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 폭식증
먹는 것을 멈출 수 없어요. 저는 불행해서 먹어요.
그리고 먹어서 불행해요. 악순환의 연속이죠.
-영화 <오스틴 파워> 중
생명을 위해 가장 빠른 에너지 공급원인 당을 찾아 나서야 했던 원시시대를 등지고 흐르는 시간은 거대 식품산업을 만들어 냈다. 식품회사들은 그들의 이익을 위해 뇌를 중독시키는 당분과 트랜스지방 조합의 자극적인 맛들을 앞다투어 내놓고, 흐르는 트렌드는 먹방을 유행시키더니 무슨무슨 음식 조합 앞에 자동으로 뇌의 불이 번쩍 하고 켜지는 환경을 자연스레 만들었다. 이뿐 아니라 언제부턴가 헬스가 떠오르더니 애플힙, 직각어깨, 꿀벅지를 유행시켰고 사회가 원하는 게 그런 몸이니 인정 욕구를 바라는 인간은 그런 몸이 목표가 되어 끝없이 노력한다. 하나 그런 몸은 일반적인 식사와 운동으로 나오질 않는다. 헬스 = 닭가슴살+ 고구마 혹은 탄. 단. 지(탄수화물, 단백질, 지방)가 무슨 공식화가 되었다. 바디 프로필까지 유행하며 더더욱 이 룰이 통념화되었고, 인간 생리 메커니즘의 자연스러움을 역행하는 것은 당연히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른다.
이른바 음식중독의 시대다. 그리고 음식중독과 사회의 기준은 식이장애를 낳았다.
우리는 다이어트 서적이라는 형태로 다른 이들의 말을 먹음으로써 폭식에 대응해보려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뷔페 상차림처럼 차려진 온갖 다이어트 방법이 유행하고 있어도 이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 중에 건강한 체중을 유지하는데 효과가 있어 보이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 중 P86
그렇다. 내가 먹는 것이 나를 만들고, 날씬함은 둘째치고 건강을 위해서도 이런 설탕 범벅, 트랜스지방 범벅인 과자, 빵, 케이크, 정크푸드, 가공식품을 즐기다 싶은 수준을 넘어서면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 단것쯤은 너무 잘 안다. 운동의 중요성도 너무 잘 알고, 무거워지는 몸에 둔해짐은 물론이거니와 왠지 아픈 데가 생기고 생기를 잃어가는 거며, 뭐든 다 귀찮아지는 것도 내가 먹는 음식 때문인걸 다 안다. 매일 아침 부운 몸으로 힘겹게 눈을 떠야 하고, 몸에 넘치는 당분과 지방이 도니 컨디션은 늘 난조인 것도. 그게 너무 싫지만 식탐 앞에선 어쩐 일인지 내 의지대로 되어주지 않는다. 전날 마지막을 외치며 먹은 떡볶이 앞에서 굳은 의지를 다졌거만 눈을 뜬 지금의 나는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딱 집어 뭘 먹고 싶은지도 모르겠는 그 욕구를 뭐든 먹어서 풀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과거의 한 때 늘씬한 몸을 가졌던 적이 있다면 그때와 비교하여 잃어버린 지금의 모습이 몇 곱절은 더 싫다. 애초에 없으면 없었지 뭐든 줬다 뺏으면 상실감이 더 크다. 인간의 손실회피 성향은 진화를 만들어 주었지만 괴로움도 두배로 만들었다. 거울은 쳐다보기 싫고 매일 오르락내리락하는 체중계 앞에 우울함만 깊어지고 우울함은 어김없이 자기혐오로 이어진다. 치가 떨리게 싫다. 그깟 음식 하나, 체중계 숫자 하나, 거울에 보이는 나의 모습에 나 자신이 치가 떨리게 싫다.
왜 나는 음식을 갈망할까? 왜 나는 의지 앞에서 매번 무너질까? 나는 분명 다른 것들은 굳건한 의지로 해내는데 왜 유독 음식 앞에선 이럴까?
음식중독의 시대
생명 앞에 인간은 보상체계와 형벌체계를 만들었다. 우리의 DNA는 생존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쾌락과 고통을 느끼게 뇌를 만들어 버렸다. 이것은 먹지 않으면 배고픔의 고통을 느끼게 하고, 배고픔의 고통을 먹어 채우게 되면 배부름이란 보상을 준다. 문제는 지금은 과거에 없던 세상이란 점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뇌를 이용했다. 오르가슴에 가까운 쾌락을 주게끔 당분을 극도로 이용한다. 과자, 빵, 탄산, 양념이 범벅된 음식들, 기름에 튀겨 올린 음식에 달콤한 시럽을 듬뿍 뿌리고 초콜릿과 아이스크림을 얹힌다. 이것은 혀에 닿는 즉시 뇌에 극도의 도파민을 선사하고, 가공식품 정크 식품 등 당분과 지방 조합의 고 칼리 음식을 먹게 함으로 보상체계를 극도의 쾌락으로 물들인다. 중독을 노려 그 음식을 자꾸 소비하게 만든다. 중독으로 뇌가 물들어 버리면 만족이란 걸 모르게 된다.
만족하고 싶어 먹었는데, 먹을수록 만족감은 채워지지 않는다.
식품회사들은 이 점을 잘 안다. 설탕, 지방, 소금을 잔뜩 넣어 약물 중독같이 음식중독을 만들어 낸다. 하물면 구하기는 얼마나 쉬운지. 예전 달콤한 과일 하나를 얻기 위해 한쪽 팔을 희생해야 했던 때완 다르다. 수요와 공급이 역전되었다. 설탕, 지방, 소금을 많이 넣을수록 되려 저렴해졌다. 웃기게도 음식 조차 빈익빈 부익부를 만든다. 이런 값싼 음식은 저소득층이 훨씬 많이 소비한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영양 구성이 바르고 충만할수록 값이 비싸지기에 먹으래야 먹을 수가 없다. 그러니 선택지는 값싼 쪽이고, 값싼 쪽은 애당초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영양 구성과 뇌를 중독시키는 조합에 자꾸만 더 갈망하게 만든다. 이러니 당연한 얘기다. 먹을수록 벗어날 수 없는 건.
식욕을 쥐고 흔드는 장내 미생물
무균 생쥐는 결점하나 없는 수수 그 자체지만 그 때문에 뼈가 남을 정도로 앙상하고, 면역계도 문제가 있다. 무균 생쥐를 보면 알 수 있듯, 우리는 세균에게 살 장소와 먹이를 제공하고, 세균은 우리에게 일부 비타민 성분을 제공하며 지독한 병원성 세균고 곰팡이를 막아준다. 하지만 세균은 이기적이었다. 자신의 번식을 최적화하기 위해 뇌를 속여 자신의 번성에 도움이 될 음식을 먹게 만들었다. 우리 몸 저 아래 있는 세균들은 우리의 뇌에 식탐에 영향을 미치는 화학적 신호를 보낸다. 신호를 보냄으로 번식하고, 자신의 영역 넘보는 다른 세균을 물리치는데 필요한 음식을 갈망하게 한다.
의간균과 후벽균. 비만 여부를 결정하는데 영향이 있는 미생물을 과학은 밝혀냈다. 날씬한 배 속과 비만한 배 속에 사는 세균의 유형에서 차이가 나타난 것이다. 비만한 생쥐는 후벽균이라는 세균이 더 많았고, 의간균이라는 세균은 더 적었다. 후벽균은 의간균에 비해 음식에서 더 많은 칼로리를 뽑아낼 수 있다. 즉 지방을 저장하기 더 쉽다. 미생물은 우리가 먹는 식단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는다. 대체로 탄수화물, 지방, 소금이 많이 든 서구식 식단을 먹는 피렌체 아동들은 후벽균을 더 많이 가지고 있었다. 불균형한 식단은 불균형한 미생물총과 관련이 있다. 우리 장에서 수용하는 세균의 유형은 식생활에 반응해 신속하게 바뀐다. 즉 정크푸드를 즐겨 먹으면 장내세균의 균형이 지방 생성을 촉진하는 종류로 급속히 바뀌어 악순환 고리에 빠질 수 있다. 단순히 미생물총을 어디서 수급받더라도 근본적으로 '내가 먹는 것의 질'이 바뀌지 않는 이상 체중 증가를 막을 길은 없다.
식사의 양 조절 메커니즘
앞서 인간의 형벌체계와 보상체계는 배고플 때 괴로움을 느끼게 만들고, 배고픔을 채우면 만족을 느끼게 설계되었다 했다. 이 신호를 뇌가 알아차리게 하기 위해 우리의 몸은 호르몬을 이용한다. 배고플 때 나오는 그렐릴 호르몬과 배가 채워지면 나오는 랩틴 호르몬은 서로 균형을 맞추며 생명유지에 필요한 영양을 공급받고 식사를 조절한다. 그런데 애초에 이 식사조절 호르몬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유전자가 있다면?
배고픔/포만 호르몬 시스템을 방해하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은 유독 과식을 하고, 음식 조절을 어려워한다. 우연히 우리 속에 있던 비만한 생쥐로 인해 발견하게 된 이 유전자는 ob/ob라는 비만 생쥐 품종을 개발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 생쥐들은 더 이상 랩틴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포만감을 느낄 수 없다. 이런 생쥐에게 랩틴 호르몬을 주사했더니 신기하게도 과식을 멈추었다. 그런데 생쥐뿐 아니라 인간에도 이 유전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과학은 밝혀냈다. 이런 환자들은 랩틴을 주사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애당초 이런 환자는 극소수란 점이고, 우리가 음식조절이 어려운 것은 안타깝게도 음식중독이 만들어낸 내성 때문이다. 지방세포에서 나오는 랩틴이 그만 먹으라 호소를 해도 이미 음식에 중독된 뇌는 말을 듣지 않는다. 중독되는 음식의 반복적 노출로 랩틴 호르몬을 받아주는 수용체의 변이가 생긴 거다. 이 외에도 뇌의 보상체계에 영향을 주는 호르몬들과 그 호르몬들을 조절하는 유전자, 수용체들의 변이에 대한 연구는 이어지고 있다. 유전자는 우리의 기분까지도 조절한다. 또한 뇌종양이나 뇌진탕으로도 체중은 늘거나 줄어든다. 불수의적 운동장애를 조절하기 위해 전기자극을 주는 뇌 임플란트를 이식한 사람이 갑자기 폭식을 하기도 한다. 식습관에 있어 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다.
이쯤 되면 그저 자제력만의 문제가 아니다. 스스로의 통제력을 벗어난 부분이 자제력으로 해결될 문제일까? 타고난 dna와 중독을 만들어내는 환경에 태아 때부터 노출되어 프로그래밍된 사람들에게 그저 자제력, 의지의 문제라고 욕하는 게 옳은 건가? 우리는 우리가 어쩔 수 없는 문제로 자책할 필요가 없다. 앞서 살펴보았듯 애당초 DAN, 미생물총 등이 섭식 습관과 체중 증가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이건 내가 어찌하지 못하는 통제 불가능의 영역이다. 그렇다면 받아들이자. 과학은 똑같은 식생활과 똑같은 방식으로 생활해도 유전적 구성 때문에 사람마다 체중의 증감이 현저히 다르게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누군가는 식욕조절이 상당히 어려울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어찌어찌 빼더라도 유지가 어려운 이유에도 관여한다. 알아야 할 건 그 의지 또한 유전자의 영향이다.
하지만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원인을 알기에 우리는 시도해볼 방법을 알 수 있다.
앞의 내용들을 모두 종합해보면 결국 해결책은 좋은 음식을 먹음으로 장내 미생물이 설탕이나 지방이 아닌 싱싱한 야채로 살아가는 미생물 수를 늘리는 것이다. 몸속에 야채를 원하는 미생물이 많아질수록 도넛이나 케이크 대신 샐러드를 갈망하는 미생물 수가 더 늘어난다. 식이섬유가 듬뿐 든 음식들은 우리 건강에 큰 혜택을 주는 장내 세균들에게 좋은 먹이이다. 식이섬유가 장에 들어가면 아커만시아 뮤시니필라라는 세균 숫자가 치솟는다. 이 균은 날씬한 사람들한테서 자주 보이고, 비만이나 2형 당뇨가 있는 사람에겐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아커시만균은 위장관을 덮는 점막층의 회전율을 높인다. 점막층은 누수를 막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위장관에 든 내용물이 새어나가면 지방 조직과 몸 곳곳에 염증이 발생하고 이것이 곧 체중 증가로 이어진다. 연구에 의하면 식이섬유는 미생물총의 조성을 후벽균에서 의간균 쪽으로 이동시켰다. 소화된 식이섬유로 부터 만들어진 단사슬 지방산은 폐로 이동하여 알레르기성 염증을 줄이는 면역 반응의 변화를 보여주었다.
우리가 먹는 음식으로부터 들어온 좋은 미생물들이 장에서 뇌로 보내는 신호를 조절하여 음식중독을 점점 흐리게 만든다. 이 세균들은 자신이 필요한 음식을 우리가 먹을 때까지 우리를 괴롭힌다. 세균은 우리의 지배자로 군림하여 우리의 식욕뿐 아니라 기분까지도 흔들어 놓는다.
결국 내가 먹는 것이 나를 만듬은 물론이거니와,
내가 먹을 것들의 방향까지 결정한다.
좋은걸 먹으면 좋은 방향으로 자꾸만 변화한다. 정크푸드 대신 집어 든 대량 영양소와 미량 영양소가 꽉 채워진 정갈한 음식의 영양과 식이섬유는 장내에 좋은 세균들을 자꾸만 만들고, 이런 세균들은 뇌를 통하여 다시금 좋은 음식을 달라는 신호를 보낸다. 영양의 만족감이 생기니 정크푸드를 먹으면서 뇌를 중독시켜 음식을 향한 주체할 수 없던 탐욕관 달리 만족하며 손을 내려놓을 수 있다. 반면 정크푸드를 자꾸만 집어 든다면, 이 정크 푸드를 통해 들어온 미생물들은 자꾸만 정크푸드를 달라 아우성칠 것이다. 부족한 식이섬유는 장누수를 만들어 각종 염증과 비만에 기여하게 만들 것이다. 빈익빈 부익부는 어디서나 적용된다.
다이어트 문화에 매몰되어 현저히 떨어지는 칼로리와, 오로지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만 운운하며 미량 영양소는 깡그리 무시하고, 체중 조절용 식품이랍시고 만들어진 가공 음식들의 함정에 빠지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에서 오는 정갈하고도 복합적인 영양성분을, 몸이 필요한 만큼 먹는 것이 먼저이다. 진화를 위해 놀랍게도 변해온 몸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외에도 심리적이 부분에서도 뇌와 연관되어 많은 부분들이 우리의 기분과 감정을 조절하며 폭식과 멈출 줄 모르는 음식 탐욕을 주도한다. 단순히 섭취 칼로리, 소모 칼로리 따위의 단순함으로 다이어트를 논할 수 없다. 정신적, 심리적, 뇌과학, 영양적, 생리학적, 유전자, 후생 유전자, 미생물 등. 이 모든 것들의 총집합으로 얽히고설켜 복합적인 작용으로 체중을 만드는 나의 행동이 결정된다. 그러니 그저 이분법적 사고로 한 가지 면만 들이밀면 식이 문제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섭취하는 것보다 더 적게 먹으면 되잖아', '나는 하는데 너는 왜 못해?', '이게 어려워?', 짜게 먹지 말라, 탄수화물을 먹지 말라, 닭가슴살 고구마 야채 먹어라, 간헐적 단식을 하라, 저탄 고지를 하라 등 그저 자신의 기준에서 자신이 했봤던 한 가지 방법 들이미는 건 그만하자.
이따위 말을 한다면 첫째로 알지 못함을 깨닫고 알려하길 바라고, 둘째로 그런 말을 하는 당신이 전문가라면 자질 박탈이다.
사실 안다. 이미 우리는 중독되었고, 굳혀진 습관성은 다시 전으로 되돌아가기 무척이나 힘든단 걸. 습관이 이렇다. 거기에 안 좋은 것들은 안 좋은 것들을 자꾸 부르니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며 오만 방법의 노력을 다 해보지만, 나아지지 않는, 그래서 자꾸만 자신이 혐오스럽고 우울과 좌절감에 빠지는 그 억겁의 시간이 얼마나 쌓였을지. 그 악순환의 끝없는 반복을 나도 잘 안다. 마음고생 많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아마 이 끔찍한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많은 시간이 들것이다. 먼저 사회가 만들어낸 기준의 충족감을 내려놓아야 한다. 과거 화려하고 예뻤던 모습을 잠시 넣어두고 현재를 바라보자. 당장 예전처럼 변해 예쁜 모습으로 지내고 싶은 욕심이 미친 듯 올라오겠지만 모든 건 빠르게 변하질 않는단 걸 받아들여야 한다. 몇 년이 걸릴지언정 그 시간을 수용하겠노라는 현재를 바라보며 정면으로 맞서는 마음부터 가져야 한다. 그리곤 노력하자. 아무것도 따지지 말고 대체 하지도 말고 손수 조리한 다양한 재료의 밥상을 충분히 먹음을 먼저 행하려 하고, 나의 행동이 왜 그런지에 대해 알려하자. 그리고 어쩔 수 없는 부분을 받아들이자. 혹 내가 또 예전처럼 행동하더라도 괜찮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다. 그러니 스스로를 위로해주자. 우울증의 대부분은 자기 비난에서 온다. 실수를 또 반복하지 않으려면 비난이 아닌 자비로운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자기 연민은 뇌에 옥시토신과 엔도르핀이 다량 분비된다. 이것은 돌봄 체계를 만든다. 스트레스는 그것을 인지하는 방식으로부터 괴로움의 정도를 결정한다. 그러니 자기 연민을 가지고 그 어떠한 기준도 평가도 욕심도 내려놓은 채 하루하루 걸어가자.
내 탓이 아니니 날 탓하지 말자. 사회는 기준을 만들어 내고 아름다움을 강요한다. 부합하지 못함에 쉽게 욕을 하고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지만 그들은 결코 내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내가 살아갈 앞날은 아직 한창이고, 그 세월 앞에 남들의 기준으로 괴로워할 이유 따윈 없다. 그저 나를 돌보면서 나가는 것. 나의 삶의 질과 활력을 위해, 더 무한한 에너지와 생명력을 느끼기 위해 순간순간 좋은 선택들에 충실하면 된다. 반복해도 괜찮으니 더 이상 자책하지 말고, 현재 모습을 부정하지도 말자. 남의 기준을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 나에게 좋은 것을 주고, 좋은 것을 먹이며, 건강하기 바라며 운동하는,
남에게 자비를 베풀듯이 나를 위해 나에게 연민을 베풀며
나를 돌보며 살아가는 내가 되길 바란다.
'어떤 사람에게는 체중 조절이라는 것이 유전자, 환경, 어쩌면 미생물 총까지도 복잡하게 상호작용해서 만들어지는 심각한 평생의 도전과제일 수 있다.'
-p118
참고: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 PART. '나의 식탐과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