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엄마, 완벽할 필요는 없지만
건축가가 되려면 5년제 건축학인증을 받은 대학을 졸업하는 것이 좋다. 이후에는 보통은 설계사무소에서 일을 하면서 경험을 축적한 뒤, 건축사 시험을 보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상담심리사가 되려면 학사, 석사 학위 취득 후 상담심리학회에서 요구하는 일정 시간 이상의 상담경력을 쌓고, 집단상담, 슈퍼비전 등에 참여, 그리고 역시 자격검정 시험을 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어떤 직업이든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일정기간 이상의 수련이 필요하다. 혹 자격을 모두 갖추지 않았다 하더라도 너무 상심할 필요는 없다.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나가는 것 또한 그 직업의 일부이니까.
건축가가 되려면 위 과정을 모두 다 클리어하고, 건축사 시험을 보면 된다. 상담심리사도 마찬가지. 그런데, '좋은 건축가', '좋은 상담심리사'가 되려면 구체적이면서 까다로워진다. '좋은'이라는 단어는 추상적인데, '좋은' 뭐뭐가 되려면 실천은 제법 구체적이어야 하더라. 건축가나 상담심리사 모두 10년 이상의 수련을 요하는 시간세례와 묵직한 내공이 쌓여야 하는 직업임에도 '좋은' 건축가, 상담심리사가 되려면 10년을 30년처럼 무척 알차게 보내야 한다는 사실.
좋은 건축가가 되려면 책을 많이 읽고 상상하는 연습을 하고, 사물의 외부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내부도 상상하는 습관, 그리고 계속해서 그려보기와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겠다. 마지막 좋은 건축가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할 한 가지는 좋은 건축물을 많이 보러 다니는 것이다. 이런 과정들로 숙련되었다면 자신만의 건축 철학을 갖는 것 또한 거쳐야 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건축가들은 건축물로 자신을 표현하기 때문에 건축물을 보면 누가 설계했는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건축에서도 '나'가 반영되어야 하는 것이다. 작품이 작가를 반영하는 뚜렷한 예는 일본 건축가 세지마가 그렇다. (MVRDV와 세지마 중 누구를 소개할까 고민하다가 이미지 첨부는 세지마로 결정)
그녀의 작품은 우아하고 단정하면서 청량감이 있다. 작품은 웅장한 느낌을 주거나 근엄하지 않다. 오히려 여성스럽고, 다정한 느낌, 아기자기하다. 그녀의 작품을 보면 세상에 살아남는 모든 것이 꼭 힘이 셀 필요는 없구나를 여실히 보여준다. 작품 자체로 사랑스러우면서 존재감이 뚜렷하니까.
좋은 상담심리사가 되려면 책을 많이 읽고 느껴보거나, 공감하거나, 혹은 생각해보는 것을 습관화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나'에 대해서 직면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내 부족을 보고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 스스로 자존감을 찾아가는 것 또한 상담을 직업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과정이다. 스스로 상담자가 되어보고 내담자가 되어 보는 연습도 필요하겠다. 그리고 이런 성찰들에 대한 기록, 그 기록을 잘 수집하는 습관도 좋은 상담자가 되기 위한 노력 중 하나다. 이를 수도 없이 연습하는 시간이 필요한 이유는 상담자는 '나', 상담자 스스로가 재료이며 제공되어야 할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여러 가지 상담사례들을 많이 접하는 것이다. 건축가가 되기 위한 과정 중 마지막 단계에 자신의 건축 철학에 대해 고민해보고 결정하고, 실험하는 것처럼 상담심리사가 되기 위한 과정 중에도 마찬가지로 오랜 성찰 기간을 거쳐 어떤 상담이론을 자신의 이론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시기가 온다.
서로 다른 두 직업이지만, '좋은' 무엇이 되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은 결국은 비슷하다. 매 순간 생각하는 것, '나'에 대해 아는 것, 그리고 어떤 습관을 들이는 것, 다른 사례들을 찾아보는 것으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어른이 되는 법은 없다
엄마가 되는 법도 없다
우리는 어떤 직업을 갖기 위해 맹렬히 전진한다. 험난한 입시를 거쳐, 대학에 가고, 졸업 후에는 자격을 획득하기 위해 전진 또 전진한다. 쉬운 말로 밥벌이를 하기 위한 '무엇'이 되기 위해서는 공부하고 맹렬하고 격렬하게 노력한다. 이 비유는 직업을 단지 '밥벌이' 수단으로 격하시키기 위한 비유는 아니다. (또 이렇게 적어놓고 생각해보니 밥도 먹으면서 좋아하는 일 하면서 사는 게 어려운 만큼 밥벌이는 대단한 거다. 그러니까 우리는 장차 먹고살기 위해서는 무지 노력한다는 뜻)
하지만 어른이 되기 위해, 혹은 엄마가, 아빠가 되기 위해, 누군가의 친구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맹렬하고 격렬하게 노력하는 이는 없다.
어른 [발음 : 어ː른] 명사
1.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비슷한 말] 장자(長者).
2. 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 [비슷한 말] 장자
3. 결혼을 한 사람.
4. 한 집안이나 마을 따위의 집단에서 나이가 많고 경륜이 많아 존경을 받는 사람.
5. 남의 아버지를 높여 이르는 말. 자네 어른께는 상의드려 보았는가?
몸이 다 자라거나 나이나 지위가 높아져서 그저 어른이 되기도 한다. 어른의 사전적 정의 중 '한 집안이나 마을 따위의 집단에서 나이가 많고 경륜이 많아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는 정의도 있다. 이 정의로 꼽아보자면 사실 어른이라 불릴 사람은 몇 없다. 김혜남 선생님의 저서 <어른으로 산다는 것>에서는 어른을 이렇게 정의한다.
어른은 별다른 게 아니다. 어른이란 제 인생의 짐을 제가 들고 가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중략) 그 짐은 무겁고 힘들지만 좋은 점도 참 많다. 부모님이 내 짐을 들어 줄 때는 싫든 좋든 부모님이 이끄는 방향으로 가야만 했다. 그러나 그 짐을 내가 드는 순간 나는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 (중략) 물론 그러다 짐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래도 어쨌든 내 선택에 의한 것이기에 기꺼이 책임을 질 수 있다. 내 짐을 내가 들고 인생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그 인생길을 가는 동안 누구를 만나고 누구를 만나지 않을 것인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아마도 그것이 나잇값의 대가로 얻는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어른으로 산다는 것, 김혜남, 2011
그래, 어쩌면 우리는 나잇값의 대가를 치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책을 읽던 2년 전, 어른으로 살려면 어떤 기준을 갖고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해 블로그에 적어둔 기록을 봤더니 이렇게 적어뒀더라.
어른으로 산다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냥 나이를 먹거나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어른이 되지는 않지만, 책에서 말하는 어른의 기준이란 게 꼭 힘들거나 어렵지만은 않다. 어른이 되는 법은 사랑할 줄 알고, 이별의 감정을 받아들이며, 나이 드는 것 또한 삶의 일부로 바라보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 이런 것들이다.
문득 얼마나 사랑했는가, 그리고 얼마나 나잇값의 대가를 치렀는가를 돌아본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어른이 되는 법은 없지만, 어른이 되려 노력할 필요는 있겠구나 싶다. 어려서부터 숱한 사교육을 받으며 학원을 전전했고, 무언가 대단한 직업을 갖기 위해 고단한 노력을 거듭했다. 그렇게 대단한 직업을 갖지도 못했지만 결국 '좋은' 어른도 되지 못했다. 이제부터 어떻게 살 것인지 생각해 볼 참이다. 막 태어난 딸에게 어른으로 대우받기를 바라는 엄마가 아닌 어른의 모습으로 기억되는 엄마이고 싶다.
어머니 [어머니] 명사
1. 자기를 낳아 준 여자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 [비슷한 말] 아미(阿㜷).
2. 자녀를 둔 여자를 자식에 대한 관계로 이르거나 부르는 말.
3. 자기를 낳아 준 여성처럼 삼은 이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
4. 자기의 어머니와 나이가 비슷한 여자를 친근하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
5. 사랑으로써 뒷바라지하여 주고 걱정하여 주는 존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6. ‘시어머니’를 친근하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
7. 무엇이 배태되어 생겨나게 된 근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생각해보면 물리적으로 어른이 되거나 엄마가 되는 건 크게 복잡한 문제는 아니다. 엄마가 되기 위해 따르는 신체적인 고통은 차치하고 단순하게 접근한다면 그렇다. 엄마는 어머니를 격식을 갖추지 않고 부르는 표현이라 해서 어머니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 읽어내려 가면서 '아...'했다. 어머니의 정의는 순전히 자녀를 기준으로 정했다. 쪽쪽이를 떨구고 잠 들어 있는 소담이에게
딸, 나를 있게 해줘서 고마워
한다. "좋은 엄마 되기"에 대해 생각하기에 앞서 존재의 이유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좋은' 건축가, '좋은' 상담자가 되기 위해 적어 놓은 구체적인 "어떻게"들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은 그 분야 혹은 해당 분야에 도움이 되는 시야를 확장하려는 마음 가짐이다. '나'에 대해 알아야 하는 것은 내가 이 분야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앞으로 이 일을 어떻게 해 나갈지를 미리 생각해 보기 위함이다. 그리고 기록하고 사례를 접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좋은 엄마가 되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먼저 아이에 대해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엄마인 '나' 자신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아이에게 화가 났을 때, 아이에게 지나치게 기대하고 있을 때, 아이를 훈육해야만 하는 순간에 엄마로서 때에 맞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나에게 결핍된 부분을 아이에게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 상처를 아이에게 투사하고 있지는 않은지, 나의 훈육방식이 아이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는 모두 '나'를 알아야 알 수 있는 것들이다.
도널드 위니컷은 "충분히 좋은 엄마"라는 개념을 통해 애착관계를 설명했다. 위니컷은 대상관계이론을 통해 아이가 좌절, 공격성, 상실감과 같은 어려움을 마주했을 때 엄마가 아이를 공감해주고 안아주는 환경을 제공한다면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고 했다.
'좋은'도 어렵다. 그런데 '충분히'라는 말이 붙어서 나를 더욱 어렵게 했던 위니컷의 이론, '좋은 엄마'도 '충분히 좋은 엄마'도 어려운 일이지만, 너무 무겁게 여기지는 말아야겠다. 자격시험 없이 주어진 '어른', '엄마'라는 이름은 인간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직업은 자격시험이라도 있다지만 어른이 될 자격, 엄마가 될 자격도 시험을 봐야 한다면 우리는 아무도 어른이나 엄마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돈도 안 되고 빛도 나지 않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자연히 나이라는 것을 먹어 상대적으로 누구보다는 어른이 된다. 돈도 안 되고 빛나지도 않지만, 그보다 더 값진 경험을 하도록 선물로 주어진 이름.
그 경험들을 만들어 가는 것은 각기 가진 인생의 몫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나가는 것 또한 엄마, 그리고 어른의 일부니까.
<문장수집>
어른으로 산다는 것, 김혜남
<블로그>
어른으로 산다는 것, 노인이 아닌 어른으로
http://soulfood-dish.tistory.com/80
<이미지 출처>
아키홀릭 블로그 http://jinsub0707.blog.me/
덧, 글을 모두 적어두고 읽어보니 '무엇'이 되는 것의 시작은 모두 '나'를 아는 것 먼저 시작해야 겠네요.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사소하다 느끼면서도 막상 누가 물어보면 잘 모를 때가 많잖아요. 오늘은 좋아하는 것 먼저 생각해 보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게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