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피레네 산맥, 저 안 괜찮아요

산티아고 가는길 2_서른을 맞이하는 방법

by 안부

치료를 마친 지 2년, 관해 판정을 받고 준비한 여행이었다.

나에게는 오지 않을 줄 알았던 서른이라는 나이를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파리에서의 짧은 워밍업을 뒤로한 채, 이제 스페인으로 떠나기 위해 몽파르나스 역으로 향했다.

기차표는 미리 준비해두었다. 공항에서의 당혹스러운 경험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몇 번이고 확인을 거듭하며 역 안으로 들어섰다. 너무 긴장한 탓에 출발 두 시간 전에 도착했지만,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첫 해외여행이었다.

잘 다녀올 수 있을 거라 호기롭게 나섰으나 단 한 순간도 긴장을 내려놓은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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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유지인 바욘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탔을 때, 맞은편 좌석에 앉은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일본인처럼 보이는 외모에 등산복 차림.

'저 사람도 순례길을 걷는구나. 혼자 오는 사람도 많다더니, 다행이다.' 생각하며 천천히 시선을 옮기는데,

오른쪽 가슴팍에 '블랙야크' 로고가 눈에 띄었다.

‘엇, 한국 사람이네!’ 반가운 마음이 먼저 올라와, 망설임 없이 인사를 건넸다.


“한국 분이신가 봐요! 순례길 걸으러 가세요?”

“네, 한국 사람이에요. 순례길 갑니다.”

“우와! 그럼 좀 쉬시고요, 이따가 기차에서 내릴 때 다시 인사드릴게요.”


내성적인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넨 것도 참 신기한 일이었는데, 다행히 그 인사를 반갑게 받아주었다.

기차를 타고 약 4시간, 바욘에 도착했다.

목적지에 도착한 후 다음 열차까지는 2시간 정도의 환승 시간이 있었고,

우리는 역 밖으로 나가 맥주 한 잔을 함께했다. 어색한 인사 뒤에 간단히 서로를 소개했는데,

놀랍게도 동갑이었고, 제주에서 왔다고 했다.

이런 인연이 있을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신기하고 반가운 순간이었다.

이 친구와 언제까지 함께하게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여행을 많이 다녀본 듯한 그의 모습에 왠지 든든한 동반자가 생긴 것 같아 슬슬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웃고 떠들며 생장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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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다다른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 생장 피에드 포르.

산티아고 순례길의 출발점이자, 수많은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시작되는 곳.

두 다리로 여기까지 왔다니, 꿈만 같았다.


‘이제 시작이구나.’


마음속엔 걱정과 고민보다 설렘이 더 가득했다. 우리는 오후 늦게 도착해 먼저 숙소를 잡고,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기 위해 사무소로 향했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사무실 찾기는 의외로 간단했다.

골목에서부터 북적이는 사람들 덕분에 금세 눈에 띄었다. 가방에 조가비를 하나씩 달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같은 목적지를 향한 순례자들이었다.

사무실 안에는 순례자 여권을 받기 위해 줄지어 선 사람들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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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 여권은 800km에 이르는 길을 걷는 동안, 각 마을의 숙소에서 도장을 받아가며 채워나가는 것이다. 말 그대로 순례자를 상징하는 서류였다. 이 여권이 있어야만 마을마다 마련된 저렴한 순례자 숙소를

이용할 수 있고, 마지막 도착지에 다다른 후에는 순례자 인증서를 받을 자격도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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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렇게, 모두가 하듯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고, 조가비 하나를 사서 가방에 달았다.

하루의 일정을 마친 우리는 조금은 여유로워진 마음으로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광장 주변을 걷기 시작했다.

그때 마주친 수많은 한국 사람들. 여기가 외국인지 모를 정도였다.

이곳에 오는 동양인 중 90%가 한국인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대부분 혼자 왔고, 처음 만났지만 누구랄 것 없이 편하게 각자의 특별한 사연을 꺼내놓았다.


첫날밤은 설렘과 긴장 속에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어느새 출발 시간이 다가와 있었다.

우리는 새벽 5시 반부터 조용히 짐을 챙기고, 6시에 출발했다. 호기롭게 발을 내디뎠지만,


‘세상에… 첫날부터 오르막길이라니.’


첫 코스는 바로 피레네 산맥. 내가 가져온 가이드북에는 그 산맥의 고도나 상세한 설명이 없었는데,

알고 보니 오늘 걸을 거리 25km 중 무려 20km가 오르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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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뿐인 길은 깨끗했다. 티비에서나 보던 들판 위에 양들이 한가로이 놀고 있는 모습에

“이보다 더 낭만적인 곳이 있을까?” 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경쾌하게 발걸음을 옮기던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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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걷기 시작한 지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메고 있던 15kg짜리 가방은 점점 30kg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는 가방을 아무 데나 던지고 앉아 쉬었다. 그 다음부터는 열 발자국 걷고 가방을 던지고,

또 몇 걸음 가다 널브러지는 걸 반복했다. 그 모습을 지나치던 순례자들마다 이렇게 말했다.


“지금 여기서 쉬면 안 돼. 자꾸 가방 내려놓으면 더 못 가. 나랑 같이 가자!”


모두가 한마디씩 하며 용기를 주었지만, 그 말이 제대로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몸집이 커서 평지를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찼다.

그런데 체중을 1g도 줄이지 않은 채 이 길에 들어섰으니, 내 몸은 이미 감당이 안 되는 상태였다.

한 걸음만 걸어도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고, 결국엔 세 걸음 걷고 가방을 던져버리기 일쑤였다.


그땐 몰랐다. 바닥에 양 똥이 그렇게 많은 줄은. 손을 짚고 있는 자리,

엉덩이를 붙인 자리는온 천지가 동글동글한 양 똥 밭이었다.

처음엔 똥이라는 걸 인식하고 흠칫 놀랐지만, 이내 그마저도 상관없어졌다.

그만큼 점점 눈앞이 흐려지고, 보이는 게 없어지기 시작했다.


당초 계획은 단 하나였다. 아프지 않고 끝까지 완주하는 것.

첫날은 10km 정도만 걷고, 중간 지점인 오리손의 숙소에서 하루 묵은 뒤 다음 날 론세바야스로 향하는

것으로 계획했다. 대부분 하루에 걸쳐 가는 코스였다.

내 체력으로는 무리라고 판단해 이틀에 나눠 쉬엄쉬엄 가기로 마음먹었고,

한 달 전 미리 오리손 숙소를 예약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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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계획을 친구에게 말하자, 흔쾌히 “함께 쉬어가자”는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는 숙소로 기어들어가 남은 침대가 있는지 물어보았지만,

이곳은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어 이미 만실이라는 말을 들었다. 둘이 함께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


결국 우리는 선택해야 했다. 이대로 헤어질 것인지, 아니면 나머지 15km를 더 함께 걸어갈 것인지.

일단 숙소 내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고민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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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으로 펼쳐진 경치는 너무도 아름다웠고,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고된 시간은 금세 잊혔다. 조금씩 마음의 여유가 찾아왔고,

결국 우리는 오늘의 여정을 함께 끝내기로 결심했다.


그건 분명 분위기 탓이었다. 달콤했던 휴식이 끝나고,

다시 가방 끈이 어깨에 닿는 순간부터 후회가 밀려왔다.


‘왜 그랬을까. 나 여기서 쉬고 싶었는데.’


그 마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진 못 했다.

무거워진 발걸음을 억지로 옮기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조금 걸었을까. 이 언덕의 상징처럼 보이는, 예수님을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상이 눈에 들어왔다.

천주교 신자인 나는 그 앞에 조용히 섰다. 그리고 속으로 기도했다.

‘이 여행에서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 또한 주님의 뜻이니, 주님께 모두 맡기겠습니다.’

여행을 오기 전, 주변의 많은 우려와 걱정에 나 역시 자신이 없었다.

‘과연 이 길을 무사히 완주할 수 있을까?’그 불안한 마음을 기도와 함께 내려놓자 조금은 홀가분해졌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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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각자의 호흡대로, 천천히 피레네 산맥을 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너무 천천히 걸었는지, 아니면 중간중간 꾀를 많이 부려서인지 금세 어둠이 찾아왔다.

그때 어디선가 911 구조대원이 다가와 괜찮냐고 물어왔다.

솔직히 하나도 안 괜찮았지만, 나는 반사적으로 “잇츠 오케이, 잇츠 오케이”를 외치며 웃어 보였다.


그들은 그렇게 돌아갔다. 그 순간, 후회가 몰려왔다. 할 수 있는 영어가 ‘잇츠 오케이’뿐이어서 그랬을까.

그들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나도 모르게 먼저 그 말부터 튀어나왔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바로 그때, 문득 성당 미사 시간에 들었던 강론 하나가 떠올랐다.


홍수가 난 마을에 살던 노인이 예수님께 구원을 간절히 기도했지만, 정작 구조대가 세 번이나 왔을 때마다

“괜찮다, 예수님이 직접 구하러 오실 것이다”라며 구조를 거절했다. 결국 그는 죽고 말았고,

하늘나라에서 예수님을 만나 물었다.


“왜 저를 구하러 오지 않으셨나요?”

“내가 세 번이나 갔는데, 네가 나를 몰라보지 않았느냐.”


그 강론의 마지막 문장이 머리를 세게 때렸다.


‘악! 미련퉁이! 저 사람들이 예수님일 수도 있었잖아! 그냥 못 이기는 척 따라갈 걸.

왜 괜찮다고 했을까. 정말 바보같아!’ 나는 속으로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었다.

그런데 믿기 힘들게도, 정말 거짓말처럼 구조대가 다시 돌아왔다.

그들은 날씨가 너무 변덕스럽고 어두워져서 위험하니, 얼른 차에 타라고 말했다.


“그럴까요, 그럼요!”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하고, 친구의 의사도 묻지 않은 채 잽싸게 차에 올라탔다.

친구는 옆에서 그저 웃기만 했다. 구조대에게 지금 우리가 어디쯤 와 있는지 묻자, 20km를 걸어왔고

목적지까지는 약 5km 정도 남았다고 했다. 그리고 이 구간은 날씨 변화가 심해 위험해서

구조 요청이 자주 이루어지는 곳이라고도 덧붙였다.


여행을 준비할 때 보았던 산티아고 관련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 영화 속, 주인공은 바로 이 지점에서 세상을 떠났고, 그의 아버지가 아들의 가방을 메고 전 구간을

대신 걷는 이야기였다. 5km를 남겨두고 구조차를 탔다는 사실에 아쉬움이 남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무리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이 여행이, 그리고 오늘이 분명히 알려주었다.

지금의 나는, 아주 잘한 선택을 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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