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엄마, 엄마도 사람입니다만
가끔은 육아 기계인가 싶다. 어떨 때는 가슴 한가득 생명에 대한 경외감에 벅차오르다가 푸쉭하고 바람이 빠져버리기도 한다. 한껏 울어 젖힐 때면 소리를 빽 지르고 싶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까꿍 놀이를 하며 세상에 둘도 없는 함박 미소를 날리는 너를 보면 나도 그냥 웃어버릴 수밖에.
낮 수유를 끊으며 수면 패턴이 달라진 아기 덕에 한동안은 정신이 없었다. 8월이면 돌잔치라 크게 준비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항상 쫓기는 기분이 드는 건 기분 탓인지 성격 탓인지 모를 일. 그래, 난 요즘 엄마다.
여자. 여자이길 바랬던 시간은 서른 해를 지나는 동안 모두 더해봐야 3년 정도. 나머지 27년, 28년의 시간은 대부분 형체가 불분명한 성공을 그리기 위해 노력했었다. 알면서도 마음에 와 닿지 않던 생각, 오늘이 가장 젊고 아름답다는 것. 출산 후 종일 아이 뒤만 쫓아다니던 어느 날 불현듯 그 말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와 닿는다. 어느날 거울 앞에 서서 축 늘어진 살들을 갖게 된 나를 보고 그제야 너무도 잘 알게 되었다.
오늘이 가장 아름답다
할 수 있다면 자신감을 갖고 가꿔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생각으로만 남지 않았으면 싶지만, 워낙 편한 것들을 쫓아 버릇해서 오늘도 헐렁한 티를 대충 입고 집을 나선다. 그럼에도 요 근래 들어 엄청난 확신을 갖게 된 '오늘이 가장 아름답다'라는 나의 생각은 내일도 여전할 것이다. 헐렁한 티에 헐렁한 바지, 아기띠를 들춰맨 나라고 하더라도 그렇다. 요즘은 그 아기띠가 없다면 울퉁불퉁 튀어나온 뱃살이 머쓱해지는 나라 해도 그렇다. 치장은 대충 그린 눈썹과 급하게 바른 선크림이 전부라 하더라도 그렇다. 여자로 불리기보다 엄마로 불리는 게 가장 자연스러운 이 때라서 다행이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여자와 엄마의 거리가 제법 멀어 보였지만, 아기띠와 한 몸이 되어야 뱃살이 가려지는 요즘은 둘 사이가 부쩍 가까워졌다.
'나'라는 존재의 행방, 아무리 엄마라지만
여자도 엄마도 아닌 '나'였으면 해서 쓴다. 최근 한 달은 그나마 무어라도 적지를 못해서 더욱 텅 빈 기분이 많이 들었다.
아무리 엄마라지만 내가 '나'라는 사실을 잊는 건 무기력을 부른다. 생각해보니 내가 '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절실하게 하게 되는 것, 내 생활에 '나'의 흔적이 없어서 문득 힘들어지는 것 모두 내가 아닌 다른 존재를 위해 하루를 보내기 때문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누군가를 위해 하루 온종일을 온전하게 쏟아본 적 없으니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었던 시간들 중 제대로 '나'에게 집중하며 보낸 시간은 얼마나 있는지도 생각하게 된다.
맘껏 잘 수 없을 때, 쫓기듯 밥을 먹을 때, 책 한자 제대로 읽지 못해 머리가 텅텅 비어 가는 자신을 보며 자아의 해방을 외쳐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만난 것은 다시없을 축복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의 자아는 스스로 찾기로 결심한다. 하루에 한 글자라도 적어보고, 조금이라도 생각하고, 졸려도 딱 한 장이라도 읽다 보면 ( ...) 그렇게 지내다 보면 너도 나도 훌쩍 자라 있겠지.
오늘이 가장 아름다운
너와 나의 성장을 위해
딸, 우리 오늘도 잘 살았다. 그렇지?
너의 자아가 하루하루 충만해져서 옷 입기를 꺼려하고, 먹을 것을 치우면 슬피 울지만 그래도 널 사랑해.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으로 화장실 슬리퍼를 먹기를 좋아하는 너. 하루가 다르게 무게가 늘어가는 너를 화장실에서 꺼내오는 일이 나에게 주어진 새로운 일과가 된 것도 즐거움으로 소화할 수 있는 엄마가 되어볼게.
워낙 많이 먹어서 하루에 응가를 여러 번 하니 무척 분주하더라. 그런데, 똥이 이렇게 감사할 줄이야. 너를 만나 다른 세상을 알게 되니 작은 일에도, 큰 일에도, 오늘 하루 너와 내가 무사하다는 사실이 이토록 감사한 일일 줄은 몰랐다. 감사, 다행이라는 말 참 많이 하게 되더라. 엄마의 자아는 스스로 찾아볼 테니, 너의 자아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같이 노력해보자꾸나.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알려준 딸, 내일도 잘 지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