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년간 매일 썼습니다. 2010년만 빼고

펼쳐 볼 수 없었던 엄마의 가계부

by 안부

엄마는 독립을 한 이후부터 줄곧 일기를 써왔다. 그날 무슨일이 있었는지, 아빠와의 데이트는 어땠는지 모든 게 빼곡히 적혀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일기장은 결혼 후 가계부로 바뀌었고, 지출 내역을 적은 뒤엔 짤막한 일기 한 줄이 더해졌다. 식탁이 없던 우리 집에서 엄마는 매일 저녁 방바닥에 엎드려 가계부를 쓰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느 날 집을 정리하면서 낡은 박스에서 발견된 엄마의 가계부를 보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오빠는 2000원, 나는 1000원.

“엄마 왜 오빠랑 나랑 용돈 액수가 달라?”

엄마는 말이 없어졌다. 왜 자꾸 그런 걸 보냐며 오히려 타박했다. 어렸을적에도 나는 물욕이 있어 용돈을 요청하는 빈도수가 높았고 오빠는 필요해도 엄마한테 말을 잘 안하는 성격이라 엄마가 더 챙겨주는 편이었다. 사실을 알면서도 엄마의 반응이 궁금해 일부러 물어본 거였다.

“엄마! 이거 차별아냐?! 이렇게 증거가 확실한데, 너무한 거 아냐?”

나는 증거를 찾겠다며 몇 년치를 더 들여다 보게 되었다. 엄마의 얼굴이 빨개졌다. 이렇게 꼼꼼하고 성실하게 써왔던 가계부가 스스로의 발목을 잡을 줄이야. 사실 봐도 별거없지만 다시 가계부를 감추려 허둥 지둥 하는 엄마의 모습이 꽤나 귀여웠다.

한쪽에서 나는 엄마의 가계부를 순서대로 정리해 보았다. 자신의 청춘이 녹아있는 1972년에 쓴 일기장부터 가계부들. 그런데 이상하게 한 해만 걸러져 있었다. 모든 연도의 가계부가 다 있었지만 2010년도만 없었다. 내가 제일 꼼꼼히 적어놓으라고 했던 그 해였다.

“엄마, 내 병원비, 용돈 다 적어놔. 꼭 갚을 거야.”

난 스무 살 이후,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었다. 6개월 정도만 치료하면 다시 회사로 돌아 갈 수 있을거라 믿었다. 엄마는 늘 ‘부모자식 간에도 돈 관계는 철저히 해야한다’고 말씀 하셨고, 고지식했던 나는 당연히 정산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리 뒤져도 없었다. 그해의 가계부만 쏙 빠져 있었다. 정산을 하겠다는 내 말에, 엄마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이유를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어디갔어? 2010년? 병원비에 용돈에 엄청 썼는데 제일 중요한게 어디갔어?”

“그 해에는 그냥 안 썼어.”

차마 적을 수 없었다고 했다. 적는 순간, 아물지 않은 상처를 다시 들춰내는 기분이 들어 도저히 손이 가지 않았다고 했다. 그냥, 왜인지 적기 싫었다고도 했다. 엄마는 늘 힘든 일도, 기쁜 일도 한 줄씩은 꼭 써두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해도 당연히 기록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땐 몰랐다. 엄마에게도 외면하고 싶은 감정이 있었고, 도망치고 싶은 시간이 있었다는 걸. 그런 마음을 꾹 눌러 담은 채 나를 돌보느라 얼마나 애쓰셨는지 너무 늦게야 알게 됐다.

성향이 정반대인 아빠와 살아가는 모습만 봐도, 이 정도 스트레스면 머리가 빠질 만큼 힘들 법한데도 엄마는 좀처럼 내색하지 않았다. 그런 엄마가 유일하게 마음을 푸는 공간이 가계부였다. 짧은 한 줄짜리 일기가, 엄마의 심정을 고스란히 담아내곤 했다. 그런데 그 해는 달랐다. 회피였다. 그 앞에 놓인 고통을 마주하지 않고 싶었던 것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잊고 싶었던 것이다.

“엄마, 이걸 적어놨어야 나한테 받지.”

“신경쓰지마. 그런 걸 왜 갚아. 그건 갚는거 아냐, 네가 옆에 있는걸로 이미 됐어.”

“난 갚아야해. 이런거 못 견뎌.”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엄마의 모습에 속상해 눈물이 흘렀다. 엄마는 늘 해맑았다. ‘어쩜 이리 긍정적일 수 있을까’ 나는 종종 생각했다. 엄마의 성격을 반만 닮았어도 이렇게 아프진 않았을 거라고.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통증을 들키지 않으려 했던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픈 아이 앞에서 울면 안 된다는 이모의 말에 눈물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던 엄마. 그런 게 어디 있냐며, 슬픔은 참는 게 아니라 울고 털어내는 거라며 얘기하던 우리였다.

미안해졌다. 스스로를 돌보지 못해 아프게 된 내가 가족들에게 짐이 된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세 명의 아이들이 다 커버린 우리 집은 조용하고 평온했다. 어릴 적 희로애락을 다 겪고, 이제는 각자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던 중이었다. 그런 가족들을 긴장하게 만들고, 흐트러뜨린 건 나였다.

그때 알았다. 내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걸. 가족을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이끌 사람도, 미안함을 내려놓아야 할 사람도 나였다. 엄마의 가계부처럼 조용히 마음을 기록하고, 무거운 감정은 흘려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는 걸, 이제는 나도 조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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