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매스
한, 두 달 전쯤인가? 한창 유튜브에서 시시덕 거리며 시간을 보내다 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의해 뜬 최유정이 'Aan July'라는 노래를 커버한 무대 방송을 보았다. 최유정은 한 번쯤은 스쳐 들어봤을 "pink me pink me pink me up~!"이라는 후크송을 메인으로 내걸고 한창 인기몰이를 하던 프로듀스 101이라는, 데뷔를 꿈꾸는 연습생들의 치열한 경쟁(?)을 그린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온 귀엽고 예쁜 인물이다. 나는 이 프로그램은 보지 않았지만 최유정이라는 아이돌에 대해선 이름과 얼굴 매치 정돈하고 있었고 평소 and july라는 노래를 좋아했기에 영상을 클릭했다.
영상을 틀자마자 처음 나왔던 장면은 무대 전 최유정의 인터뷰 장면이었다. 그녀가 첫마디를 때는 순간. 짠했다.
연습생 때 상처가 되었던 말이 있다.
너는 이것도 애매하고, 저것도 애매해.
뭐 하나 딱 널 내세워 보여줄 게 없는 거 같아.
그에 베스트 댓글이 '모든 게 애매하다는 말은 언제든 무엇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라는 심금을 울리는 대사와 함께 따봉 7.9천을 받았다. 그러나 역시 사람들은 각자의 관점에 따른 다양한 생각을 하나보다. 찬반이 나누어졌다. '그냥 애매하단 거다. 이게 얼마나 이도 저도 못하게 하는 줄 아느냐?'와 '무엇이든 잘할 가능성이 있단 거다.'라는 두 가지의 뉘앙스로 의견이 나뉘었다.
자 그럼 여기서 질문을 던져본다.
우리는 하나의 분야에서'만'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가? 전문가의 길은 꼭 하나'만' 주구장창 파야 얻을 수 있는 것인가? 왜? 사람의 역량은 다 다른데? 전문가가 되기까지의 기준은 무엇이며, 또한 잘한다는 기준 무엇이며, 그 기준까지 도달하는 시간의 기준 또한 무엇인지. 도대체 뭘로 평가할 것인가?
박사학위? 자격사항? 출판한 책들이나 전시된 작품들? 그럼 그거들을 가진 사람은 진짜 전문가인가? 그들이 하는 말은 무조건 맞으며, 그들은 새로운 혁명을 만들어 내는가?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단 하나의 분야에서 빛을 발휘해야 한다는 관념 속에 자라왔다. 전문화를 위해 고등교육으로 갈수록 더욱더 쪼개진 형태의 수업을 들으며 하나의 분야에 깊이 빠진다. 사회로 나와 취직을 해야 하는 순간에도 이 '전문화'는 필요하다. 전문화가 있어야 취직도 가능하다. 이것저것 여러 분야에 기웃기웃하는 사람은 변덕스럽다 정도로 여기며 따돌리는 문화까지도 어렵지 않게 생성된다. 그들은 깊이가 없다 말한다. 그들은 결코 뭐 하나도 제대로 못할 거라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전문화가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의심해본 적이 있었던가? 너무나 당연하게 사회의 관념 속에서 자라왔다.
-전문화의 늪
21세기인 현시대는 서구사회를 모방하느라 대부분 나라에서 한 분야의 '전문가'로 살아가도록 강요한다. 고도로 쪼개진 각 분야에서 자신만의 특기를 발견하여 키우는 것을 적극적으로 격려한다. 학위 없이 사회로 나왔을 땐 먹고살 '업종'을 찾아야 한다. 결국 한 가지 일에만 헌신하면 살아가는 길이 곧 진리이자, 자아를 찾는 길이며 생계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착각'에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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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는 거대한 세계를 조각조각 분리하고 엄격하게 경계를 긋고 우리가 한 가지 '분야'의 전문가로 살아가게 만들었다.'
-150p
산업화, 관료주의, 기업과 교육기관의 전문화 제도. 공통점이 보이는가? 지식이 폭발한 당시 서구 세계에서 모든 지식을 다루기엔 불가능하단 사상과 함께 데카르트의 비판적이고 환원주의적 관점에서 지식에 접근하는 태도가 정착되었고 이것은 지식의 전문화를 앞당겼다. 이것은 업무와 직업의 전문화로까지 이어져 흐르는 역사와 함께 도입된 산업화, 관료주의, 기업과 교육기관 등이 형성되었고 그들은 20세기에 접어들어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관(학교, 정부, 기업)이 되었다. 그들의 이익을 채워줄 수단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필히 전문화와 분업이 성행되어야 한다. 전문화는 오늘날 직업에 대한 불만족을 낳았다. 직업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경제적 안정을 얻으려면 오로지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그 안에서 우리는 일종의 노예제처럼 무언의 굴레에 매여 있다. 정부와 기업은 노동자들의 몸부림엔 관심 없다. 인간은 이기적이다. 역사상 그 수많은 전쟁도 인간의 이기심에서 시작되었다. 그 이기심은 제국주의를 만들고 전쟁을 성행시켰으며 식민화를 만들어냈다. 오늘날 그 형태는 학교, 정부, 기업의로서 우리 사회에 스며들어 그들의 이기심을 충족하게 만드는 또 다른 식민화를 만들고 있다. 우리는 점점 범주화에 빠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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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한 우물만 깊이 파도록 강요하는 문화가 팽배하고, 어느 분야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우물 밖으로 빠져나오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167p
경험은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단순히 직관적인 추측이 아니라 신경과학에 기초하여 뇌로 흘러들어오는 정보와 지식은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가 대상을 보는 관점에 미미하게 또는 뚜렷하게 영향을 미친다. 이 뇌의 신경망은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져 외부 자극에 따라 끊임없이 전화하고 사람마다 고유하다. 즉 부보, 교육기관, 고용주, 정부, 사회 시스템 자체가 우리를 이런 사고로 빠트렸다. 우린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초 전문화를 영구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한 것이다. 결국 우리는 특정 사회 체제와 전문화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전문화 시스템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 속해, 그 문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폴리 매스란?
무함마드 이븐 압둘라, 아리스토텔레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 벤저민 프랭클린, 요한 볼프강 괴테, 나이팅게일, 아이작 뉴턴, 공자 그리고 정약용.
한 번쯤 들어본 역사상 위대한 위인의 이름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예술, 문학, 과학, 사회, 철학 등 각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이들이다. 이와 함께 이들은 하나의 분야에만 머물지 않았다. 이들은 물리적 세계뿐 아니라 형이상학적 세계 또한 깊이 이해하였다. 과학과 예술을 공존시켰다. 항상 호기심에 살았으며 다양한 분야를 알고 싶어 했다. 그들은 생각에 경계를 두지 않았다. 이들은 서로 동떨어지고 낯선 분야를 탐구하는 일을 죄악시하지 않았다. 이들은 만물에서 통일성을 읽었다. 그들은 폴리 매스이다. 폴리 매스란 최소 3가지 영역에서 상위 10% 두각을 보이는 이들을 말한다.
-우리는 왜 폴리 매스가 되어야 하는가?
1. 세상은 복잡하다.
타고난 인간의 학습 욕구와 성장 욕구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호기심 가득하게 태어난 존재이다. 범주화는 이런 우리의 창의성과 호기심을 제한한다. 깊게 판 우물 안에 갇힌 우리는 오로지 그 우물 안의 세상만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세상은 흑과 백으로 나뉘지 않는다. 우리의 세계는 너무나 복잡하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에드가 모랭은 '우주는 하나의 완벽한 기계가 아니라, 구축과 해체가 동시에 진행되는 하나의 과정이다.'라고 말했다. 고로 우리는 이 복잡성을 이해하고 대처할 필요가 있다. 복잡하고 비구조적인 지식의 영역을 이해하려면 유연성 혹은 다방면의 재능이 필요하다. 사고의 확장은 전체를 보는 시야를 만들어 준다. 맥락이 이어져 복잡계가 창발 한다. 창의성은 새로움이 아니라 각 분야의 기존의 것들을 조합하여 새롭게 만들어 내는 거란 걸. 좁은 사고론 복잡성을 이해할 수 없다. 새로움을 창조할 수 없다. 삶의 충만함을 온전히 느낄 기회를 자꾸만 가져간다.
2. 기계적 특이점이 온 현재. 이젠 생존의 문제다.
너구리는 문제없이 번식하지만 코알라는 멸종 위기에 놓여있다. 왜까? 간단하다. 너구리는 잡식성이고 다양한 환경에서 서식하지만 코알라는 전적으로 유칼립투스 잎에 의존하고 특정 기후대인, 오스트레일리아의 동부 산림 지대에서만 서식한다. 즉 환경이 바뀌면 살아남을 수 없다. 이걸 노동환경에 가져가 보자. 현 사회는 기계적 특이점이 온 새로운 사회이다. 초지능을 가진 기계는 이미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었다. 그 지능을 위해 그렇게 전문화를 외쳤는데 그 분야를 이미 기계가 가져갔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을 건가? 결국 기계로 대체되는 그저 그런 존재가 아닌 대체할 수 없는 유일무이 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급격하게 변화는 노동환경에 적응력을 높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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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인간이 타자기였으며 우리는 오래전에 사라졌을 것이다. 설령 최신 아이폰 기기라 해도, 두어 해 지나면 불필요해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바흐의 심포니 곡이나 반 고흐의 그림 혹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이라면, 세월이 주는 시련을 견대낼 것이다. 만약 누구도 모방할 수 없고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인간이라면 어떤가?
-185p
-그렇다면 폴리 매스가 되기 위하여
사고방식을 개혁하라. 우리의 사고방식에 스며든 전문화의 독소부터 제거하여야 한다. 일차원적 사고로 길들여진 인간은 고도화된 21세기를 이해할 수 없다. 인류가 쌓은 지혜와 현대 인지과학의 성과, 존재했던 폴리매스들의 삶과 사상의 교훈을 종합해 우리는 우리 안의 폴리매스를 찾는 지도를 그릴 수 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자아를 찾아야 한다. 자신만의 고유한 본질을 온전히 이해할 때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는 일에 매진할 수 있다. 이것이 곧 자아실현이다. 자신이 '누군지' 알고 나면 '무엇이' 될 수 있는지 이해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 자신의 기질대로 가슴 뛰는 일에 과감히 뛰어들어라. 최적의 자아를 실현하라. 천성적으로 모호하고 애매한 것을 싫어하고 최적의 균형 상태를 위해 지루함을 벗어나려 하는 뇌를 가진, 호기심을 타고난 인간의 타고난 성질에 역행하지 말고 지식으로서 도파민을 채워 넣어라. 다양한 원천에서 지식을 얻고 자연스럽게 여러 분야의 지식을 습득하라. 감각 지각과 일치하는 실재만 파악할 수 있는, 인지적 편향과 문화적 편견에 둘러싸여 제약을 받는 인간의 뇌로만 세상을 결단하지 말고 사고를 열어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보라. 여러 세계의 존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다중지능이 가져다줄 것이다. 판단력을 통한 비판적 사고로 주어진 전제에 의문을 제기하고, 체계성을 가진 지능과 이성을 바탕으로 올바른 사실을 논리와 증거로 검증하라. 다재다능함으로 무관해 보이는 여러 영역(신체적, 지적, 영적, 정서적, 실무적)을 매끄럽게 넘나들어라.
그렇게 한다면 복합성을 가진 창의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창의성은 인류 발전의 근간이었다. 폴리매스는 창의성의 산물이다. 창의성이란 서로 연결하는 능력이다. 폴리매스들은 그동안의 경험을 연결하고 종합해 새로운 것을 창조할 능력을 만든 것이다.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더 많이 생각했기에 가능했다.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위대한 과학자는 위대한 예술가이기도 하다'라고. 인간의 뇌(좌뇌/우뇌)는 개별적인 파편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한한 경로로 이어지는 네트워크만이 존재한다. 이 연결은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상호 연관성을 선사해줄 것이다. 비로소 맥락적 사고를 가질 수 있다. 우주는 하나이다.
최유정의 얘기로 다시 돌아가자. 본인은 이것저것 애매하다 말했지만, 이것저것 애매할 수 있단 것은 이것저것에 관심이 있기에 애매할 수도 있는 이야기라 생각한다. 관심이 없으면 애매할 껀떡지도 없으니깐. 본인은 어쩌면 하나의 분야에서만 탁월함을 강조하는 사회를 등지고 그렇게 생겨먹은 뇌를 가진, 호기심으로 여러 영역을 넘나들며 다재다능함을 추구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성에 충실했던 걸 수도 있지 않을까? 폴리 매스의 자질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주류를 역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길은 사실 다양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고로 나는 애매함이 아니라, 이 애매함을 무한히 키울 수 있는. '무엇이든 잘할 가능성이 있단 거다.'에 한 표를 주고 싶다.
결국 세상은 이분법적인 것이 단 하나도 없다. 나는 이걸 몸을 공부하면서 깨달았다. 우리의 몸은 우주같이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 어쩌면 이점이 나를 기능해부학에 빠져들게 한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너무 재밌는 게 많고 궁금한 게 많다. 나는 이 긴 여생을 하나의 지식과 경험에만 묶여 살고 싶진 않다. 폴리 매스가 되는 요소를 꼽자면 '독학, 끊임없는 학습 욕구, 강한 의지와 인내심'. 이 세 가지를 강조했다. 역사상 유명한 폴리 매스들도 실로 스승이 없이 다양한 경로로 지식을 습득하고 독학으로 혼자 배워나갔다. 지식은 도파민을 생선 한다. 도파민은 충만감을 준다. 괴로운 특정 임계점을 넘어 책 읽는 것이 자연스럽게 습관이 된 뒤로 책을 읽음으로 나는 도파민=충만감을 체감하고 있다.
모든 인간은 호기심이 많고 창의적이고 변화무쌍한 기질을 타고났다. 이런 본모습을 망각한 인간은 행복하지 않다. 인간은 자아를 꿈꾸는 존재이다. 삶의 경험을 다각화하면 삶이 매우 다채롭고 풍요로워진다. 우리는 우리 안의 호기심을 깨워 다재다능함을 개발함으로 최고의 경영자가 될 수도 있다. 연쇄 창업가가 될 수도 있으며, 벤처 투자가가 될 수도 있다. 더욱더 본업과 무관한 취미생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탐험하며 공부하자. 다양한 분야의 조예로 나의 고유한 전문성을 빚을 때, 충만한 삶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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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사회진화론이 만연하고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패러다임이 되면서 교육을 물질적인 성공과 신분 상승을 얻기 위한 주요 수단으로 여기게 되었다. 현행 제도와 문화 안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몸값을 올리는 과정인 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교육과정을 마친 후에는 이를 잣대로 능력을 평가하고 신뢰하는 고용주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 한다. 우리의 가치는 대부분 얼마나 전문성을 갖췄는지를 기준으로 판단된다. 그런 점에서 교육은 안정된 일자리와 지위를 얻는 도구가 되었다.
-326p
하지만 이제 인공지능에게 인간의 지식이 위협당함에 놓였다. 기술적 특이점이온 지금 인간은 새로운 인지 혁명을 하여야 한다. 또한, 무엇보다 나의 삶의 충만감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