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편안하다
햇살이 부드럽게 스며든다. 서진은 창가에 걸터앉아 조용히 책장을 넘겼다. 그녀의 손끝을 스치는 종이의 감촉과 잔잔한 공기의 흐름이 마음을 안정시켰다. 창밖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가 들려왔고, 가끔 바람에 실려 오는 커피 향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주방을 바라보았다.
커피를 내리는 도윤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의 손길은 거칠면서도 능숙했다. 서진은 조용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때는 몰랐다.’
“커피 마실래?”
도윤이 무심한 목소리로 물었다. 서진은 시선을 그의 손끝으로 옮겼다. 갓 내려진 커피에서 가느다란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응.”
도윤은 커피잔을 그녀 앞으로 밀어놓고는 자신의 것도 한 잔 따랐다. 그는 언제나처럼 별다른 말 없이 커피를 마셨다. 서진도 자연스럽게 따라 했다.
이런 순간이 익숙했다. 서로 말이 없어도 불편하지 않은 관계. 사랑한다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함께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시간들.
서진은 눈을 감고 커피 향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도윤아.”
“응?”
“우리가 이렇게 평온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언젠가는 사라질까?”
도윤은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잠시 생각하는 듯했다. 그리고는 조용히 말했다.
“사라지면 어때?”
“……”
“그럼 또 만들면 되지.”
그때는 그 말이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순간들. 잔잔한 행복. 깊게 고민하지 않아도 편안했던 시간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현재
서진은 천천히 눈을 떴다.
창밖으로 비치는 햇살은 여전했다. 커피 향도 익숙하게 감돌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르게 느껴졌다.
그의 시선 속에서 이제는 더 이상 나를 찾을 수 없다.
그 기억은, 그 시간은.
이제는 오직 나만이 기억하는 것들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