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① 첫 출국은 자의 반 타의 반
걷고 싶었다. 무작정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며 걷고 싶었다.
세상 모든이가 부러웠다.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는 건강한 몸을 가진 이들의 자유로움이.
해외여행은커녕 제주도조차 가본 적이 없던 내가,
어느 날 TV에서 도보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산티아고 순례길, 한 번쯤 가보고 싶더라고요." 성당에서 봉사하던 중,
무심코 내뱉은 말이 여러 사람을 거쳐 퍼져나갔다.
어느새 나는 우리 성당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르는 첫 번째 순례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아니, 그래서 스페인 언제 가세요?”
“산티아고 가신다면서요, 너무 부럽다. 내 로망인데”
“크리스티나! 갈 수 있겠어? 가서 잘못되면 어떻게 해!”
나를 만나는 사람들의 인사말이었다.
언제 가냐는 질문에 나도 모르게 9월이라고 대답했다. 사람들을 대단 하다고 했지만,
사실 자의 반 타의 반이 섞인 결정이었다. 누군가 엉덩이를 차 줘서 시작된 일이었다.
집에 가자마자 산티아고에 관한 영화를 한 편 보았다.
아들이 순례길을 걷다가 폭풍우를 만나 죽게 되자, 아들의 배낭을 메고 그 길을 마저 걷는
아버지의 이야기였다.
본격적인 여행 준비에 마음이 분주해졌다.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가장 쓸모없어 보였던 청약통장을 해지해 곧장 티켓을 끊어버렸다. 순식간이었다.
어느 정도 준비를 마친 뒤에서야 엄마에게 사실을 알렸다.
그곳에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탓일까.
진단을 받았을 때보다 더 많이, 매일같이 우셨다.
“아픈 몸으로 혼자 거기서 버틸 수 있을까.”
“딸을 다시는 못 보게 되는 건 아닐까.”
산티아고 순례길에 관한 가이드북 한 권을 가장 먼저 샀다.
치료가 끝나면 한라산에 가겠다며 풀 셋트로 사놓고 일 년째 뜯지 않은 등산복을 챙겼다.
드디어 새 등산복을 입고 갈 곳이 생겨서 기뻤다.
제일 걱정되는 건 딱 하나! 언어였다. 영어를 전혀 할 줄 모른다.
내가 가는 곳은 프랑스와 스페인이니 영어권 국가가 아니었다.
그들도 어차피 손짓 발짓으로 의사 소통이 가능할 것이라는 정신 승리를 하며 여행을 준비했다.
출국 당일. 최대한 짐을 줄이려고 순례길을 걸으며 입을 형형색색의 등산복 차림으로 공항으로 갔다.
환승 하는 비행기가 30만원 정도 더 쌌지만 망설임 없이 직항을 선택했다.
영어도 할 줄 모르는 내가 환승을 하다가 국제 미아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차라리 돈을 더 쓰기로 했다. 당연히 좌석은 창가로 예약을 했다. 얼마나 설레이는가.
하지만 그 설레임도 잠시. 내 옆자리는 신혼 부부가 타게 되었다.
그들은 예식의 여파로 힘이 들었는지 파리로 가는 12시간 동안 한 번도 잠에서 깨지 않았다.
승무원을 부를 수도 없었다. 하필이면 내 라인을 담당하는 승무원은 외국인이었다.
국적기를 탔는데 외국인 승무원이라니. 기가막힐 노릇이었다.
결국 12시간 동안 아무 말도 못 하고 화장실도 못 간 채로 비행기에서 내리게 되었다.
말로만 듣던 드골 공항. 출국심사만 무사히 마치면 더 이상 문제 될 게 없을 것 같았다.
한국에서 언니가 예상 질문지를 만들어 주었고, 그것만 달달 외우며 기다린 출국심사는
생각보다 순조롭게 끝났다.
나는 5일 정도 파리에 체류 후 스페인으로 넘어갈 예정이라, 파리에 대한 준비는 하나도 해오지 않았다.
숙소에 도착해 따로 이곳을 여행할 계획도 없었기에
그냥 푹 쉬다 스페인으로 넘어갈 요량이었다.
그래서 지하철에서 하차 후 민박집까지 가는 길에 대한 방법만 캡처 해 왔다.
예약해 둔 숙소에 가려면 지하철을 타야 했다. 승차권을 어떻게 사야 하는지 몰랐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겨우 승차권 발매기 앞에 줄을 섰지만, 가슴이 두근거렸다.
다행히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이 한국인이라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승차권만 구입한 뒤, 도움을 요청한 나를 못 본 척 지나쳐버렸다.
텅 빈 공항에 덩그러니 남겨진 나는 무서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로밍이 안 된 폰을 가지고 있어 아무것도 검색 할 수 없었다. 로밍하고 오지 않은 나를 탓하고만 있었다.
어두워 지기 전에 숙소에 도착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항 밖으로 나가 무작정 택시에 올라 주소를 보여줬다. 택시기사는 아는 곳이니 걱정 말라며 웃었다.
택시 안에는 빠르게 올라가는 미터기 소리와 내 숨소리만 가득했다.
‘이러다 두달간의 경비를 택시비로 다 쓰는거 아닌가’라는 불안감이 들었다.
어떻게든 택시를 멈춰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시도를 해보았지만,
혼자만의 호들갑이었을 뿐 기사님은 알아듣지 못했다. 내 90유로. 약 14만원.
우여곡절 끝에 숙소에 도착한 나는 침대를 배정받고 바로 누워버렸다.
그동안의 긴장이 풀렸는지 온 몸이 아팠다. 이러다 스페인은 가보지도 못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누워 있는 나에게 룸메이트가 말했다.
“언니, 저녁에 일정 있으세요? 없으시면 저희랑 몽마르뜨 언덕 가실래요?”
그들에게 승차권을 사지 못해 택시를 탄 이야기를 했다.
어떻게 그런 사람들이 있냐며 공감해 주는 것만으로 힘이 되었다.
나보다 3일 먼저 온 친구들은 파리에서 꼭 가봐야 할 여행지를 소개 해 주었다.
다음 날, 혼자 숙소를 나와 노틀담 성당을 갔다.
여행 내내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 매일 미사에 참여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길에 들어선게 축복인 듯 마침 미사가 시작되었다. 언어가 다른 외국에서의 미사가 처음이지만,
신부님의 말씀이 한국어처럼 들려왔다. 한국 미사와 같은 형식이기에 더 신기했다.
한참 성당에 머문 후 밖으로 나와 한 바퀴를 돌고 있는데, 가까운곳에 피라미드 형상이 하나 보였다.
르브루박물관 이었다. 말로만 듣던 박물관이라니!
부푼 가슴을 안고 박물관에 들어갔다. 데스크에 가서 전시품의 설명을 들으며 천천히 보고 싶은 마음에
오디오 가이드를 신청했더니 여권을 달라고 했다. 당연히 없었다.
이렇게 또 하나를 배우며 전시실 곳곳을 마음으로 느끼며 둘러보게 되었다.
전시품들이 전쟁과 침략으로 인해 약탈해 온 각 국의 문화재라는 건 알았다.
웅장하고 멋진 작품을 보며 어두운 스토리는 까맣게 잊었다.
전시실에 머무는 내내 가슴이 뛰어 황홀할 지경이다.
그 날 저녁, 친구들과 야경을 보러 유람선을 탔다.
세느강으로 간다는 말에 너무도 기대가 컸던 나는 의아했다.
“대체 세느강이 어디야?“
”여기라고? 이건 완전 개천 아냐?“
내가 밟고 있는 곳이 세느강이라 했다. 그 순간, 문학의 위대함을 실감했다.
서울의 한강쯤 되어야 ‘강’이라 여겨졌던 터라,
세느강이 개천처럼 아담하고 소박한 모습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수많은 작품 속에서 만나 온 이 강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얼마나 아름답게 묘사되어 왔던가. 모든 이가 한 번쯤은 가보고 싶어하는 세느강 아닌가.
나는 그 강을 눈앞에 두고도 헤매며 찾아다녔다.
개천 같다는 나의 말에 모두 웃었다. 세느강을 마주한 모습이 다들 비슷하다고 했다.
그날 저녁 우리는 유람선을 타고 바람을 맞으며 각자의 소설속 주인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