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베드로

#2. 아빠와 매일 이별하는 중

by 안부

친구에게 카톡 하나를 남기고 사라졌다.


’ 도로 위에서 패혈증으로 사망‘


아침 7시 반, 이상한 메시지가 왔다고 아빠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안 좋은 상황을 직감한 엄마는 바로 고모한테 연락했다.


“고모, 아버님께 오빠한테 전화 한 번만 해달라고 부탁해도 될까? 연락이 안 되고 있어.”

“누굴 죽이려고 그래? 절대 이야기하지 마!!”


전화를 받지 않는다.

동네에서 유명한 효자였기에 할아버지의 번호를 보면

생각을 바꾸지 않을까 싶어 마지막 끈을 잡고 싶었던 엄마였다.

고모는 매몰차게 거절했다. 우리는 끊임없이 전화를 하고 또 하고 있었다.

소식을 들은 오빠는 자살 의심 신고를 했다.

실종 신고를 하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해서 선택한 방법이었다.


오빠는 나에게 침착하라며 천천히 상황을 알려줬다.

믿지 않았다. 또 무언가에 수가 틀려서 하는 행동이라 생각했다.

단순한 해프닝 정도로 생각했다.

모든 일정을 중단하고 서해대교를 넘어가면서도 아빠는 겁만 줄 뿐 일을 저지르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오전 11시. 경찰에 의해 발견되어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다행히 아직 의식이 있는 상태였다. 의사가 말했다.


“치사율이 높아서 판매가 중단된 지 오래된 약인데 어떻게 구하셨는지.

살릴 방법이 없어요. 소변색을 보니 이미 전신에 퍼져서 오늘을 못 넘기실 겁니다.”


말로만 듣던 그 약은 복용 후 단 한 명도 살아남은 사람이 없다.

그걸 우리 아빠가.

응급실에서 만난 아빠의 모습은 이미 지쳐있었고 손톱이 보라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온 엄마는 얼마 못 살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게 마지막이라고 했다.


오빠는 의사의 설명을 듣고 혈액 투석을 결정했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게 썩은 동아줄이어도 잡아야 했다.

투석을 진행하니 아빠의 상태가 조금 호전되어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형수! 형수가 얼마나 볶아 댔으면 형이 이랬겠어?! 형수가 이렇게 만든 거 아니야??“


”xxxx.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네가 힘들겠어? 우리 엄마가 힘들겠어!

야 이 xx야 사과 안 해?!!! 어디서 그걸 말이라고 지껄여?!“


엄마를 지켜야 했다. 집안에 한 명은 미친년이 필요했다.

엄마랑 아빠는 맏이지만 동생들에게도 싫은 소리 한 번을 못 하던 사람이다.

작은 아빠의 느닷없는 공격에 엄마는 말문이 막혀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의식이 깨어난 아빠는 엄마에게 말했다. 발 아픈데 뭐 하러 왔냐고.

2주 전 술 취한 아빠를 부축하다 발가락이 골절되어 깁스를 한 상태였다.

엄마는 아빠를 만나니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차마 우리 앞에서 흘리지 못했던 눈물을 다 쏟아내고 있었다.


일주일 정도 지나고 아빠의 상태가 놀라울 정도로 호전되어 전원 상담을 하게 되었다.

동일한 양을 마신 할머니가 이 상태로 2년을 더 사신 케이스가 있다고 했다.

환자 상태가 좋으니 요양병원을 알아보라 했다.

아빠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병원을 옮기자고 하니 좋다며 웃어 보였다.

하지만 그날 저녁부터 섬망 증세가 시작되었다.


경과가 급속히 안 좋아져 임종 면회를 오라는 병원의 연락을 받았다.

집에서 대기하다가 얼른 할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으로 향했다.

일반 병실에 옮기면 만나면 되지 뭐 하러 이 밤에 가냐고 물었다.

지금 아빠의 상태를 설명해도 먼 산을 바라보셨다.


병원에 도착해 얼른 올라가야 하는 상황에도 새로 뽑은 내 차가 맘에 든다며 둘러보고 계셨다.

연세가 94세이셨고, 매일 소주를 한 병씩 드시는 습관 때문에

단순히 술에 취해서 하시는 행동이라 생각했다.


아빠는 숨쉬기가 너무 힘들어 그만하고 싶다고 했다.

호흡기를 떼어 달라고 엑스표를 그으며 손짓만 할 뿐 눈도 못 뜨고 있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면회시간은 20분. 내가 할 수 있는 게 땀을 닦아주는 일 밖에 없었다.

옆에 있어 주고 싶었지만 의료진은 시간만 지나면 나가라고 닦달했다.

아빠는 그 힘든 시간을 혼자 보내야 했다.

온몸이 진땀으로 흠뻑 젖으며 생과 사의 길에서 오롯이 혼자가 되어 버텨야 했다.


새벽 1시 22분. 거짓말처럼 호흡이 떨어졌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천천히 톡톡톡 떨어지는 게 아니다. 그냥 툭.

아빠는 병원에 입원 후 15일 만에 우리 곁을 떠났다.


그제야 미안함이 몰려왔다. 인생의 허무함이. 너무나 큰 외로움이 느껴졌다.

2년 전부터 까칠하게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피해 다녔다.

왜 그런지 물으려 하지 않았다.

단순히 나이가 들어서 그런 줄 알았다.

현장직에 있는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니 거칠어졌다고만 생각했다.

혼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부모님께서는 나에게 늘 하는 말이 있었다.


”우리 애기만 안 아프면 엄마 아빠는 걱정이 하나도 없어. 너만 괜찮으면 돼.“


정말 나만 괜찮으면 되는 줄 알았다.

아빠를 돌아볼 새도, 엄마를 돌아볼 새도 없었다.

그 사이 아빠는 병들어 가고 있었고,

다들 현재를 살아가느라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지난여름, 아빠가 집을 나섰을 때 먼저 가서 안아 줄걸.

어쩌면 그때 우리의 손길을 필요로 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알리지 않았다.

살아오면서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기에 몇 년에 한 번씩 오는 감기와 같다 생각했다.

아빠가 필요한 건 우리들이 아니었을까.

한 번 더 물어봐 주고 안아줬더라면 아빠의 생각이 바뀌지 않았을까.

후회와 미안함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자책으로 이어진다.


식장을 차리기도 전에 일찍 소식을 들은 아빠의 지인들이 도착해 있었다.

한 분이 와서 엄마에게 조용히 말한다.


”형수, 면회 갔을 때 형이 말했어요.

더 이상 술로 형수랑 자식들 힘들게 하는 게 싫다고.

이제 곧 70인데 언제까지 힘들게 하냐고요.

너무 자책하지 말아요. 형수한테 가장 미안하다고 했어요.“


성당 지인들의 전화가 이어졌다.


”가연아, 엄마한테 말해서 장례미사 신청해야지. 왜 자꾸 안 한다고 하셔?“


엄마가 성당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장례 미사를 신청할 수가 없었다.

천주교에서는 자신의 생을 마감하는 일에 대해서 가장 큰 죄라 생각한다.

그래서 신부님들 중에서도 이런 선택을 한 사람들의 미사는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에는 우울증으로 인해 생겨난 병 중 하나라 생각해

많이 생각들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그건 아주 극소수의 경우였다.

계속되는 연락에 아빠는 세례만 받았을 뿐 활동을 안 하니

조용히 장례를 치르고 싶다고 했다. 다른 말은 모두 삼켜야 했다.


밤늦게 산티아고 길에서 만난 호가 도착했다.

나는 그날 새벽까지 경찰서에 서류를 갖다 줘야 해서 나서던 길이었다.

아빠에게 인사를 마친 호를 얼른 차에 태웠다.

차 안에는 숨소리만 들릴 뿐 서로 아무 말을 못 했다.


”우리가 왜 이런 일을 같이 겪어 가연아... “


호가 말한다.

아버지를 보낸 아픔은 3년이 간다고.

참을 수 없어서 산티아고를 걸으며 몸을 괴롭혀 보자는 생각에 길을 나선 것이라 했다.

시간이 흐르니 조금 숨이 쉬어지는 거지 상처가 낫는 건 아니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영정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조용히 술을 한 잔 따른다.

입관식에서도 먼저 가는 아들의 볼을 수없이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리신다.

이미 차갑게 굳어버린. 냉기 서린 아들을 끊임없이 만지고 있다.


”잘 가라. 잘 가... 아비 두고 가라... “


임종 면회를 앞두고 할아버지에게 아빠의 상황을 이야기해도

다른 말을 했던 이유를 아무도 몰랐다. 할아버지는 치매가 시작된 상태라고 했다.

늘 우리에게 웃으며 이야기하고, 걸어서 30분 거리인 우리 집에 자전거로 10분이면 쌩하고

자주 들르시곤 했다. 극 초기여서 크게 티가 안 났던 것뿐 술을 마시면 기억을 못 한다고 했다.


장례식장에서 큰 소리가 울려 퍼진다.


”너희 아빠가 어떻게 죽은 줄 알아?! “


차마 할아버지, 할머니에게는 아빠의 원인을 설명할 수 없었다.

단순히 코로나 후유증을 이겨내지 못했다고 말씀드렸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모할아버지는 누구라도 들으라며 소리를 질러댔다.

장례를 마치고 이모할아버지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할아버지가 아빠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충격을 받은 할아버지가 쓰러지셨다. 그렇게 4개월 후, 아빠가 떠난 지 333일 만에 아들 곁으로 가게 되었다.

아빠의 유품을 정리하며 엄마가 말했다.


”매일 오후 4시만 되면 떨렸어. 오늘은 또 얼마나 마시고 들어오려나 싶어서. “


엄마의 말에 가슴이 미어진다. 힘듦을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다.

유난히 나를 예뻐했던 아빠가 술에 취한 채로 내 방으로 들어올 때면

술 냄새나면 스트레스받는다고 늘 문 앞을 막아섰다.


엄마는 다른 이유보다 아빠가 아픈 딸을 두고 가는 게 너무 미웠다고 한다.

그렇게 예뻐하던 막내딸 곁에 평생 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떠나서 더 허망하다고 했다.

벌써 너무 보고 싶다고.

너무 사랑한다고 우린 언제쯤 만날 수 있는 거냐고 수없이 이야기한다.


우연히 보게 된 엄마의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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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이별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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