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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 Aug 23. 2017

남매의 첫 만남 프로젝트

05 둘째, 가족의 탄생



제왕절개 출산 후 약 일주일은 아이를 만날 수 없었다. 수술로 아이를 낳게 되면 링거를 기본 3일은 맞게 되고, 수술 후 3일이 지나야 그럭저럭 거동을 할 수 있게 된다. 그 전에는 몸을 일으키는 것은 물론 돌아 눕는 것도 무지막지한 신음을 동반한 괴성 없이는 불가능하다.  


둘은 23개월 차이다. 딸은 말을 이해하고, 어느 정도 인지할 수는 있지만 상황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두 돌된 아기다. 예상했던 대로 동생에 대해 애정 어린 마음을 가졌다가, 어느 날은 몹시 질투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 정도는 아주 양호한 편이다. 딸이 동생을 처음 마주하게 된 일주일 동안 우리 넷 모두는 고난주간을 살았다.


첫 아이에게 둘째의 존재는 '남편이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면서 두 번째 부인을 데리고 돌아온 것과 같은 충격'을 안겨준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자신이 누리던 사랑을 빼앗아 갔다고 생각하게 된다는데, 그래서 우리 부부는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일종의 판타지가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유소년기 서로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될 수도 있는 두 아이가 부모의 사랑을 놓고 맹렬히 다투느라 시간을 허비하도록 하고 싶지는 않아서다. 물론 우리는 두 아이가 부모의 사랑을 두고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비교할 수 있다는 사실도 늘 기억해 둘 것이다.



남매의 만남이 이루어지기 까지, 그리고 현재 '친해지길 바라'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엄마 아빠가 둘을 위해 해 줄 수 있었던 노력들을 기록한다.


D-10개월, 임신 이후 어느 날부터 동생의 존재를 알린다.

임신 초기에는 자주 말해줄 필요는 없다. 가끔 지나가는 말로 넌지시 알려 주면 된다. '너에게도 이런 존재가 생기게 된다' 정도로 가볍게.  


D-5개월, 임신 중기 이후 배가 커진 것을 보여주며 동생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중기 이후부터는 동생 초음파 사진도 종종 보여주고, 일부러 창작 동화 중에 동생이 찾아오는 내용의 이야기도 자주 읽어주기 시작했다. 생활동화 <추피와 두두>에는 여동생 파니가 태어나 함께 살게 되는데 이 책도 일부러 꺼내서 종종 읽어줬다. 그리고 가끔은 아이 손을 엄마 배에 올리고는 '동생에게 인사해주자' 하기도 했다.


D-1개월, 출산 1달 전부터 아이의 어휘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동생이 태어난다는 사실을 알린다. 

 동생이 태어나면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준다. 딸도 엄마 뱃속에서 꼬물꼬물 10달을 있다가 세상에 나올 때가 돼서 태어나서 이렇게 지금 엄마랑 재미지게 놀고 있다는 것, 딸보다 어린 친척 동생들 이야기를 해주며 소담이와 함께 신나게 노는 다른 아기들처럼 뱃속에 있는 아기도 시간이 되면 곧 태어난다는 사실을 그저 지나가듯 이야기했다.


D-2주, 매일 밤 잠들기 전 동생이 태어나는 사실이 포함된 내용으로 함께 기도한다. 

출산 2주 전은 아이가 언제 태어나더라도 크게 문제없는 상황. 첫째가 있는 엄마라면 늘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테다. 2주 전부터는 잠들기 전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함께 기도했다.


D-1주 아이가 수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7일 후면, 6일 후 등 정확한 날짜를 세주며 함께 기도했다. 엄마가 없는 동안 아빠와, 어린이집 선생님과 함께 즐겁게 시간을 보내면 될 것이라는 미래에 있을 일에 대해 안심할 수 있도록 기도 중에 다독이며 알려준다. 가끔은 평소 간식을 먹거나 같이 나란히 앉아 멍 때리는 시간에도 말해주곤 했다. 일상생활 중에 대화하듯 자연스럽게 말해준다고 해봤는데, 부작용이 나타난 날도 있었다. 이야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떼를 부리고 짜증을 내더라.


D-3일, 태어난 동생이 첫째 아이에게 줄 선물을 준비한다.

아이와 떨어지게 되는 시간 딸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편지를 준비해둔다.

둘의 첫 만남에서 동생이 형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이야기가 있더라. 효과는 좋았다.


D-day, 둘의 만남이 이뤄지는 날이다. 

첫 만남부터 버젓이 둘째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보다는 처음에는 엄마, 아빠와 먼저 만난 후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동생을 만나는 상황을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첫째가 들어왔는데 둘째 아이 젖을 먹이고 있거나 꼭 끌어안고 있는 그런 상황보다는 '엄마가 우리 딸을 기다렸어'라는 상황이 더 좋을 테다. 둘의 첫 만남이 조리원에서 이뤄지는 상황이라서 가능했다. 둘째는 신생아실에 있었고, 모자동실 시간이 되었을 때 딸에게 말했다.


"소담아, 아기가 우리가 있는 방에서 놀다가 간대. 아기 데리러 갈까?"

그리고 우리는 함께 아기를 데리러 갔다.


"아기가 소담이한테 주려고 선물 사 왔대, 친하게 지내자고."

서로 처음 얼굴을 마주하고, 동생이 누나에게 줄 선물을 준비했다며 딸에게 선물을 건넸다. 선물은 평소 엄마가 사주고 싶었던 목욕놀이 세트다. 딸은 동생이 사 온 선물을 무척 마음에 들어한다. 그리고 선물을 사 와서 기분이 좋아서 그런가 아기를 더욱 힘차게 부르며 아기가 있는 곳과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힘차게 달린다.


둘의 만남이 있고 나서 모든 것은 천천히 진행되었다. 첫째와 함께 있을 때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것도 딸의 허락을 받아 (겨우) 할 수 있었고, 딸이 기분이 급격하게 나쁘거나 엄마 아빠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할 때면 울고 있는 갓난아이가 안쓰러워도 간혹 모른 척할 때도 있었다.


눈물 나는 노력의 결과로 요즘은 집에서 아들이 "으애애앵"하고 울면 딸이 먼저 와다다다 달려간다. 동생 토닥토닥해준다며.




D+40, 오늘. 딸의 퇴행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다독이고 또 다독인다.  

딸은 오늘 아침 공갈젖꼭지, 애칭으로 일명 쪽쪽이라는 물건을 입에 물고 유모차를 타고 어린이집으로 등원했다. 아들이 어느 정도 자라고 세상 물정을 좀 알게 되면 누나 하는 건 다 하겠다고 욕심을 부릴 날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딸이 그렇다. 엄마와 아빠 두 사람의 온전한 관심을 받던 딸에게 새로운 인물의 등장은 적지 않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아기라는 그 생명체는 온종일 누워 있지만 엄마 아빠, 친척들의 새로운 관심사이며 돌봐야 할 대상이다. 그런 이유로 아기가 한다고 하면 딸은 무엇이든 한다고 하는 요즘이다.


모유수유도 유축해서 젖병에다가 주고 있는데, 처음 젖병 수유를 하게 된 이유도 딸이 젖을 물리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처음 아기에게 젖을 물리던 날 딸에게 맛 좋은 사과 주스를 젖병에 담아 주고 아빠가 안아줬었다. 허전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던 그 날 아이는 자면서


나도! 나도


나도, 나도! 하면서 잠꼬대를 했다. 그리고 요즘은 아침이면 식전이나 식후에 본인도 꼭 젖병에 물을 마시거나 분유 한잔을 한다. 딸은 젖병, 공갈젖꼭지와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아이였다. 모든 가짜 젖꼭지를 맹렬히 거부하던 아이는 동생의 등장으로 잘 할 줄도 모르면서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는 표현으로 그것들을 찾게 된다.



터울이 몇 살이 지든 모든 아이들에게 있을 수 있는 과정이라 생각된다. 대소변을 잘 가리던 아이는 갑자기 아무 곳에나 실례를 하게 되고 이후 '아기처럼' 한 동안 다시 기저귀를 하기도 한다. 뭐든지 척척 해내던 아이가 동생이 태어나고 나서 유독 '엄마가' 해달라거나 엄마를 더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동생의 탄생으로 한 동안 기저귀를 차던 아이도 어느 날 보면 의젓하게 화장실에 혼자 갈 수 있게 되고, '엄마가'를 외치던 아이도 동생과 함께 성장하며 어느덧 동생을 챙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더라. 우리는 딸의 일시적인 퇴행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기다린다.

시장에서 사 온 작은 꽃씨를

흙을 담은 화분에 심고,

물을 주고, 빛을 쏘이며, 

하루 한날, 어느 날, 어느 때를

기다리던 때처럼. 







어쩌다보니, 답답해서 인스타를 시작했어요 :)

물론 편집된 일상입니다.

현실은 샤우팅인 것을 잊지말고 즐겨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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