 울기 시작하니 더 마음이 아려왔다.
맞다. 건희도 어린데. 내 눈엔 똑같은 아기인데 어떻게 내색 없이 이 길을 걸은 걸까.
우리는 다음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엔 서울 일원동에서 양평에 있는 캠핑장까지 42km에 도전하기로 했다.
고3보다 바쁘다는 중3을 지나고 있는 아이들이 이모를 위해 시간을 내준다니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산티아고를 걸으며 조카들이 스무 살이 되면 함께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는 너무 먼 미래를 기약할 수 없어 누구에게도 말해 본 적은 없었다.
망설이고 있는 나에게 조카들은 늘 먼저 손을 내밀어 준다.
작은 것들을 하나하나 쌓아가는 기적을 나에게 선물해 주고 있다.
※ 오늘의 지출 내역서 ※
이강희 – 맥도널드 : 12,500원
파리 바게트 : 7,800원
이가연 – 편의점 1 : 9,700원
편의점 2 : 5,400원
편의점 3 : 11,200원 (편의점 사용 횟수는 더 많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점심 식사 : 43,000원
카페 : 13,200원
이 총무, 잠시 이리 와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