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둘째를 가지고 출산일이 다가올수록 무거워진 배를 감싸며 천방지축 첫째를 보기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고연차(?)가 된 남편은 연일 밤낮, 주말 없이 업무와 씨름 중이고, 멀디 먼 지방에 있는 시댁과 친정은 당장 도움을 줄수도 없다.
한마디로 진퇴양난, 고립무원, 총체적 난국이다.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굳이 여기서 연봉을 가지고 민간과 비교하고 싶지는 않지만 확실히 금전적인 부분을 가지고 공직의 가치나 의미를 찾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공무원은 민간기업에 근무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좋은 휴직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이미 나는 육아휴직을 1년이나 쓴 전례(?)가 있다.
첫 번째 휴직에 대해서는 체감하는 페널티가 있다고 느끼진 못했다.(승진순번이 좀 밀린 정도는 일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당연한 결과니 페널티라 할 순 없을 테고)
공무원 중에서도, 그것도 5급 이상에서 이 정도 쓴 사례를 많이 보진 못했다. 쓸 수 있다고 다 쓰지도 못하는 것이 육아휴직인셈이다.
(그래도 공무원이라 육아휴직 생각이라도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민간회사에서 아빠가 육아휴직을 쓰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니 말이다.)
육아휴직을 마음껏편하게(?) 쓰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물론 아예 휴직을 생각지도 못하는 환경에 놓인 많은 아빠들의 상황보다는 공무원인 내 입장에서 생각해 본 것들이라는 것을 미리 말한다.)
돈, 승진, 평판, 육아난이도 등이 대표적이지 않을까 싶은데 그밖에 여러 가지가 더 있을 수도 있고, 요소마다 비중도 개인차가 있을 수 있다.
그래도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추려본다면 돈과 평판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나이가 들어 먹고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은 자본주의사회의 필수적 활동이다.(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긴 하겠지만 극소수일 테고)
특히 가정을 꾸리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인생의 고정비용이 크게 늘어나게 되면서 생활비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게 높아진다. 그런 상황에서 부부 중 한 명이 경제활동을 중지하는 것은 가족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건 당연지사다.
사실 육아가 그리 만만한 것만도 아닌데 육아휴직을 하면서 많이들은 말은
잘 쉬다오라는 것이었다. 회사나 상사들이 생각하는 육아가 딱 그 정도인 것이다.
머 육아가 대단하다고 생업과 업무를 다 내팽개치고 해야 되냐는 불만 가득한 생각이 기초에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육아가 그리 쉽고 간단히 해결될 일이면 대체 저출산 해결은 왜 아직도 못하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심지어 저출산 해결의 중요주체인 정부부처 고위직 공무원들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말이다)
내가 시킨 일들은 죽어라 잘 해내야 하고, 육아는 알아서 남는 시간에 어지간히 해보라는 이기적 마인드인지 그 진심을 알 순 없지만 안다고 해서 이해가 될 것 같지도 않다.
아무튼 그 모든 상황과 조건을 고려해 봐도 휴직 외엔 그다지 답이 보이지 않았다.일은 누가 해도 하겠지만 내 아이를 잘 키우고, 와이프 부담을 덜어주는 것은 내가 아니고는 온전치 않을 것 같았다.(그렇다고 육아를 엄청 잘하는 건 아니지만 내 가족을 위한 사랑과 노력만은 그 누구보다 진심이지 않겠는가)
아이는 그냥 자라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냥 스스로 커 온 줄 알았는데 천만의 말씀이었다.
그리고 이제 어느 정도 꺾인 나이에 들어서는 입장에서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더 누리겠다고 동분서주할 것인가. 내가 장차관을 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니라 내 아이가 건강히 행복하게 커가는 것이 더 의미 있고, 아내와 함께 육아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야 반려자로서 동지로서 옳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가진 아버지가 해야 할 행동에 맞는 선택을 하는 것뿐이다.
그 선택에 대한 결과는 온전히 나의 몫이겠지만내가 누구와 오래 함께 살아가게 되는가를 생각해 보면 휴직이 그리 후회 가득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 생각되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