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엄마, 완벽할 필요는 없지만
딸은 왼손잡이다. 글을 쓰다가 문득 언제부터 그랬는지 혹시 나도 모르게 무의식 중에 오른손을 사용하는 것보다 왼손을 권한 건 아닌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가 6개월에서 8개월쯤 되었을 때 놀던 사진을 먼저 찾아봤다. 사진 속 아이는 자연스레 대부분의 물건을 왼손으로 쥐고 흔들고 있었다.
나를 봐 내 작은 모습을
너는 언제든지 웃을 수 있니
딸이 스스로 뭔가를 먹을 수 있기 시작하면서 아이가 왼손을 더 즐겨 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이가 왼손잡이라는 사실을 걱정한 적은 없다. 남편도 나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왼 둥이가 되려고 하나"라고 중얼거리시는 시어른들도 허허 웃으며 편한 손을 쓰면 된다셨다. 아이에게 달리 어느 손을 써야 한다는 다른 가르침은 없었다. 남편은 아이가 왼손을 편하게 사용하는 것 같으니 본인이 지금부터라도 미리 왼손으로 젓가락질 연습을 해볼까라는 이야기도 하더라.
너라도 날 보고 한 번쯤
그냥 모른척해 줄 순 없겠니
왼손잡이는 어린 나에게 신비로운 존재였다. 한 때는 의식적으로 노력한 적도 있다. 그저 양 손을 잘 쓰고 싶은 욕심에서다. 초등학교 때는 왼손 잡이면서 그림도 잘 그리던 어느 여자아이의 글씨 쓰는 뒷모습을 바라봤다. 가끔은 몸을 오른쪽으로 약간 틀어 조금은 불편하게 글씨를 쓰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다. 그 아이가 그림을 잘 그려서인지 왼손으로 그림을 그려서인지 어쨌든 그 애가 그림을 그릴 때는 옆에 서거나 뒤돌아 앉아 그 모습을 한참 지켜봤다.
종이 위에 그려지는 그림과 그림을 그려내는 손. 그 친구는 아마 글씨를 쓰는 자세가 그다지 불편하지는 않았을 테다. 오히려 매번 오래 물끄러미 보는 내가 불편했을지도. 생각해보면 그게 뭐 그렇게 신기한 일이라고. 제법 친했는지 아니었는지도 가물가물해서 아마 친한 사이였다면 괜찮았을 테지만, 아니었다면 민폐 중의 민폐다.
하지만 때론 세상이 뒤집어진다고
나 같은 아이 한둘이 어지럽힌다고
양손을 잘 써보고 싶어 의식적으로 노력하던 나는 날 때부터 오른손을 썼나 보다. 그래서 왼손잡이의 고충을 알리가 없었다. 이웃집 언니와의 대화 중 "아이가 왼손으로 밥을 먹어요. 대부분 다 왼손으로 하네요."했더니, 자기 동생이 왼손을 써서 엄격했던 부모님께 혼나느라 고생한 이야기를 전하며, "왼손 쓴다고 나쁜 게 아닌데, 그때는 그랬어. 매번 울면서 고쳤어. 엄청 스트레스였을 거야. 결국은 양손을 쓰게 됐지만..." 한다.
더 연배가 있으신 어느 분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더욱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왼손 쓴다고 할머니가 병신이라고 했어."
모두 다 똑같은 손을 들어야 한다고
그런 눈으로 욕 하지 마
아이가 왼손잡이라서 걱정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왼손잡이가 가진 장점에 대해서 생각하며 충분히 기뻐하던 중이었다. 친정 부모님도, 시부모님도 모두 크게 개의치 않으셨다. 오른손과 왼손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건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면서부터다. 평소 아이가 편한 손으로 밥을 먹도록 두곤 했는데, 어느 날부터 아이는 오른손으로 밥을 먹기 시작했다. 왼손을 쓰는 사람들이 신경 쓰는 목록에는 왼쪽으로 밥을 먹을 때 옆 사람과 팔이 부딪히는 경우 불편하더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혹시 그래서 어린이집에서 일부러 고쳐주나 싶은 맘에 어린이집 생활수첩에 적어 보냈다.
엄마: 선생님, 딸이 왼손잡이입니다.
선생님: 네, 어머님 그렇더라고요. 밥 먹을 때는 오른손을 쓰도록 지도하겠습니다.
엄마: 아닙니다. 혹시 아이가 왼손으로 밥을 먹는 것 때문에 다른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편한 손으로 자유롭게 먹을 수 있도록 지켜봐 주세요.
선생님: 네 알겠습니다.
몇 번의 알림장이 오고 간 뒤 아이는 식사시간이 되면 양손에 포크와 수저를 쥐고 신나게 밥을 퍼먹기 시작했다.
난 아무것도 망치지 않아 난 왼손잡이야
생활수첩을 적어 보내면서 이런저런 괜한 걱정에 맘카페들을 돌아보며 왼손잡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고민들을 살펴봤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씨를 쓰기 때문에 왼손으로 글씨를 쓸 때 자세가 틀어지는 문제, 왼손보다는 오른손 사용자가 월등히 많기 때문에 왼손잡이용 물건을 따로 구입해야 하는 것과 같은 물리적인 문제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다소 찜찜했던 것 하나는 초등학교 갔더니 아이에게 담임 선생님이 앞으로는 오른손을 쓸 것을 강요했다는 내용이었다.
뭐, 어때?
라고 생각했었는데, 단지 왼손을 쓴다는 게 지적받을 상황인가 싶어 갑자기 내가 더 억울해졌다.
사용하기 편한 손이 옳다는 말도 있더라. 인류의 10%가 왼손잡이라는데, 90%에 비하면 소수이긴 하지만 다수와 소수가 맞고 틀리고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건 어른으로 자라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인정하게 된 사실이다. 왼손을 쓰는 게 오른손잡이가 상대적으로 많은 세상에서 살아가기에는 불편할 수는 있어도 잘못된 일은 아니다.
어린이집 선생님과 아이의 일상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도 종종 왼손을 쓰기 때문에 아이가 불편한 점을 전달받고는 한다. 예를 들면 친구들과 함께 무지개끈(아이들이 함께 산책을 갈 때 선생님과 질서 있게 함께 움직일 수 있도록 손에 쥐고 걸어가는 끈)을 잡을 때 왼쪽 손으로 잡고 싶어 다소 불편해하는 아이의 소식과 같은 일상 중의 불편이다. 그럴 때면 그래서 불편할 수 있겠구나 하면서 기억해 둔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스스로가 왼손을 주로 사용하는 것이 훨씬 편하고 수월하다면, 일상생활을 하면서 오른쪽의 편의대로 맞춰져 있는 세상에 약간의 불편을 느끼며 적응하면서 살아가면 된다. 그뿐이다.
불편할 것이다라는 것도 오른손을 쓰는 엄마들, 사람들의 편견일 수 있다. 정작 왼손을 쓰는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왼손잡이는 미술, 체육, 음악과 같은 동작성 지능을 발달시킨다는 이야기가 있더라. 왼손잡이 투수의 경우 경기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하기도 하고, 왼손을 사용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와 같은 예술가도 있단다.
글을 몇 자 적기 전에 '왼손잡이'에 대해 찾아보다가 네이버 캐스트에서 왼손잡이를 다룬 내용들을 읽어본다.
난 아무것도 망치지 않아 난 왼손잡이야
라라라라 라라라라라라 라라라라라라
별 문제도, 신기한 것도 아닌데
왼손잡이가 불편할 수는 있어도 왼손잡이도 오른손을 사용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바라볼 수 있었으면, 당연했으면 한다. 처방전을 받아 들른 약국에 놓인 왼손잡이용 어린이 젓가락을 오늘도 물끄러미 바라본다.
왼손잡이
1집 Panic, 1995.01.01
패닉 (멤버 김진표, 이적)
발라드, 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