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시간의 문이 열리는 카페
삶의 중간 어딘가,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사람의 기억이 다시 흐른다.
아무 일도 없었지만,
아무 말도 남지 않았지만,
나는 그 시간으로 다시 걸어간다.
삶의 중간 정류장에서 다시 가보는 시간 여행, 그때 그를 만나다.
우연히 발견한 커피숍에 들어간다. 카페 밖의 소음이 음악으로 전환되면서 어느새 29살의 그날이 되어 있다. 창에 비친 내가 낯설다. 카페 안을 바라본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던 그는 나를 향해 손을 든다. 뒤돌아봤으나 내 뒤엔 아무도 없다. "누구? 저요?" 그는 핸드폰에서 사진을 들어보이며 "맞죠?" 라고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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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저녁, 갑자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예보에는 없던 눈이었다.
나는 목적도 없이 걷고 있었고,
걷다 보니 어느 골목, 익숙하지 않은 간판 앞에 멈춰 섰다.
카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작고, 어딘지 낡은 유리문.
하지만 안에서 흐르는 음악이 이상하게 마음에 닿았다.
기타였다.
익숙한, 어딘가에서 들어본 듯한 선율.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 문을 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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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안은 따뜻했다.
바깥 소음은 문이 닫히자 곧 사라지고,
그 자리에 음악이 퍼졌다.
기억의 저편에서,
그 선율은 조용히 나를 데리고 갔다.
어느새 나는
29살의 그날로 돌아와 있었다.
인식하지 못한 채,
그저 낯익은 무언가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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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였다.
구석 자리에 앉아 있던 한 남자가,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손을 들었다.
나는 그 사람을 몰랐다.
본 적도 없는 얼굴.
하지만 그 눈빛은…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누구?”
그는 살짝 웃으며
핸드폰을 꺼내 사진 하나를 보여주었다.
그 사진 속엔,
20년 전 채팅창에서 쓰던 내 프로필 사진이 담겨 있었다.
흐릿한 픽셀,
낯선 배경.
그럼에도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건, 나였다.
“맞죠?”
그는 그렇게 물었다.
목소리는 낮았고, 조용했다.
마치, 지금까지도 기다려왔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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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울렸다.
그동안 지워진 줄 알았던 결이,
다시 진동을 일으켰다.
그를 본 적 없었고,
이 자리에 함께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사람은,
그때 그 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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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지금인 거죠?”
나는 속으로 묻는다.
“왜 이제야, 이 시간, 이 카페에서야 비로소 당신을 마주하는 거죠?”
그는 웃지도, 울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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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저녁, 눈이 내리는 거리.
작고 따뜻한 카페 안.
기타 선율이 흐르고,
구석 자리에 앉은 남자가 핸드폰에 흐릿한 사진을 들고 조용히 손을 든다.
문턱에 멈춘 여자의 눈빛이 어딘가 흔들린다.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