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육아, 마주한 현실
요즘 우리 집 작은 아기는 뭘 좀 알게 되었다. 귀여운 이가 톡 하고 올라와 이 썩을까 싶어 밤수(밤중수유)를 끊으려는 엄마 마음도 눈치챈 것 같다. 이가 벌써 아래 세 개 위에 두개가 났다. (대단해) 이제는 새벽에 일어나서 칭얼대도 안아서 토닥토닥 하면 슬퍼하거나 노하지 않고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먹방의 요정을 노리는지 엄마 아빠 먹을 때면 자기도 먹겠다며 반가워한다. 사과나 바나나를 꺼내면 꺄아 소리를 지르고 쥐고 있던 과자를 잠시 가져갈 때면 무척 싫어한다. 아이의 7개월 인생에 격하게 좋은 것과 무지무지 싫은 것들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그걸 표현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요즘은 돌잔치라는 것을 준비한다고 나 혼자 분주하다. 아이는 아직 분위기로 상황 파악을 한다. 하지만 조금 지나면 말귀를 알아듣게 되겠지. 그리고 금새 미운이 붙은 네 살을 시작으로 야단 났네 일곱, 여덟 살이 될 테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니 <미운 4살부터 막무가내 8살까지>라는 책도 있네. (정신을 좀 차릴 수 있다면 읽어봐야겠다. 요즘 고민 중인데, 내년쯤에는 어린이집을 잠시라도 보낼 수 있지 않을까라고) 그래서 엄마 인생 곧 8개월을 맞이하는 이때, 틈틈이 생각해 둔 양육에 대한 다짐 비슷한 내용들을 정리한다.
의도해서가 아니라 어쩌다 보니 소유물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아이를 소유물로 여기거나 '아이는 곧 나'라고 생각하는 경우 부모와 자녀 모두 불행해진다. 말러의 대상관계이론에서는 아이가 분리와 개별화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부모는 아이의 분리하기 위한 노력이 서서히 촉진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아이가 독립해나가는 과정에서 부모도 분리되고 지켜봐 줄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인데, 역시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
공생 단계에서 성장해 분리-개별화가 되기 위해서는 아이를 잘 보듬어주고(공생 2~6개월), 아이에게서 기쁨을 느끼면서 지지해주고(분리-개별화>부화6~10개월), 아이의 독립 의지를 응원(분리-개별화>연습 10~16개월)하며, 적절한 훈계(분리-개별화>재접근 16~24개월)도 해줘야 한다. 훈계의 탈을 쓰고 아이에게 분을 표출하거나 속상한 일이 있다고 아이를 막 대하거나 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만, 이 또한 엄마들이 무수히 겪는 난관이다.
갓난아이라서 워낙 귀엽다, 보살펴줘야지 하는 생각만 하느라 아이가 인격체라는 사실을 잊기 쉽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한다. 아이도 엄연한 인격체로 존중받아 마땅하다. 아이가 몰라서 다른 사람에게 민폐가 되지 않도록 훈계는 명확히 하되, 아이의 생각을 묻고 듣는 일에도 부지런을 더해야 한다.
아이는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는 일이 더 많을 것이고, 평생을 나와 분리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나도 그럴 것이다. 아이가 필요할 때면 언제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건강하게 분리된 엄마가 되어야지.
"다 널 위해서야."
널 위한다는 말과 행동이 아이에게는 폭력이 될 수도 있다. 엄마들이 모여서 학원은 어디가 좋더라, 입시가 어떻다더라 삼삼오오 모여서 서로 정보를 나눈다며 정기적으로 모인다. 비싼 돈 들여가며 학원 보내랴, 입시 설명회 쫓아다니랴, 돼지엄마랑 친해지기 위한 노력까지. 바쁘다 바빠하다가 정작 아이가 학원에 가지 않겠다고 하면 '다 널 위해서야'한다. 아이 입장에서 본다면 정서적 폭력이다. (그냥 엄마 혼자 바쁠 뿐 아이가 원하는 건 모르고 있는 경우도 많다)
엄마들의 서열은 자녀의 성적순이라는 씁쓸한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미리부터 남편과 의견을 일치시켜 둔 것 중 하나는 아이가 공부가 싫다고 하면, 공부 외에 다른 것을 스스로 생각해보고 찾을 수 있도록 돕자는 것이다. 물론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고 할 때는 (타당한 이유가 없다면) 그래도 최대한 설득을 해서 학교를 다니게 할 생각인데, 이유는 그 나이 또래에 '인간관계'를 배우기에 학교가 충분히 좋은 곳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아이가 나중에라도 또 다른 일을 하고 싶어 졌을 때 조금 더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다른 이유 하나가 더 있는데, 학생의 때에 그 시기에 누릴 수 있는 평범한 행복은 (지옥 같이 공부로 몰아세우는 살인적인 스케줄은 행복 중 불행이다만) 학교에 있기 때문이다.
<장난감 육아의 비밀>에서는 아이를 망치는 물건으로 '부모의 만족도만 높이는 전집 세트'를 이야기했는데, 문제의 전집 세트를 중고로 사려다 사기를 당한 적이 있다. 사기를 당했어도 기어이 사겠다며 집착하는 나를 보며 문득 든 생각은
맞아, 실은 엄마가 보고 싶어서 그래
인정하고 보니 마음은 편해졌다. 이런 자아성찰 이후 물욕을 버렸다면 나름 모양새가 좋았겠다만, 열심을 내서 결국은 괜찮은 가격에 그 전집을 사고 말았다. 우리 애는 이유식 용기 뚜껑이랑 거울만 있어도 저렇게 신이 나는데 말이야. 우리 집 아기 7개월, 벌써 내 욕심을 보이는 문제적 엄마네.
선택할 수 있는 것만큼 만족을 주는 일을 찾기 힘들다. TV에도 종종 나오는 좋은 육아의 예시다. 아이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숙제해!"가 아닌, "숙제를 먼저 하고 놀까? 아니면 먼저 놀고 숙제를 할까?"라는 사실. 범위와 경계를 정해주는 것은 부모의 몫이긴 하지만 선택권은 아이에게 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
물론 우리 애는 달라서 어떻게 해도 무슨 방법을 써도 숙제를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남편이랑 정해놨다.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하고, 선택을 제안하더라도 안 하면 그냥 쿨하게 학교에 보내기로 딱 정했다. (어머나, 잘 될지 모르겠다) 그리고 학부모 면담 같은걸 부지런히 다니겠지. 숙제를 즐겁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좋은 선생님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차별의 대상이 될 염려도 없지 않다. (그때 생각해보기로)
인생에 있어서도 선택과 결정은 아주 중요한데, 부모가 예시를 들어줄 수는 있지만 결정을 강요하지는 말아야 한다. 멀리 갈 필요 없이 내가 여태 그러고 있다. 우리 부모님이 편입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집을 나오면서 까지 고집을 부려서 어찌어찌 공부를 했던 경험은 지금도 '제법 잘했어'라고 생각하는데, 부모님과 다툰 끝에 (더 이상 다투고 싶지 않아서) 결국 원하지 않는 회사에서 1년 넘게 일을 한 경험은 여전히 '그때 조금 더 견디다가 다른 일을 했다면...'한다.
배우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는 것도 아이가 주도적으로 생각하게 하고 싶다. 1년을 약속하는 이유는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의 의미도 있지만, 제대로 된 재미를 알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함께 기다리도록 약속하는 의미도 있다. 대부분의 것들이 사실 초반에는 무척 흥미롭다. 그러다 중급으로 들어가기 전(혹은 고급 이전의 고비)에 한 번 어려움을 느낀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좋든 싫든 그럭저럭 하게 된다. 다시 찾아오는 어려움은 고급 과정을 지날 때다. 여력이 있고 더 재미가 붙는 것들이 있는 반면, 항상 어렵고 여유 없고 더 이상은 무리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선택을 했다면 1년은 해보자는 의미는 중급쯤 오는 슬럼프를 극복해 보는 끈기를 기르는 것과 고급 이상의 능력을 키웠을 때 오는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고 싶어서다. 보통 1년 안에 고급까지는 못 가지만 중급쯤 오는 슬럼프를 한 번은 겪기 때문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고, 프로이트도 말러도 생후 36개월까지를 잘 살펴 이론을 만들었다. 물론 나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일관성이 없는 편이고, 기억을 잘 못하며, 아주 변덕스럽다. (남편이 나에게 그렇다고 하던데) 지금 까지는 먹이고 재우는 것으로 육아의 반 이상을 완성했지만 앞으로는 다른 것들이 늘어나겠지. 그중 하나가 훈육의 문제다. 훈육의 문제 앞에 일관성 없고 기억 못하고 변덕스러운 아줌마는 늘 조심스럽다.
육아의 멘토! 우아달(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하면 떠오르는 그분, 오은영 선생님은 "아이 훈육은 부모의 의 무"라고 하셨다.
여러 말하는 것보다 훈육에 대해서는 전문가의 말씀을 들어보는 게 좋겠지.
위에 '그래서 링크'를 누르면 훈육과 관련된 내용을 볼 수 있다. (인터넷 신문인 듯한데, 내용이 제법 알차네)
열심히 읽다가 꼭 주의해야지(나에게 꼭 필요한 부분)라고 생각되는 부분이라 적어둔다.
"아이는 3세부터 신경계가 불균형하게 발달하면서 자기감정을 조절하기 힘들다. 우선 아이를 훈육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절대 그 자리를 뜨면 안 된다"며 "아이는 자기를 가둬놓거나 버리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역시 어렵다.
1번이 잘 이루어진다면 어느 정도 잘 되겠지 싶은 내용이긴 하다. 그러나 격동의 80년대에 태어난 나는 세 가지 말을 거의 듣지 못하고 자랐다. 우리 집은 엄부자모가 아니고 엄부엄모 집안이었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고, 사랑도 받아 본 놈이 줄 수 있으려나. 그래서 연습 중이다. 아이와 놀다가 무슨 일이 있으면 미안해, 아침에 일어나서 사랑해, 밥을 잘 먹어줘서 고마워한다.
부모님께도 죄송하다, 사랑한다는 말씀을 잘 못 드린다. 아이에게 연습보다 부모님께 하는 연습이 더 어렵다. 연습이 필요하다. 고맙습니다는 자연스럽고, 죄송할 일이 생기면 말씀을 드려야 하니 하게 되는 말이 '죄송'이지만, 사랑한다는 해 볼 일이 없으니 어쩐다.
참 따뜻한 말이니 오늘부터 해봐야지.
그냥이라는 말은 편한 말이다. 청소년 아이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기도 하다. 나도 무려 15년 전에는 그랬다. 생각해보니 '그냥'이라고 하는 이유는 생각하기 싫어서, 이유를 말하면 혼날까봐, 내가 말한 이유가 틀릴 것 같이서, 어차피 말해도 틀렸다고 할거니까 등등의 이유가 있었다.
정말로 '그냥'이라서 '그냥'이 아니었다.
심리학에서는 '현재 나에게 일어나는 현상은 모두 이유를 갖고 있다'를 전제로 사람을 생각하고, 연구한다. 우주 만물까지 안 가더라도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이 이유를 갖고 있는데, 우리는 '왜'를 무시하거나 모른척하는 환경에서 열심히도 자라 왔다. '왜'가 없어서 하고 싶은 일을 찾을 때도, 입시 준비를 하거나 취업 준비를 할 때도 막연하고 어렵기만 하다.
아이가 무엇을 하고 싶을 때 왜 하고 싶은지 이유를 생각해보고 같이 동기부여를 해줄 수 있는 엄마이고 싶다. 사고 싶은 물건이 생긴다면 그 물건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아이 스스로 그 물건이 꼭 필요한 물건인지 잘 설명할 수 있도록 돕는 엄마여야 겠다.
처음에는 아이니까 '친구가 하니까'와 같은 사소한 이유라도 괜찮다. 솔직하고 담백하게 '나'를 볼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한다. (내가 그렇지 못해서 이렇게 적고 있나 싶다) 사소한 시작이 나중에 결정적인 순간에는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왜'하고 스스로 묻는 습관이 없어서 '왜'하고 물으면 '그냥 해'라는 대답만 돌아와서 너무 생각을 하지 않았더니 결정적인 순간에 혼자 쩔쩔매고 있을 때가 많았거든.
하고 싶은 마음, 갖고 싶은 마음만 있고 정작 '어떻게'를 몰라서 이도 저도 못하고 시간만 흐르는 경우도 많다. 어떻게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면 스스로 하게도 기다려보고, 조언을 구할 때는 힌트도 주면서 지내야지. 아기가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에는 '왜, 어떻게' 스케치북을 하나 만들어줘야지. 여기에 일기도 쓰고 낙서도 하라고 해야겠다. 과자를 사고 싶은 이유, 그렇다면 어떻게 할지 같은 소소한 것들도 적어두면, 귀여움이 퐁퐁퐁이겠다.
영원히 알 수 없는 '엄마가 이다음 크면 줄게'라고 했던 세뱃돈의 행방. 궁금한 사람들이 제법 있겠다. 시부모님은 통장을 만들어 친척분들에게 용돈 받은 것들을 잘 모아서 남편에게 주셨다고 한다.
통장을 만들어 모아주는 이유는 '경제 개념'에 대한 이유도 있고, 아이에게 어른들이 주신 돈이니 만큼 아이 것으로 두고 싶은 마음(소유의 개념)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7개월 사이 친척 어른들이 주신 아기 용돈은 '엄마가 이다음에 줄게'하고 써버렸다. 딸, 미안해. 다음 달에 통장 만들러 은행 가야지.
육아에 있어서 아빠는 돕는 것이 아니고 함께 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요즘 화두다. 힐링캠프에 출연한 철학자 강신주는 주말에 '아빠 피곤하니까 쉬세요'하지 말라고 했다. 아빠는 소가 아니란다. 그렇다. 아빠는 소가 아니다. 아빠는 소가 아니니 육아에 적극 참여하라고 했더니 남편은 "아빠는 소야. 집에서 일하는 소" (남편은 요즘 이유식 보조) 하더라.
아빠를 ATM 기계나 소로 만들지 않으려면 중요한 결정이 있을 때는 아빠와 함께 결정하고, 엄마가 아빠와 항상 의견을 공유해야 한다. 그리고 아빠는 시간이 없다면 일부러라도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내야 한다. 그래야 현금인출기나 소가 아닌 '아빠'가 될 수 있다. 현실이 녹록지 않지만 소가 아니라 아빠가 되기 위해 어떻게든 해봐야지. 사실, 남편이 회사에 들어간 후 얼굴 보기가 남편 회사 사장님 얼굴 보는 것만큼 힘들어졌다.
마지막 열한 번째도 첫 번째 내용과 다르지 않다. 부모와 자녀 관계를 인격적인 만남이라 생각한다면, 지금 아이에게 주는 보살핌을 비롯한 모든 것들이 후일을 대비한 무엇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이가 배 속에 있을 때부터 하던 생각이다. 부모는 자녀를 양육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아이에게 효를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아이가 한 사람의 성인으로 성장해서 자립하도록 도울 뿐, 다른 것을 바라서는 안된다는 생각.
부모와 자녀로 만난 '관계' 안에서
함께 성장하고 늙어갈 수 있다면
이 보다 좋을 수 있을까
그래서 분주해진다. 아이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20년 후, 30년 후 노년기에 접어들었을 때 현실적으로 우리 부부가 충분히 자립할 능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것과 정서적인 것, 건강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