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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노 Apr 26. 2024

나랏일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진인사 대천명'의 자세

어디에서든 업무를 할 때 혼자 결정하고 그대로 추진하기는 쉽지 않다. 1인 기업조차도 거래처의 상황과 고객의 요구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상대적이기야 하겠지만 정부부처가 하는 업무들은 그 정도가 더 심하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사실일 수도 있다. 국민의 세금을 가지고 국민을 위하는 일을 해야 하는 공복이 개인, 혹은 개별부처의 생각에 지나치게 좌지우지되는 것이 옳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겪은 정부의 업무 추진은 건너야 할 허들이 많고 높다. 법ㆍ제도ㆍ예산이 주요 사유겠지만 그 이면에는 사람의 생각과 감정이 자리 잡은 경우도 없진 않을 것이다. 법ㆍ제도ㆍ예산도 상당히 명확하고 구체적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모든 일이 그리 선명하게 나눠지기는 힘들고 재량이라는 이로 추진 여부가 모호히 결정되는 일도 많다.

이번에는 그런 개인적 측면에서보다 기관 간 관계로 인한 업무추진의 어려움을 말해보고자 한다.

견제와 균형

전 사회적 차원에서 모든 부분에 망라한 업무를 수행하는 정부는 합리적이면서도 무모하지 않게 업무를 추진하지 않기 위해 부처 간 견제와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제도화되어 있다

안정적 상황을 유지하거나 구성원의 지나친 폭주를 막기 위해서는 의미가 있는 논리겠지만 견제와 균형의 체계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도입하고, 성과를 만들어내고, 변화를 도모하기에 큰 힘을 내기는 다소 힘들 수 있(오히려 집중과 책임이 그런 상황에서는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견제만이 난무하지 그다지 균형은 찾기 어려운 것도 문제다


대다수 정부부처는 3월부터 중요한 작업에 들어간다. 다음 연도 예산안을 만드는 작업이 시작되는 것이다. 부처가 계속 영위하기 위해 예산은 꼭 필요한 요소다 머 업무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어찌 됐건 정부부처의 입장에서 예산을 휘어잡고 있는 갑은 기재부다

(우스갯소리지만 세종시 정부청사는 긴 용을 형상화해서 이어져있다(세계에서 제일 긴 공중정원으로 기네스북에도 올랐는데 지금도 그런진 모르겠다) 그 가운데에 우뚝 솟은 건물이 있는데 기재부와 행안부가 입주해 있고 몇몇 공무원들은 그 건물을 "갑동"이라 부른다)


사실 각 부처야 더 많은 예산을 받아와서 이것저것 많은 사업을 벌이고 싶은 욕구가 있다(그게 구성원인 나에게는 일을 더해야 되는 결과를 야기하지만)

그러니 기재부가 총대를 메고 합리적으로 적정성과 타당성을 따져 예산규모를 결정하여 배분하는 것이 방만하지 않고 효율적인 정부예산을 결정하는 좋은 방법인 것으로 생각하고 움직이고 있다.

나 역시도 그 시스템 안에서 열심히 자료를 만들어서 상사의 마음에 드는 내용과 숫자를 들고 기재부 담당자를 찾아가 이 사업이 공익에 도움이 되며 아주 효율적이고 적정한 것이라며 조금의 예산이라도 더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세상일이 생각처럼 흘러가겠는가.

사실 내 생각일 뿐이지만 세상일은 생각만큼 효율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정당하지도 않게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다. 정부예산도 그러하다. 한동안 "메타버스"가 모든 정부부처 사업명에 들어가 있었던 적이 있었다. 코로나를 겪으며 비대면 서비스 등이 급부상했고 메타버스는 핵심 키워드였다. 그 뒤를 잇는 것은 "AI"였다. 얼마나 많은 예산이 투입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많은 예산이 저 키워드로 인해 산화된 것은 맞을 거 같다. 과연 그 모든 사업이 필요하고 적절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물론 현황과 근거가 명확한 사업만 할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정부는 이윤을 추구하는 조직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복지나 의료에 있어선 더 말할 것도 없고 기술과 같은 분야에 있어서도 그렇다. 기술개발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검증된 순간은 이미 그 기술은 사양기술일 가능성도 크다. 정부가 항상 한발 늦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모든 것을 확인하고 가려고 하는 경향 때문도 있다. 기술이라는 것도 언제 다시 트렌드가 될지 알 수 없고 특히 원천기술의 경우 그 활용 방안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기에 조금은 비효율적이고 무모해 보일 때라도 과감한 선제적 투자가 필요할 수 있다.

실제 과감한 투자를 해선 안될 때 과감한 투자를 하고,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할 때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이어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겠는가.


아무튼 그런 복잡한 생각은 차치하고 당장 눈앞에서 예산담당자의 손끝에서 써지는 숫자에 따라 내 사업의 예산이 결정되는 을의 입장은 서글프기 그지없다. 그 돈들이 내 것도 아닌데 말이다.


처음에는 논리와 근거로 기재부 담당자를 설득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나에게도 있었다

지금도 그런 자신감으로 예산작업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스스로를 속이지 않으면 이 모든 노력과 고민이 너무 무쓸모 해지니 일을 하기 위한 불가피한 자기 암시일 뿐)


나 이제는 다소 마음을 내려놓고 예산작업을 한다. 열심히 근거자료와 통계수치를 찾아 예산자료를 보완하고, 어떤 틀로 작성해야 가독성도 높고 명확히 내 생각을 전할 수 있을지 고민도 하지만 이렇게 한다고 반드시 그 예산을 받을 수 있다곤 순진하게 믿지는 않는다. 반드시 내가 노력한다고 일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거라는 믿음은 세상 풍파에 깎여간 지 오래다. 세상일은 너무나 많은 요소로 되기도, 안되기도 하니 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열심히 하는 것뿐.


올해 예산작업은 좀 수월히 진행되길 바라지만 시작부터 벌써 암담함이 느껴진다. 기재부는 올해도 나에게 나긋하진 않겠지. 그래도 하늘은 스스로 최선을 다한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내 역할을 다할 테니  올해는 하늘이라도 좀 도와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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