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둘째, 가족의 탄생
둘째 낳으면 두 배 아니고, 네 배 아니고, 스무 배 힘들다던 말이 사실이었다. 새로운 아이의 탄생은 "우리 아가 축하해 짠짠짠, 축복해 짠짠짠, 우리 집에 어서 와 짠짠짠"으로 이어지는 흥겨운 세리머니가 되긴 어려운 일이었나 보다. 그럭저럭 무탈하게 갓난아이와 함께 네 식구가 집으로 돌아왔으면 하고 바라었지만 현실은 수족구.
딸은 수족구에 걸려 어린이집에 갈 수 없게 되었고, 그나마 조리라는 명목 하에 하루 중 예닐곱 시간 정도는 맘 편히 지내던 조리원에 아들을 두고 집으로 들어왔다. 새로운 생명을 마주하는 일이 가슴 벅차고, 설렘으로 가득 찬다면 좋겠다만 현실은 '수족구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정도. 첫째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때문에 오전 10시부터 4,5시까지 어린이집에서 놀다가 오후에는 함께 있을 수 있는 조리원에서 지내던 중이다. 그나마 아이가 조리원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면 육아는 시작됐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동안 좀 쉬어두고, 저녁이 되면 다시 시작되는 육아와 함께 몰려오는 피곤에 몸도 마음도 정신도 탈탈 털리는 기분이더라.
그래도 딸을 매일 볼 수 있다는 마음의 안정감, 낮에는 몸을 좀 쉬게 할 수 있다는 조건, 기타 집안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물론 신생아 케어를 다른 누군가가 맡아해준다는 사실은 조리원을 천국이라 부르기에 충분했다.
그나마 산모는 편안할 수 있는 곳이라 잘 지내는 중이었지만, 네 가족이 모두 모이게 된 조리원 생활은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딸에게 엄마가 아기를 낳으러 가서 잠시 헤어졌다가 만나자며 편지를 써두고, 제왕절개 수술을 했다. 경과가 좋아 입원 기간도 짧게 잡을 수 있었고, 4박 5일 만에 조리원에 입실해 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 딸을 만나고 처음부터 둘째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예의가 아닌지라 조리원 모자동실 시간에 맞춰 네 가족이 모두 모이는 시간을 갖게 된다. 아기와 만남을 갖는 시간과 함께 동생이 사 온 선물 증정 시간도 있었다.
"애디, 애기이! 안녕"
딸은 반가워 하긴 했지만 아이를 엄마, 혹은 아빠가 안고 있는 것은 내키지 않아한다. 모두가 함께 보자며 침대 가운데 아기를 놓으라며 외친다. 다 같이 모인 자리에 태어난 지 1주일이 되지 않은 아기가 덩그러니 놓인다. 아기를 예뻐하는 듯 하나 힘 조절이 미숙해 손가락으로 여기저기 쿡쿡 찌르거나 처음에는 토닥토닥이었으나 나중에는 퍽퍽 두드리고 있는 누나. 그런 누나를 보는 엄마 아빠의 마음은 철렁, 그러나 내색하지 않기 위해 표정과 말투를 다듬고
"아기가 아플 수 있으니 살살 토닥토닥해볼까?" 하는 수밖에.
누나와 동생의 만남이 기분 좋게 이어지게 하기 위해 당분간은 첫째가 있을 때 모유수유를 하는 것은 삼가기로 했다. 네가 먼저 태어나서 누나이긴 하지만, 너 또한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아기란다를 여러 번 반복하며 아기가 젖병을 물 때면 따로 챙겨 온 젖병에 물을 담아 첫째에게도 준다.
하루 이틀 지나고 다시 모자동실 시간. 엄마, 아빠가 아기를 안으면 즉각 반응한다.
"애디이, 애기! 여기! 이쯔" (아기, 아기! 여기! 이쪽에)
아기를 안고 있지 말고 다 같이 보자며 침대 위를 손바닥으로 탕탕 치면서 이쪽에 두란다. 뒀더니 동생 머리맡에서 점프점프 쿵쾅쿵쾅. 엄빠 가슴은 철렁, 아이고 어쩌나. 그렇게 몇 번 뛰더니 아기를 다 같이 보잘 때는 언제고 다른 데 가서 이것저것 참견한다.
아이는 동생과 마주한 뒤, 먹는 것에 과하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조리원이라는 특성 탓에 달랠 수 있는 것이 먹는 것뿐이라 또 어쩔 수 없이 달라는 데로 주는 나를 보게 된다. 엄마와 떨어져 있던 4박 5일이 제법 길었기 때문인지 딸은 불안해했고,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우면 엄마의 행방을 찾기를 반복한다. '엄마 잠깐 어디 다녀올게'라는 말을 철썩 같이 믿고 전혀 불안해하지 않던 아이가 이제는 잠시 엉덩이를 떼려 하면 울면서 달려든다.
수족구로 집에 돌아와 꼬박 3일을 집에서 보내다가 둘이 누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두 밤 자면, 반짝이도 와서 여기서 다 같이 잘 거야."
했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난 딸은 간만에 정확한 발음으로 외친다.
안 돼!
부모로서 우리는 사랑에 관해 또 다른 것을 알게 된다. 우리에게 의지하는 사람에게 우리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에게 달려 있는 그 존재 주변으로 어떠한 책임감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발을 디뎌야 할지를 깨닫는 것이다. (중략) 야만인이 크리스털 잔을 쥘 때에는 반드시 가볍게 쥐려고 해야지, 자칫하면 그 우람한 손에 잔이 마른 낙엽처럼 부서질 수 있다.
알랭 드 보통,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3부 아이들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쟁이. 뱃속에서부터 누나 덕에 고생을 좀 했다. 임신 초기에는 철없는 누나가 엄마 배에 올라와 잠을 자서 고생했을 테다. 임신 중기쯤 누나는 폐렴에 걸려 일주일이라는 긴 시간을 외출조차 삼가고 집에서 요양을 했었다. 아이가 태어나기 약 1주일 전, 누나는 심각한 열감기에 걸려 몇 날 며칠을 끙끙 앓는 통에 뱃속에 있는 이 녀석은 제대로 쉬지 못하고 엄마와 함께 때 아닌 고생을 맛봤다. 출생 후 14일, 누나는 수족구에 걸렸고 아들은 조리원에 남았다. 가족들은 모두 누나 병시중을 위해 집으로. 그럼에도 굳세어라 아들, 아들은 열심히 잘 먹고 잘 자서 투실투실 살이 쪘다. 수족구라는 병명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투실투실 살이 오른 누나 못지않다. 장하다.
23개월 차이나는 누나가 어찌나 들이대는지 다리를 쭉 펴고 앉은 상태에서 앞으로 자꾸 다가오는 탓에 발바닥으로 볼과 머리를 밀어대고, 예쁘다는 표현이 어쩌다 좀 격할 때면 손바닥으로 머리를 통통 치기도 한다. 그렇게 예쁘다 해놓고 젖 먹겠다고 아무리 울어봐도 누나는 알겠다는 대답이 없다. 게다가 안아주지 말라는 누나 말에 혼자 침대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기도 한다.
수유 후에 조금만 안아주면 아기는 스르륵 잠이 들 것 같은데, 안아주지 말라는 누나 말에 그저 놓여 있는 아기. 누나를 중심으로 모여 있는 아빠 엄마를 보면서 동생은 아직은 뭘 잘 모르는 생후 15일이다만 좀 외롭지 않을까 싶었다. 아이 셋부터는 발로 키운다는 말은 그럴 여력이 없어서이기도 하겠지만, 둘째부터는 태어나는 아기들 대부분이 각자 제 살 길 찾아가며 살아야 한다는 걸 날 때부터 아는 것은 아닌지 싶은 마음이 들며 왜 그런지 짠하다.
애가 셋도 아니고 아직 둘인데 (앞으로 하나를 더 낳을 여지는 전혀 없다) 둘째를 케어해 줄 발 하나 조차 남아있지 않은 현실은 어째서.
아이들은 결국 나이가 몇 배나 많은 사람들에게 예상치 못한 선생이 되어 - 그들의 철저한 의존성, 자기중심주의, 연약함을 통해 - 완전히 다른 종류의 사랑에 대한 수준 높은 교육을 제공한다. 이 사랑은 상호 호혜를 강렬히 원하지도 성급하게 후회하지도 않고, 타인을 위해 자아를 초월하는 것만을 진정한 목표로 한다.
알랭 드 보통,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3부 아이들
남편은 스트레스성 피부염증과 장염, 어지럼증, 고열에 시달려 죽과 함께 삼시세끼 약을 복용하다가 점점 병세가 깊어져 죽마저 넘기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물조차 넘기기 힘들어져서 간신히 두유로 삼시 세끼를 해결하며 지내는 남편을 보고 내 머릿속 텔레비전에는 <위기탈출 넘버원>이 재생되기 시작한다.
갑자기 남편이 죽을까 걱정이 된 나는 혹시 모르니 대학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오라며 진료 예약을 서둘렀다. 큰 병원에서도 다행히 동네 내과에서 말해 준 것과 같은 처방을 내려 안심하며, 딸과 나는 집에 있기로 하고 남편은 요양차 시댁에 보냈다.
또다시 엄마가 된 나에게 지난 3주의 시간은 아이를 낳았으나, 전혀 낳은 것 같지 않은 일상의 연속이었다. 조리원에 들어가서 첫 3일은 소가 된 기분으로 유축을 하며 그렇게 울었다. 몸도 아프고, 피곤한 데다 제대로 쉬고 싶다는 생각은 간절하지만 하루를 통째로 쉰 적이 없어 우울감은 폭발했다. 첫째가 동생을 보게 되면 가슴앓이를 한다며, 친정엄마는 가슴앓이 한약을 지어 보내기도 했다. 내가 심통을 부릴 때면 남편은 자기가 가슴앓이 중이라며 본인 가슴을 쓸어대며 진담이 상당 부분 섞인 모션을 매번 재생하곤 했다. 그럴 때면 그조차 그렇게 미웠다. 그럼에도 여기까지는 아주 평범한 그저 그런 일상이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딸이 수족구에 걸려 집으로 들어오고 나서 3일은 정말이지 정신을 놓고 지냈다. 집으로 강제송환된 첫날은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다 별 수 없이 정신을 차리게 된 건 회사에 다녀온 남편이 물조차 삼킬 수 없게 되어 완전히 드러눕게 된 날이었다.
가족의 위기다. 그냥 위기였다. 우울했고, 우울했지만 우울을 여러 번 곱씹으며 내린 결론, 결국은 우울의 원인이란 게 누군가 '나'를 알아주길 바라기 때문이니 견뎌보자는 생각이었다. 말조차 하기 힘든 남편이 약간은 말을 할 수 있게 됐을 때,
시간이 지나면,
'그때 그랬잖아' 하면서 웃을 수 있을 거야.
했는데, 빨리 웃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먼저는 첫째가 동생을 지금보다 조금 더 인정해야 할 테고, 그러려면 둘째가 적어도 6개월은 되어야 할 테다. 그러려면 역시 시간이 지날 수밖에 없다.
둘째 임신 중에 남편에게 "우리 잘할 수 있을까?"하며 종종 묻곤 했다. 남편의 위로는,
잘하지 못해도,
그래도 시간은 지나가고 아이는 크겠지.
이 시간을 보내며, 부모로 사는 우리도 조금은 성숙하게 되길. 이 시간이 '잘'하며 지나가고 있지는 않더라도 우울감에 절어서 어쩔 수 없이 보내야만 하는 시간이 되지는 않기를. 이렇게 저렇게 끄적여 놓아도 당장 한 시간 뒤면 다시 소가 된 기분을 느끼며 신세를 한탄하겠지만, 그럼에도 다시 스스로를 격려하기를.
기분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딸도, 이제 막 태어나 앞으로 많이 안아줘야 하는 아들도, 가슴앓이 약은 내가 먹어야 한다는 아빠도, 산후우울증에 걸린 것 같다며 난리난리 치는 엄마까지 다들 모두 사랑이 필요한 존재라서 그렇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서로를 친절하게 바라보는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이 시간을 서로 다독이며 갈 수 있기를, 그러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오늘을 기록할 수 있음에 또다시 감사하기를. 앞으로도 이 만큼 그 이상 힘들겠지만, 아이가 자란 만큼 우리 부부도 자란다는 사실을 기억하기를 바라며, 오늘을 기록해 둔다.
부모는 울음, 발길질, 슬픔, 화가 진정 무엇 때문인지를 짐작해야 한다. 이 해석 활동의 두드러진 특징이자 평범한 성인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해석 양상과 확연히 차별되는 점은 자애심이다. 부모는 아이가 기본적으로 선하다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중략) 아이가 울 때 우리는 아이가 심술궂거나 자기 연민에 빠졌다고 비난하지 않고, 무엇이 불편하게 만드는지를 생각한다.
만일 이 본능을 성인들의 관계에 조금이라도 도입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친절한 사람이 되겠는가? 그렇다면 성인들의 관계에서도 심술궂음과 잔인함을 보아 넘기고 거의 항상 그 이면에 깔려있는 두려움, 혼란, 피로를 감지해낼 수 있다. 인류를 사랑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이런 의미일 것이다.
알랭 드 보통,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3부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