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엄마, 완벽할 필요는 없지만
애착
엄마들을 여러 번 들었다 놨다 하는 말이다. 더욱이 3세 이전의 애착이 중요하다는 말은 출산을 하는 순간부터 모성애가 뿜뿜 쏟아져 나올 것이라는 판타지를 꿈꾸던 엄마들을 더욱 좌절하게 한다. 가끔은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딱 맞기도 하다. 애착육아에 대해 큰 관심이 없을 때는 적어도 엄마들이 '애착'이라는 단어로 죄책감에 시달리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아이는 가끔 양양이를 꼭 끌어안고 어린이집에 간다. 이제 곧 (애가) 나오겠구나 싶은 배를 어찌할 도리가 없어 아침이면 딸을 꼬셔서 유모차에 태워 어린이집으로 등원을 한다. 다음 달이면 둘째를 낳을 예정이라 내 배는 한 없이 커지는 중이다. 중기 까지만 해도 딸과 함께 어린이집에 걸어가면서 옆 길로 새서 이것저것 구경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는데, 요즘은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딸내미를 쫓아다닐 여력이 없어 유모차를 태운다. 그러다 가끔 유모차를 탈 생각이 없는 날이거나,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어린이집 가는 일에 큰 관심이 없는 날에는 딸이 애정을 갖고 있는 친구들의 힘을 빌린다.
사진 제일 왼쪽이 뽀롱뽀롱 뽀로로의 친구 크롱, 가운데가 양양이, 그 옆 오른쪽이 티티다. 글 제목에 적은 토토는 이 인형들보다 크기가 2배 작은, 딸아이 몸통보다 조그만 토끼 인형이다. 때마침 단체사진을 찍기로 한 날 다른 곳에 있어 셋이서만 찍었다. 이 친구들의 힘을 빌려 어느 날은 양양이, 어느 날은 티티, 어떤 날은 토토와 함께 어린이집에 가곤 한다. 한 동안 양양이, 티티와 함께 어린이집에 가는 날이면 낮잠 시간에도 끌어안고 잤단다.
우유 먹였어?
딸은 양양이를 꼭 끌어안고 유모차에 앉아 어린이집에 가는 길이었다. 아파트 계단실, 공동현관 등을 청소해주시는 할머니가 계시는데, 항상 인사를 주고받는다. 할머니의 '우유 먹였어?'라는 말은 아이를 분유를 먹여 키웠냐는 말이었다. 어쩌다 어쩔 수 없이 내 뜻과는 달리 완모(완전 모유수유) 를 하게 된 나에게는 완모 부심(완모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그래서였는지 처음 그 말을 듣고 아침에 밥을 먹고 아이가 우유를 먹고 나왔냐는 말로 언뜻 이해했다가 곧 알아차렸다. 할머니는 아이가 인형을 매번 꼭 끌어안고 가는 것을 보고 분유를 먹여 키워서 적게 안아줬구나 싶으셨나 보다.
"아니요, 모유만 먹고 컸어요." 했더니 좀 머쓱했는지 "인형을 너무 좋아하길래..." 하면서 말을 줄이신다. 가볍게 소리 내어 웃으며 "아이가 인형이나 보드랍고 폭신한 것들을 많이 좋아하더라고요."라는 말을 남겼다. 딸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만약 모유수유 안 했으면,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괜히 그래서 그런가 하며 걱정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모유수유
애착이라는 말과 함께 반은 세트처럼 붙어 다니는 모유수유도 엄마들을 스트레스로 내몬다. 어느 정도만 아는 상태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 사이에서 막연하게 불안한 엄마들은 3세 이전에 애착이 중요하다니까 육아에 대한 자신감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맘에 짐을 한가득 안고 회사로 일을 다니게 되고, 모유수유를 하지 않으면 무슨 큰 죄라도 짓는 것 같은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자연분만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그나마 덜하지만 30년 전 아이를 낳은 아주머니는 시아버지가 꼭 자연분만해야 한다고 해서 4.5kg인 아이를 자연분만으로 낳다가 죽을 뻔했다는 이야기를 이제는 시간이 많이 지났다며 웃으며 이야기하시더라. 출산의 주체가 엄마인데, 엄마는 안중에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 다니는 산부인과의 큰 장점이자 역으로 가장 큰 단점이 '모유수유'라고 한단다. 모유수유를 잘할 수 있도록 지도해줘서 감사하다는 내용과 모유수유와 모자동실을 너무 강요해서 다음 출산 때는 절대 오지 않을 것이라는 극과 극의 의견이 분분하다.
모유가 좋은 것도 자연분만이 좋은 것도 애착이 중요한 것도 다 안다. 그러나 다들 잊고 있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앞으로 양육을 하게 될 '엄마'다. 엄마가 스스로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만족하면서 아이를 기쁨으로 양육할 수 있는 방향을 고려해줘야 한다. '모유가 좋은데, 자연분만이 좋은데' 라며 어디까지나 단지 옳은 소리일 뿐인 말들로 엄마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건 어디까지나 임신과 출산의 당사자가 아닌 다른 이들의 강요가 될 뿐이다. 여성의 유방은 모두 달라서 어떤 엄마는 모유가 너무 많아서, 또 다른 엄마는 너무 없어서 고생한다. 엄마와 짝을 맞추는 아이 기질도 모두 달라서 어느 아이는 엄마 젖을 더 좋아하고 어느 아이는 빨리 배고파지는 게 너무 싫어서 그렇게 젖을 물려도 (엄마 젖이 넉넉한데도 불구하고) 급한 성격을 참지 못해 아주 빨리 분유를 선택해 버리는 아이도 더러 있다.
앞에서 완모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고 적긴 했지만, 이 자부심이라는 것도 어쩌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노력하게 되어 완모를 하게 된 노력에 대한 칭찬일 뿐, 완모를 했기 때문에 '나는 대단하다'까지 정도의 자부심은 아니다. 혼합수유를 하고 싶었으나, 엄마의 뜻과는 달리 100일쯤 되니 아니가 모든 가짜 젖꼭지를 단호하게 거부해서 결국은 모유를 먹이기로 했을 뿐이다. 모유수유는 엄마와 아기가 서로 노력해서 맞춰가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엄마와 아이의 상태를 모르는 제삼자가 함부로 강요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물론 모유수유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수유 방법에 대해 제대로 된 교육을 진행하는 것에는 전적으로 찬성. 애착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아이와 24시간 붙어 있을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아이와 애착관계를 잘 이어나갈 것인지를 이야기해주는 전문가가 있었으면 좋겠고, 엄마들 또한 생후 3년의 애착형성이 중요하다지만 애착은 생후 3년뿐 아니라 평생 동안 이뤄지는 과정이기도 하니 3년에만 너무 치중해 괴로워할 필요도 없다.
아이에게 필요한 '재접근'의 단계
말러는 아이가 애착을 형성하는 과정을 심리적 탄생 발달 단계로 나누어 이야기했다. 출생 후 2개월 까지를 자폐, 2개월부터 6개월 까지를 공생, 6개월 이후 24개월 까지를 분리와 개별화, 24개월에서 36개월 까지를 대상항상성의 발달 단계로 나눴다. 그중에서 분리와 개별화 단계를 다시 세 개로 구분 지었는데, 6개월부터 10개월을 부화, 16개월 까지를 연습, 다시 16개월부터 24개월 까지를 재접근 단계로 이름 지었다.
딸은 요즘 '재접근'이라는 성장과정을 거치는 중이다. 이 시기는 자신의 취약성을 알게 되면서 엄마에 대한 의존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시기라고 한다. 아이가 출생 이후부터 스스로를 '나'라는 존재를 인식하면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단계다. 독립과 의존에 대해 갈등하기도 하고, 그렇게 하면서 '엄마'를 독립된 인격체로 인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이는 엄마의 부재를 해결하기 위해 '중간 대상'에 애착을 보이게 되는데, 여기서 말하는 중간 대상은 담요, 인형, 우유병, 물병 등 아이에 따라 다를 수 있겠다. 이렇게 중간 대상에 대한 애착을 갖게 되면서 양육자와 자신의 마음, 관계에 대해 최적의 거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인형, 담요, 그 외 기타 무엇이 있다고 해서 엄마와의 애착형성이 잘못되었다거나, 엄마가 아이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염려할 필요가 없다.
이런 과정을 거쳐 아이는 엄마에 대해 일관된 상을 갖게 되고, 엄마가 옆에 없어도 어딘가에 있다는 확신을 명확하게 갖게 되는데 말러는 이 단계를 정서적 대상항상성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그러니까 요약해보자면, 자폐로 시작해 분리와 개별화 단계를 거치는 모든 시간들이 결국은 엄마가 옆에 없어도 안정적으로 삶을 살아낼 수 있는 힘을 아이가 갖게 하기 위한 '정서적 대상항상성'을 위한 과정이라는 것.
요즘 딸은 '아니야'라는 말을 하루 종일 달고 사는데, 이 또한 이론서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다른 부분은 여느 육아서적처럼 나의 육아가 책의 육아와 매우 다르지만, 신기하게도 이런 '아니야'를 자주 하는 아이에 대한 내용 같은 경우 딱 책에 나온 이론처럼 꼭 같이 아이가 커 가는 것은 왜 때문인지) 정서적으로 동요가 있고 의존과 독립의 욕구가 마구 뒤섞여 있으니 일단은 싫다, 아니다로 표현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인형이나 사물에 너무나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쏟거나, 매일 같이 하루의 시작과 끝을 '아니야'로 보내더라도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엄마를 도와주는 애착 인형
양양, 티티, 토토에게 오늘도 고마워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애착 인형을 미리 사두는 경우도 많던데, 시간적, 금전적인 여유가 부족해 신경 쓸 여력이 없어 사두지 않았다. 아이가 태어나고 딸이라고 하니 인형을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에 어쩌다 보니 이 집, 저 집에서 쓰던 인형들을 받아오게 된다. 신기하게도 애착 인형은 아이가 선택한다는 말이 있던데 딸은 어느 날 갑자기 친할머니 집에 가더니 분홍토끼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 허락을 받고 인형을 데려오게 되고, 외할머니 집에 가서는 양양 이를 데려오게 된다. 티티는 남편도 어려서부터 갖고 놀던 무려 20년 가까이 나이를 먹은 인형이고, 양양이는 이불을 샀더니 사은품을 주더라는 고가와는 거리가 먼 그저 사랑스러운 두 인형이다. 그러니 돈이 없어 좋은 인형이나 좋은 담요를 못 사주더라도 전혀 걱정할 것은 아니다.
애착 인형의 도움을 받아 (나름) 즐거운 육아를
아이와 애착 인형이 친해지는 건, 역시 놀이를 통해서다. 애착 인형과 친해지기 첫 번째는 인형에 이름을 붙여주는 것, 두 번째는 인형과 즐거운 놀이를 자주 하는 것이다. 즐거운 놀이를 추천하자면 인형을 숨기고 찾기, 인형이 아이의 행동을 따라 하거나 같은 행동을 함께 하도록 엄마 아빠가 조작을 하거나 하는 방법이 있다. 인형과 엄마 또는 아빠 셋이서 자주 놀이를 하게 되면 아이가 인형에 더욱 애정을 갖게 돼서 안 잔다며 버티다가도
"소담아, 양양이가 졸리대. 티티가 졸리대."라고 하면 침대 있는 방으로 얼른 뛰어온다. 밥을 먹을 때도 한참 편식을 하는지라 양양이, 티티가 한 입을 먹으면 아이도 먹는 식으로 (아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조금은 도움을 받을 수 있더라. 요즘은 점점 배변훈련 때도 오고 해서 변기에 양양이가 먼저 쉬하기 놀이도 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숨어 있는 내면의 어린이
딸이 애착을 갖게 된 사물들에 무한한 애정을 표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 안에도 별 것 아닌 것들이라 여겨지는 건들에 애착을 갖던 어릴 때를 떠올리게 된다. 양양이는 아이가 너무나도 사랑해서 이고지고, 흔들고, 당기고, 목에 걸고 매일 같이 붙어 다녔더니 벌써 솜이 많이 꺼진 느낌이다. 벌써 헤져가는 양양 이의 목덜미, 떨어질 것 같은 귀, 왜 그런지 몸통과 점점 분리될 것 같은 양양이의 팔을 보며 괜히 인형을 복원해주는 공방들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기도 한다. 그리고 혹시나 주문제작을 맡길 일이 있을까 싶어 인형의 정면, 좌우, 뒷모습을 사진으로 자세히 찍어 남겨 놓는다.
자라나는 과정 속에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있어도, 함께 있어도 건강하게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