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도둑
그녀는 한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차가운 밤공기가 피부에 스며들었다.
가로등 아래 두 개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도시는 조용했다. 지나가는 자동차조차 드물었다.
하지만 그녀의 머릿속은 멈추지 않았다.
그도 같은 꿈을 꿨다.
그 속에서 자신을 봤다고 했다.
이건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그녀는 마른 입술을 떼었다.
“당신은… 그 꿈에서 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억나요?”
남자는 한순간 눈을 내리깔았다.
그 짧은 망설임이 오히려 명확한 대답 같았다.
그녀는 조용히 기다렸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무엇이든, 지금 도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당신은 창가에 앉아 있었어요.”
그의 목소리는 낮고 조용했다.
“차가운 창문에 이마를 기댄 채,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죠.”
그녀는 숨을 삼켰다.
그 장면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그녀 역시 같은 꿈을 꿨다.
그녀는 기차 안에 앉아 있었다.
창밖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꿈속에서도 그 풍경을 보고 있었다.
기차의 흔들림, 창문을 타고 흐르던 물방울.
그리고…
그녀는 느꼈다.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묘한 감각만을 품은 채, 꿈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잊어버렸다.
언제나처럼.
그녀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그게 전부인가요?”
남자는 잠시 머뭇거렸다.
“아니요.”
그녀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꿈 속의 기차 안엔 우리만 있었던 게 아니었어요.”
그녀는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남자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우리 말고도… 누군가가 더 있었어요.”
그녀의 손끝이 저릿하게 떨렸다.
“누군데요?”
남자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사람.”
그녀는 숨을 들이켰다.
그 순간, 기차역에서 짧은 경적음이 울렸다.
멀리서 달려오는 기차의 불빛이 어둠을 갈랐다.
순간, 머릿속이 뒤흔들렸다.
기차.
비.
흔들리는 차창.
그리고…
기억의 한 조각이, 균열을 내며 떠올랐다.
그 기차 안에서.
그녀는 분명…
누군가를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기억이 선명해지려는 순간—
어둠이 다시 삼켜버렸다.
기차의 불빛이 서서히 다가왔다.
그녀는 무언가를 기억해내려는 듯 눈을 감았다.
그때,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당신도 들었나요?”
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
“…뭘요?”
남자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말했다.
“꿈 속에서요.”
그의 시선이 흔들렸다.
“…누군가가 우리한테 말을 걸었어요.”
그녀의 심장이 순간 조여들었다.
그는 다시 말했다.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어요.”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분명했다.
“이건 네 기억이 아니야.”
그 순간, 기차가 도착했다.
바람이 거세게 휘몰아쳤다.
( 다음 장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