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22일 일기
권력에 취하지 않으려면: 삼가고 또 삼가는 태도
군대에 가서 한 일 중 소소하지만 뿌듯한 일이 하나 있다. 일기를 수첩에 종종 쓰는 버릇이 있었는데, 적다보니 생각난 한 아이디어 하나가 22개월이라는 시간을 뒤돌아 봤을 때도 참 뿌듯하게 만들어주었다.
바로 이런 거였다.
이등병 때, 내가 (군대라는 환경일지라도) 간절하게,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수첩 적었다.
일병 때, 선임과 장교들을 지켜보면서 후임에게 그 어떤 상황에서도 지녀서는 안될 태도, 하면 안될 말들과 행동을 수첩에 적었다.
상병 때, 수첩을 다시 보며 아들 군번을 포함한 후임들에게 환경이 따라주는 한 내가 옛날에 하고 싶었던 것을 그들이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보려 노력했다.
병장 때, 수첩을 다시 보며 내가 가려서 해야 할 행동과 말투가 무엇인지 살피어 살았다.
정말 구체적으로 적었다. 쪼잔해보일 정도로 구체적으로 적었었다. 정말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등병의 아픔은 이등병이 제일 잘 알고,
일병의 아픔은 일병이 제일 잘 안다.
장애인으로 사는 것에 대한 불편함은 장애인이 제일 잘 알고,
늙는 것에 대한 불편함은 노인이 제일 잘 알듯이.
그런데 웃긴 점은 누구나 다 한 때는 이등병이였고, 누구나 다 한때는 일병이였다는 사실이다.
누구나 선임을 보며 '나는 저렇게는 안되야지',
'저렇게는 살고 싶지 않다.'
라고 느껴본적이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병이되고, 병장이 되면 그 때의 뜨거운, 들끓는 감정을 너무나 빨리 잃어버릴 때가 많다.
권력은 그만큼 공감 능력을 마비시킨다. 이건 그 누구에게도 예외 일 수 없다.
구심력이 작용하는, 저절로 힘이 모이는 고요한 중심에서, 원심력이 작용하는, 밖으로 튕겨나갈 것 만 같은 불안함 힘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중심에서 조금만 방향을 틀어도 외부에서는 비틀 거릴 수 밖에 없고,
중심에서 거리를 조금만 늘려도, 외부는 (늘린 거리와 비교해서 훨씬) 더 큰 원을 돌 수 밖에 없다.
그 누구라도 인간사회에선 외부에서 중심으로 갈 수 있지만, 중심에 갈수록 구심력은 작동하지 않는다.
때문에 권력의 정점에서 인간은 순간을 영원으로 착각하기 마련이다.
똑같은 아편도 아랫사람에게 현실의 아픔을 달래주는 일시적 진통제라면,
윗사람에게는 지배의 천명에 탐닉하게 만드는 환각제 일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리더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하고, 살펴야 한다.
유배시절 다산 정약용이 조선시대 형벌에 관해서 쓴 책의 제목은 <흠흠신서>다.
흠흠이란 무엇인가? 삼갈 흠(欽)에, 또 한번 삼갈 흠(欽). '삼가고 또 삼가다'라는 뜻이다. 왜 삼가고 또 삼가야 하는가? 이는 흠흠신서의 서문에 잘 드러나있다.
序 (서문)
惟天生人而又死之 (유천생인이우사지 인명계호천) 오직 하늘만이 사람을 살리고 또 죽이는 것이니
人名繫乎天 (인명계호천) 인명은 하늘에 매여있는 것이다
迺司牧 又以其間 (내사목 우이기간) 그런데 사목(司牧)이 또 그 중간에서
安其善良而生之 (안기설량이생지) 선량한 사람은 편안히 살게 해주고
執有罪者而死之 (집유죄자이사지) 죄있는 사람은 잡아다 죽이는 것이니
是顯見天權耳 (시현현천권이) 이는 하늘의 권한을 드러내 보이는 것일 뿐이다
人代操天權 (인대조천권) 사람이 하늘의 권한을 대신 쥐고서도
罔知兢畏 (망지긍외) 삼가고 두려워할 줄 몰라
不剖毫析芒 (불부호석망) 털끝도 갈라보고 가시랭이라도 쪼개보지 아니하고 (철저하게 분석하지 않고)
迺漫迺昏 (내만내혼) 곧 흐트러지고 곧 어두워져서
或生而致死之 (혹생이치사지) 혹 살려야 하는 사람을 죽이고
亦死而致生之 (역사이치생지) 또 죽여야 하는 사람을 살려놓고
尙恬焉安焉 (상념언안언) 오히려 어찌 편안하고 편안해 하는가
厥或黷貨媚婦人 (궐혹독화미부인) 또 더러운 방법으로 재물을 얻고 부인을 홀리고
聽號噭 慘痛之聲 (청호교 참통지성) 백성들이 참혹한 고통소리로 부르짖는 것을 듣고도
而莫之知恤 (이막지지휼) 그것을 구휼하지 아니하니
斯深孼哉 (사심얼재) 이것이 깊은 재앙이 아닌가
人命之獄 (인명지옥 군현소항) 인명에 관한 옥사는
郡縣所恒起 (군현소항) 군현에서 항상 일어나는 일이고
牧臣恒値之 (목신항치지) 지방관이 항상 만나는 것이나
迺審覈恒疏 (내심핵항소) 이에 살펴고 조사해서 밝히는 것이 항상 드물고
決擬恒舛 (결의항천) 헤아려 판단하는 것이 항상 어지럽다
昔在我健陵之世 (석재아건릉지세) 옛날 우리 건릉[정조]시대에에는
藩臣牧臣 (번신목신) 감사와 수령들이
恒以是遭貶 (항이시조폄) 항상 이것 때문에 폄하됨을 당했으니
稍亦警戒以底愼 (초역경계이저신) 작은 것 또한 경계하고 조심하여 몸을 낮추고 삼가게 되었다
比年仍復不理 (비역잉부불리) 최근에 와서 다시 잘 다스리지 않으니
獄用多寃 (옥용다원) 원통한 옥사가 많아졌다
余旣輯牧民之說 (여기집목민지설) 내가 이미 목민의 설을 모아서 (목민심서를 집필해서)
至於人命 (지어인명) 인명에 대해서는
則曰是宜有專門之治 (즉왈시의유전문지치) 곧 마땅히 전문적으로 다루는 것이 있어야한다고 말했는데
遂別纂爲是書 (수별찬시위서) 드디어 이 책을 별도로 편찬하였다
...(중략)
謂之欽欽者 (위지흠흠자) 흠흠이라고 얘기한 것은
何也 (하야) 왜인가
欽欽 (흠흠) '삼가고 삼가다' 라는 것은
固理刑之本也 (고리형지본야) 본디 형벌을 다스리는 근본인 것이다.
그렇다. 삼가고 삼가야 한다.
삼가고 또 삼가고, 또 삼가고, 또 삼가도
부족한 것이 지도자의 자리일 따름이다.
스스로 삼가는 것 말고는 지도자를 일깨워줄 각성제는 없다.
그렇기에 진정한 지도자는 외로울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