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표. 느낌표! 물음표?

느낌표를 꺾어 물음표로 만들기

by 한솔

마침표 느낌표 물음표


한동안 붙잡고 있던 글을 끝냈다. ICT 기술로 인해 점차 확대되어가는 네트워크 경제가 사회적경제에 어떤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수 있을지에 관한 글이였는데, 여름에 했었던 연구의 연장이였다. 프로젝트를 총괄하시던 교수님께 '한국 떠나기전에 다 정리 해보고 보내드리겠습니다'라고 약속드렸었던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야 마무리 지은 것이다. 그것도 정말 얼기설기 조약하게 겨우겨우 엮어서...


네트워크 경제의 확대에 뒷받침이 될 인프라가 무엇인지를 다루는 챕터를 쓰면서 자료를 찾는 동안 좀 희안한 글들을 발견했다. 리프킨의 <한계비용 제로의 사회>와 다른 몇몇 논문 및 기사에서 찾은 내용이였는데, 미국 연방통신위원회 (FCC)가 앞으로 인터넷 와이파이 (wifi)를 무료로 접속할 수 있는 공공재로 변환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이였다. 게다가 그 계획의 이름과 내용마저 무지막지하다. 미국 전역에 '슈퍼와이파이 네트워크'를 창출할 계획인데, 이는 "방송용 주파수를 재활용하면 1.5킬로미터나 그 이상의 범위 내에서 효력을 발휘하며 벽과 담장을 뚫고 휴대전화로 무료 인터넷 통화까지 가능해지며...집과 사업체에서 무료로 와이파이에 접속함으로써 인터넷 이용료가 대폭 줄어" (리프킨)들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아아, 이런 새로운 신천지가 정녕 도래한단 말인가. '무료'+'슈퍼' 와이파이라니. 꿈과 같은 단어가 두개나 붙어있다. 엄청난 속도에다가 벽과 담장까지 뚫는 이 강력함, 거기다 공짜인 와이파이라니.


하지만 일단 내가 아는게 별로 없었다. 특히 통신 용어나 ICT 쪽은 정말 개념 하나하나가 너무 어려워서 쓰면서도 계속 특정 단어에 대해서 기본 개념이라도 정확히 알아보고 쓰려고 노력했는데 이번에도 그렇기 때문에 기술적인 디테일을 찾아보려고 이런 저런 검색을 해보았다.


그런데 한참을 인터넷에 여러 자료를 뒤져보며 이런 저런 자료를 대조해보니 리프킨 등이 서술한 FCC의 계획은 사실이 아니였다. 실상은 현재 사용이 거의 없거나 아예 없는 공중파 주파수 대역이 있는데 (기술의 발달로 인해 사람들이 TV나 라디오보다는 인터넷을 더 사용하게 되니) FCC에서 그 대역의 사용권을 기업들로부터 다시 사들여서 새로운 용도로 분배하겠다는 것이였다. 여기서 '슈퍼와이파이'의 가능성이 나온 것은, 그 대역을 와이파이 영역으로 활용하게 됬을시 (가정이다) 와이파이의 효율성이 급격하게 증가 (서비스 면적 16배, 도달거리 3배 등) 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였다. 물론 몇몇 운동가와 학자들이 실제로 이런 영역을 정부가 활용해 인터넷을 공공재로 만들어야 한다고 하는 주장 (단순히 주장이다)이 있었지만, 아직 이렇게 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거기다 더 헷갈리게 만드는 점을 보자면 FCC의 계획과 운동가들/학자들의 주장에서 계속 'free wifi', 'open wifi', 'free super-wifi'과 같이 'free'와 'open'이란 단어가 계속 같이 쓰였다는 점.)

한두시간동안 이 이슈만 붙들고 있다가 이렇게 허무한 결말을 맞이하니, 좀 억울하기도 하고 배신감도 느껴져서 어디서부터 이 허무한 왜곡이 시작되었는지 찾아보게 되었다. 우선 리프킨 책을 보고 각주를 따라가 출처를 찾아보니, 연관 각주가 서너개 정도 있었는데 그 각주에 모두 같은 기사가 적혀있었다. 그 기사를 검색해보니 워싱턴 포스트의 어떤 기자가 쓴 기사였다. 검색된 연관 기사들을 보니 이 기사가 잘못된 오보라는 기사들이 많았다. 그런데 웃긴건 이 기사를 마구 인용해 '무료 슈퍼와이파이'에 대해서 쓴 글과 기사도 많았다.

이렇게 허탈하게 '무료 슈퍼와이파이' 하나 때문에 나의 오후는 끝나버렸고 저녁 먹을 시간이 불쑥 와버렸다. 억울했던지, 저녁을 먹으며 룸메 앞에 '웃긴 얘기 해줄까'하면서 시뻘건 얼굴로, 침 튀겨가며 별로 웃기지도 않은 '무료 슈퍼 와이파이'에 대한 얘기를 억지로 나눴다 ㅎㅎ


글들의 대부분은 마침표로 끝나지만, 그 마침표가 누구에게는 느낌표로, 누구에게는 물음표로 보일때가 있다. 특히 내가 보아야할 진실보다, 내가 보고 싶은 것들이 글에 녹아 있을때 마침표로부터 욕망이란 싹이 꿈틀대고 솟구쳐 올라와 느낌표가 된다. 내 가슴 속에만 세겨진 느낌표.


지식과 정보가 흘러넘치는 시대에 비극의 원인은 막힌 진실만이 아닐 수도 있다. 정확한 사실과 정보일 수록 확산되는게 아니라, 놀라운 사실과 정보일 수록 확산될 가능성이 큰 이 시대는 마침표보다 느낌표가 흘러넘칠 수 있고, 이는 새로운 비극의 원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럴 때일수록 마침표 위에 물음표를 찍어야 하는 것 같다. 느낌표를 찍고 싶은 욕망에 비례해 물음표를 찍어야 한다.


물론 진정한 지적 혁신, 위대한 사상은 남들이 사정없이 자신의 문장에 물음표를 찍더라도, 다 읽고나면 느낌표로 바뀌게 되는 그런 생각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글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자신의 글을 채찍질 하며 스스로의 글에 물음표를 찍어댔겠는가?


다시 초라한 나의 글로 돌아간다. 속에서는 수많은 글들의 마침표에서 느낌표가 꿈틀대며 솟구쳐 오르고 있다. 이제 냉철한 질문으로 꺾어 물음표로 만들고, 가차없이 내가 보고 싶었던 진실을 잘라내야 할 때다.


2015년 10월 18일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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