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너무 믿지 말거라.”
그녀는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임신이라니, 모두가 깜짝 놀랄 일이었다. 사람으로 치면 족히 할머니라 불릴만한, 나이 미상의 검은 고양이. 시험소 마당에서 한동안 보이지 않아 죽은 게 아닐까 걱정했던 그녀는 오히려 생명을 잉태한 채 돌아왔다.
임신을 하기에는 몸상태가 좋지 않았다. 길냥이의 특성상 정확한 나이는 자신만이 알겠으나, 온 털이 먼지투성이인 채로 돌아다니는 것 하며, 이빨이 빠져 날름 삐져나온 혀, 그 사이로 질질 흐르는 침까지. 처음 만나는 사람도 그녀를 본다면 그녀가 할미라고 불리는 이유를 곧바로 납득하리라. 그런 그녀가 배가 불룩한 채 돌아온 것이다.
그녀를 몇 년째 봐온 시험소 식구들은 걱정이 앞섰다. 이전 임신에서 태어난 자식을 잘 키우지 못해 결국 한 마리만 살아남았다. 이제는 한 마리도 살지 못할 것이란, 아니 어쩌면 출산 자체도 힘겨울지 모른다는 걱정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밥을 챙겨주고, 걱정해주는 것뿐이었다.
시험소 식구들의 걱정을 뒤로한 채 어미는 순산했다. 새끼는 총 네 마리. 노산이어서일까, 다소 적은 새끼를 출산했다. 삐쩍 말라 힘도 없는 어미는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젖을 먹였다. 어미의 몸상태를 알턱 없는 작은 생명들은 너도나도 파고들어 젖을 먹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네 마리는 무리였던 모양이다. 결국 세 마리는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한 마리만이 남았다. 경쟁에서 살아남았다고 하기에 약간 민망한, 비실비실한 아들 한 마리였다.
새끼가 태어난 지 어언 3개월 정도가 지났다. 처음에 잘 걷지도 못하고 비틀비틀 이리저리 부딪히는 새끼를 보며 혹여나 질병을 안고 태어난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던 것 같다. 시험소 마당을 이리저리 누비며 사람들의 다리춤을 붙잡는 그를 보면 천방지축 그 자체다. 이제는 발톱도 세우고, 치아도 자라 깨물면 제법 아프다. 가끔 놀아주다 보면 손에 상처가 나기도 한다. 집고양이였다면 물지 못하도록 훈련시켰겠지만, 야생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그이기에 내 손 하나 희생해서 사냥 훈련을 도와준다. 어미는 우리를 믿으면서도 걱정이 되는 눈치다. 햇살에 졸음이 뚝뚝 떨어지는 오후에도 가느다란 눈을 뜨고 우리랑 놀고 있는 새끼를 바라본다. 그 눈빛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사람을 너무 믿지 말거라.”
이제는 새끼를 독립시키려는 눈치다. 먹이를 물고 와 사냥 훈련을 시키며 시험소 밖으로 조금씩 데려가는 어미를 보며 모성애가 느껴진다. 그녀의 울음이 늦깎이 아들을 독립시키려는 걱정과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한탄 섞인 아우성처럼 느껴지는 것은, 우리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