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을 놈은 맞아야지', '좋은게 좋은거야'?

2015년 10월 8일 일기

by 한솔

'맞을 놈은 맞아야지'

'좋은게 좋은거야'

와 같은 동의반복에는 질문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질문 없는 삶에선 습관이 형성되고, 이러한 삶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관습으로 똘똘 뭉쳐진다. 관습의 관성은 특정한 권력의 작동 방식을 추동시킨다. '힘을 권리로, 복종을 의무로 바꿔 놓으며' (루소) 그렇게 권력을 제동과 제약 없이 굴러가게 만든다.

'맞을 놈은 맞아야지'라는 말을 수없이 들으며, 냉소적 쓴웃음을 짓지만 질문은 하지 않는 아이는 점점 관습의 관성에 함께 이끌려간다. 결국 이렇게 '체벌이 습관화 되면 아이들은 익숙해져서 체벌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긴다. 그러는 사이에 아이들 마음 속에는 권위를 지키기 위해 신체에 고통을 가하는 것이 정당한 일이라는 생각이 자리잡는다.' (러셀)

이들중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더 조숙하거나 영악한 아이는 교실의 독재자의 압제로 부터 벗어나 스스로 골목의 독재자가 되기도 한다. 자신은 조금 더 나은 독재자, 덜 '꼰대' 스러운 독재자라는 점을 어필하며 스스로의 왕국의 백성들을 이끌어들인다. 교실로부터 벗어나 골목길에서 함께 해방의 공기를 숨쉬지만, '맞을 놈은 맞아야'하고 '좋은게 좋은'건 여전한 왕국에서.

이들 중 '재수가 없거나', '잘못 걸린' 아이들은 다시 교실에서 무기력한 백성이 된다. '맞을 놈은 맞아야'하고 '좋은게 좋은거다'라는 말을 들으며 맞을 뿐이다.

물론 교육에서 자유와 규율이라는 두가지 요구를 조정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답이 없는 일이다. 인간의 생각은 '수렴'과 '발산'이라는, 질적으로 완전 다른 형태의 끊임없는 충돌과 일시적 화합으로 추동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철학자 타렐(G.N.M.Tyrell)은 논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와 그럴 수 없는 문제를 구분하기 위해 '수렴'과 '발산'이라는 용어를 제시한다. 인생은 계속해서 발산하는 문제들로 이어지는데, 이 문제들에 대해서는 죽음만이 해결할 수 있으므로 [이 문제들을 참고 견디며] '살아가는' 수 밖에 없다. 이와 달리 수렴의 문제는 아주 유용한 인간의 창조물이다. 이 문제는 현실 속에서 존재하는게 아니라 추상화 과정을 거쳐 창조된 것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면 해결 방법이 기록되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며, 전달 받은 사람은 그 방법을 발견하기 위해 정신적으로 애쓰지 않더라도 그것을 사용할 수 있다. 만일 가정 생활, 경제학, 정치학, 교육 따위의 영역에서 인간 관계가 모두 이런 식이라면, 필자는 글을 어떻게 끝낼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더 이상 인간 관계는 없고, 오로지 기계적인 관계만이 있을 것이며, 인생은 산송장(living death)일 것이다. 이른바 발산하는 문제는 인간에게 스스로를 좀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을 강요한다. 그것은 좀 더 높은 수준의 힘을 요구하고 이끌어내며, 이를 통해 사랑, 미, 선, 진실을 인생에 끌어들인다. 이렇게 좀더 높은 수준의 힘으로부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때 비로소 현실 상황에서 대립이 조정 될 수 있는 것이다." (슈마허)

쉽게 말하면 발산적 사고의 근원은 질문이고, 수렴적 사고의 근원은 답이다.

'맞을 놈은 맞아야되'라는 사고는 발산적 사고 (질문)가 완벽히 결여된 사고다. 발산적 사고는 '결국 맞을 놈 (혹은 폭력이 정당화 되는 대상)이란 존재하는가?', '교육적 환경이 사회적으로 제도화되는 과정에서 폭력은 규율의 확립을 위해 정당화 될 수 있는가?', '교육의 목적과 폭력은 양립불가한 목표인가?', '만약 그렇다면 교육과 규율이 함께 양립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교육에서 규율이 꼭 필요한가?', '그렇다면 교육의 목적은 무엇이 되어야 하지?' 로 점점 질문의 범위가 커지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근본적으로 맞는 답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질문과 발산적 사고는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 삶과 사회와 질서를 뒤흔들 수 있는 힘이 잠재되어 있다.

"'왜'라고 묻는 사람들은 반항을 시작하고 있다.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던 방식과 가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혁명에 선행하면서 또한 반드시 필요한 개혁의 단계이다." (알린스키 - "실제로 소크라테스는 조직가였다. 조직가의 역할은 여론을 불러일으키고 기존의 사고나 행위 방식을 무너뜨릴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는 목표를 가지고서 개인의 내부에 있는 질문을 불러 일으키고 있었다. 이 내부의 질문은 개인에게는 외부적이라고 할 혁명에 정말 필수적이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혁명가들을 만들어내는 첫 단계를 실행하고 있었다. 만일 그가 인생의 의미에 대해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인생에 대해 고찰하고 관습적인 가치를 거부하는게 가능했다면, 내면의 혁명은 바깥으로 터져 나와 곧 정치영역으로까지 퍼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를 재판에 부치고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던 사람들은 그를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알고 있었다.")

하지만 발산적 사고는 수렴적 사고를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 올릴 수 있다. 발산을 통해 각각 다른 주체들은 서로의 질문을 확인하고, 이를 최대한 끌어안는 동시에 더 나은 답과 질서로 수렴을 시도한다. 또한 발산에서 수렴으로의 이행은 그 과정에서 근본적인 가치를 지닌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루소+토크빌).

물론 더 많은 발산이 더 '좋은' 수렴 (그게 어떤 의미를 지니던지 간에)으로 이어지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수렴을 위한 수렴을 고집할 수록 권력과 권위의 작동방식은 더욱더 경직될 뿐이다. 이 과정은 경직성이 모든 질문이 들어설 자리를 틀어막을 때까지 무한히 진행될 수 밖에 없다. 권력의 작동방식은 경직될 수록 탄성이 줄어들기 때문에 그만큼 취성(brittleness: 약한 변화에도 파괴되기 쉬운 성질)이 강해진다. 쉽게 말해 단단해질 수록 역설적으로 깨지기도 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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