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노 Jun 18. 2024

비효율적이지만 따뜻한 배려

임산부 남편이 바라보는 임산부배려석

자신이 겪어봐야 다르게 느껴지는 것들이 많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도 그 나이가 되어보지 않고서야 온전히 이해하기가 쉽지가 않고, 취업도 해보지 않고서야 그 갑갑함과 비정함을 어찌 다 미리 알 수 있겠는가.


나에게 있어 자식을 키우는 것도 그러했다

아이를 좋아해서 지인들의 자녀를 많이 이뻐하고 아끼고 했지만 첫아이를 얻고 나서 확실히 자신의 아이를 바라보고, 키우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것을 여실히 느끼고 있다.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고 종종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을 보며 느꼈던 생각의 변화에 대한 글을 써보려 한다.



아이가 있기 전에 임산부 배려석은 나에게 또 하나의 쓸데없는 정책 중 하나였었다.

대체 왜, 무슨 근거로 자리하나를 비워둬야 하는 건지 알 수도 없었거니와 지하철에 자리하나를 비워둔다고 초저출산 상태가 조금이라도 해소될 거라고 생각하는 천진난만한 사고도 우스웠다.(그냥 좀 부정적이었다는 것을 약간 격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뭐 그래도 나라가 그렇게 하겠다니 도입이 되었고 많은 찬반 의견, 효과성에 대한 의문, 배려석에 앉은 사람들에 대한 공격 등이 난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게 나와 큰 관련이 있다고 생각지 않았다. 실제 관련도 없었고 난 그 자리에 안 앉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아이를 가지게 되면서 나는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에 대한 직접 이해관계자로 전환되었다.


서울에 살면서 지하철은 여러 교통수단 중 메인이 되는 이동수단이며 생활과 뗄 수 없는 부분이다.(기후동행카드의 인기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거기다 천만도시는 혼잡하지 않은 전철시간대를 쉬이 허락하지 않는다. 대체 어디서 그 많은 사람들이 쉼 없이 유입되는지 도통 알 수 없지만 일반적인 9 to 6 시간대조차 지하철은 붐빌 때가 많다.


그런 상황에서 점점 불러오는 배와 스스로 컨트롤하기 힘든 몸상태를 한 임산부가 제대로 서있지도 못하는 지하철의 밀집ㆍ폐쇄상황에 버티기는 쉽지 않다.


사실 임산부 배려석은 꽤 비효율적인 제도임에 틀림없긴 하다. 임산부 자체가 많지 않은 나라에서 하루에 수백만 명이 이용하는 지하철의 일부자리를 임산부에게만 허용한다는 것은 경제학적인 마인드가 없더라도 비효율적이라 느끼기 충분하다.(교통약자도 이용가능하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임산부에 중심으로 만들어진 좌석이라 표현을 한정했다)


거기다 법적 근거도 없기에 강하게 임산부가 타인에게 자리를 요구하기도 쉽지 않다(내 권리다 생각하고 당당히 요구하는 임산부가 있으실 수도 있지만 우리 내외가 그렇지 않아서 내 입장에 따라 글을 쓴다)

그리고 실제로 출퇴근 때 임산부배려석에 앉은 분들은 대다수 임산부는 아니었다.(이 역시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에 기인한 표현임을 미리 밝힌다.)


정책으로 지정은 해놨지만 주변인의 이타적인 배려에 기댈 수밖에 없는 이상한 자리일 뿐이다.

지옥철이라 부를만한 서울의 출퇴근 시간대, 그 혼잡한 순간과 장소에서 임산부가 그 배려석까지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내어달라고 요구하기도 쉽지 않거니와 언제 올지도 모르는 임산부를 기다리며 만원 지하철의 비좁은 공간에 자리 하나를 비워달라는 것도 강제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산부 배려석이 매우 비효율적이며 타인의 배려에만 의존하는 것이기에 더 의미 있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배가 부른 아내와 다닐 때 많은 분들의 크고 작은 도움을 받게 될 때가 많다. 해주지 않아도 누가 뭐라 하지 않고, 해줄 필요도 없는 행동과 말들이지만 아이를 가진 부부는 큰 감동과 감사를 느끼게 된다.


돈이 없고, 시간이 없어 아이를 낳지 않는 것만은 아니다. 여러 이유 중에 아이를 키우는데 도움을 받기 어렵다는 것도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자상한 어른이 곁에 많은 아이가 잘 자란다는 말도 직접 들은 적이 있는데 참으로 맞는 말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내는 소리가 줄어드는 세상에서 우리가 조금은 비효율적인 배려를 더 해나간다면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힘과 용기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회사가 괴로운 사람에게 퇴사라는 용기의 의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