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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 Oct 14. 2015

죽음에 관하여

서른,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이야기 007


며칠 전 남편은 할머니 임종 예배를 드리고 왔다. 돌아가시기 직전 할머니를 봐야 할 것 같아 중요한 일을 제쳐두고 병원에 늦게까지 머물렀다. 가서 할머니 손을 잡아드리다 왔다. 나에게는 시할머니, 우리 아기에게는 증조 할머니다. 그날 밤 의사는 이번을 넘기기 어려울 거라며 기대 말라고 했단다.


가족들이 둘러 앉아 할머니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한 마디씩 했다.


"어머님, 속상하게 해서 죄송해요."

"할머니, 잘 해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그리고 사랑해요."

"할머니, 소담이 못 보여드려서 죄송해요. 사랑해요"


괜히 이 말을 전해 듣는데 눈물이 났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미안하고, 사랑하고, 고마운 것들만 전하게 된다.




기억하는 가장 최초의 죽음은 외할머니의 죽음이다. 초등학생이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아주 흐릿하다. 또렷이 남은 기억 하나는 엄마가 손수 외할머니 수의를 만들어 드렸다는 것, 아직도 기억에 또렷하다. 그 옷을 전해드리러 함께 갔다. 할머니께 직접 보여드리며 잘 개서 할머니 방 장롱 위해 올려두던 장면을 기억한다. 그리고 작은 방 안에 할머니와 함께 계시던 할아버지도 기억한다.


그다음은 외할아버지의 죽음이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홀로 지내시다가 몇 해가 지나 할아버지도 돌아가셨다. 청소년기 기억 중 유독 강렬한 기억으로 남은 까닭은 장례에 참여했던 사람은 엄마와 나, 그리고  동생뿐이었고 세상에서 가장 간소한 장례식이었기 때문이겠다. 할아버지는 화장되었다. 화장되는 과정 중에 굳게 닫힌 철문, 그 이후 뼈를 갈아대는 소리를 기억한다. 기억하는 소리와 장면은 그렇게 좋진 못하다. 할아버지는 건장하신 분이셨다. 사람이 죽으면 한 줌의  재가된다고 하던데 나에게 안겨진 할아버지의 일부, 그  첫인상은 뜨겁고 묵직했다. 무겁다는 표현도 적절할지 모르겠다. 겨우 중학생이던 나에게는 그랬다. 기억에는 할아버지가 산에 뿌려달라고 했다고 하는데 이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기억은 셋이 근처 산으로 갔다는 것이다. 나는 흰 가루가 된 할아버지를 산에 뿌리는 일을 했다. 나 혼자 뿌리는 일을 했던 것 같은데 동생은 너무 어렸고, 엄마는 가루가 된 할아버지와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무슨 생각을 했더라...?'

그저 지금은 문득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


그다음 기억은 스무 살,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던  어디쯤. 대학에서 같이 공부하던 동기 언니가 갑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친구와 급하게 장례식장으로 갔다. 언니와 친하지 않아서 심지어 지금은 언니 얼굴도,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언니와 친하던 다른 동기 언니의 눈물과 표정, 너무 힘들어하던 얼굴이 생각난다. 나는 그저 서 있었다. 장례식이 처음이라 뭘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다.


죽음을 슬퍼하던 대학 동기들의 얼굴과 그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하던 스무 살의 어린 내가 있었다.


다음 죽음에 대한 기억은 파릇한 20대 초반 혹은 중반에 마주한 고등학교 친구 K의 죽음. 그녀와 아주 친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평소에는 그랬다. 한 번도 같은 반이었던 적이 없었는데 얼굴을 알고 인사를 하는 정도다. 신기하게도 같은 반이었던 적이 없던 친구 H의 연락으로 그녀의 죽음을 마주하게 됐다. 중고등학교 때 같은 반인 것과 아닌 것은 친분에 큰 차이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상황이 묘했다. 친구 K의 죽음 앞에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역시 한 번도 같은 반이었던 적이 없던, 하지만 나보다는 K와 더 친하다고 생각되는 또 다른 친구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서 전화를 한 것이었다. 아쉽게도 또 다른 친구는 결혼 후 임신 중이며 심지어 지방에 살고 있었다.  


그래서 H와 둘이 갔다. 빈소는 조촐했다. K의 어머니를 처음 뵀다. K는 엄마를 닮았었다.


그녀는 심장이 좋지 못했다고 한다. 농담하기를 좋아하고 환하게 웃던 친구 얼굴이 떠올랐다. 생뚱 맞게도 K가 세상과 이별하면서 나는 H와 만나게 됐고, 그간의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K를 생각하게 됐다.


'몰랐다...'

몰랐다. 많이 아팠을 친구를 생각하니 까닭없이 미안해졌다. 늘 웃고 있어서 몰랐다.


예견된 죽음 앞에서도 갑작스런 죽음 앞에서도 할 수 있는 건 그저 그 자리에 찾아가 그 사람에 대해 기억해 주고 생각해 주는 것, 그 뿐이었다.





할머니의 상태가 다행히 좋아지셨다. 동시에 기억이 오락가락  하시기도하고 격하게 짜증을  내시기도한다 해서 찾아뵀다. 많이 수척해지셨다. 마르셨고, 남편이 전해준 말처럼 링겔을 많이 맞아서 손등이 퉁퉁 붓고 멍이 들어 있었다. 요양 병원에서 단지 깔끔함을 목적으로 잘라준 너무 단정한 머리가 괜히 신경 쓰였다.


할머니는 예쁜 것, 좋은 것을 유난히 좋아했고 또 굳이 그렇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 분이셨으니까. 차마 얼른 나으셔서 집에 가자는 말씀은 못 드렸다. 손을 잡아드리고, 아기 사진을 보여드렸다. 아기는 할머니를 닮았다.


할머니가 그렇게 말씀을 많이 하시는 걸 본 일이 없다. 이야기를 10분 이상 나눠 본 것도 처음이다. 귀가 잘 들리지 않아 답답한 이야기, 보청기를 비싼 돈 주고 했는데 제대로 써보지도 못했다는 이야기, 라면이 드시고 싶으셨는지 자꾸 라면 이야기도 하신다.  어린아이처럼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셨다.


며칠 전 남편이 해 준 말들을 생각하며 병실을 둘러보았다. 볼품없고 초라한 누군가가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병실에 누워계신 할아버지 할머니들 모두 누군가의 아버지이며 어머니, 그리고 한 때는 꿈이 많은 힘 센 청년이었다. 


죽기 전에는 결국 다 똑같은데,
뭘 해보겠다고 그렇게 아등바등 하는 건가 싶더라.

아직까지는 생경한 죽음이라는 단어 앞에서 잘 사는 것이 뭔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과 나의 죽음을 생각한다.


'두렵거나, 무서울까?'

죽기 싫다는 생각이 들지도 몰라.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어간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라던 윤동주 시인의 서시처럼, 우리는 유한한 존재로 태어나 죽을 줄 알면서도 오늘을 산다. 죽음 앞에 어떤 태도로 있어야 할지, 생각하다가 故박완서 선생님의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펼친다.



살아 있는 것들만이 낼 수 있는 이런 기척은 흙에서 오는 걸까, 씨앗들로부터 오는 것일까. 아니 둘 다일 것 같다. 흙과 씨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을 적이 많다. 씨를 품은 흙의 기척은 부드럽고 따숩다. 내 몸이 그 안으로 스밀 생각을 하면 죽음조차 무섭지 않아진다.

신이 나를 솎아낼 때까지는 
이승에서 사랑받고 싶고, 
필요한 사람이고 싶고, 좋은 글도 쓰고 싶으니 
계속해서 정신의 탄력만은 유지하고 싶다.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집에 가만히 앉아 누워있는 아기 냄새를 킁킁 맡는다. 지금 갓 삶을 시작한 냄새, 하지만 역시 죽어가는 과정에 있으며 그래서 이 순간이 항상 가장 빛날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죽기 전에도 죽음이 친숙하지 않겠지. 아마 그럴 것 같다.


신이 나를 솎아낼 때까지는 
이승에서 사랑받고 싶고, 
필요한 사람이고 싶고,
좋은 글도 쓰고 싶으니 
계속해서 정신의 탄력만은 유지하고 싶다.




<문장수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2010


<그림>

죽음에 관하여, 시니/혀노, 2012





덧, 네이버 웹툰 <죽음에 관하여>는 웹툰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알만 한 작품입니다. 우리는 죽음 앞에서 삶을 생각하게 되죠. <죽음에 관하여>도 그렇습니다. 감명 깊게 본 좋은 작품이죠. 꼭 한 번 보세요 : )


이번 글을 쓰면서 나의 죽음에 대해서는 아직도 너무 어색해서 여전히 정리가 안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는 꼭 '고마운 것들 잘 기억해 뒀다가 말해줘야지' 했어요. 아, 되로록 이면 바로 말하는게 더 좋겠어요.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 너무 늦게 하지 말고 미리 많이 해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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