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까칠한말티즈 Sep 12. 2021

모성애

 “사람을 너무 믿지 말거라.”

그녀는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임신이라니, 모두가 깜짝 놀랄 일이었다. 사람으로 치면 족히 할머니라 불릴만한, 나이 미상의 검은 고양이. 시험소 마당에서 한동안 보이지 않아 죽은 게 아닐까 걱정했던 그녀는 오히려 생명을 잉태한 채 돌아왔다.


 임신을 하기에는 몸상태가 좋지 않았다. 길냥이의 특성상 정확한 나이는 자신만이 알겠으나, 온 털이 먼지투성이인 채로 돌아다니는 것 하며, 이빨이 빠져 날름 삐져나온 혀, 그 사이로 질질 흐르는 침까지. 처음 만나는 사람도 그녀를 본다면 그녀가 할미라고 불리는 이유를 곧바로 납득하리라. 그런 그녀가 배가 불룩한 채 돌아온 것이다.


 그녀를 몇 년째 봐온 시험소 식구들은 걱정이 앞섰다. 이전 임신에서 태어난 자식을 잘 키우지 못해 결국 한 마리만 살아남았다. 이제는 한 마리도 살지 못할 것이란, 아니 어쩌면 출산 자체도 힘겨울지 모른다는 걱정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밥을 챙겨주고, 걱정해주는 것뿐이었다.


 시험소 식구들의 걱정을 뒤로한 채 어미는 순산했다. 새끼는 총 네 마리. 노산이어서일까, 다소 적은 새끼를 출산했다. 삐쩍 말라 힘도 없는 어미는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젖을 먹였다. 어미의 몸상태를 알턱 없는 작은 생명들은 너도나도 파고들어 젖을 먹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네 마리는 무리였던 모양이다. 결국 세 마리는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한 마리만이 남았다. 경쟁에서 살아남았다고 하기에 약간 민망한, 비실비실한 아들 한 마리였다.


 새끼가 태어난 지 어언 3개월 정도가 지났다. 처음에 잘 걷지도 못하고 비틀비틀 이리저리 부딪히는 새끼를 보며 혹여나 질병을 안고 태어난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던 것 같다. 시험소 마당을 이리저리 누비며 사람들의 다리춤을 붙잡는 그를 보면 천방지축 그 자체다. 이제는 발톱도 세우고, 치아도 자라 깨물면 제법 아프다. 가끔 놀아주다 보면 손에 상처가 나기도 한다. 집고양이였다면 물지 못하도록 훈련시켰겠지만, 야생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그이기에 내 손 하나 희생해서 사냥 훈련을 도와준다. 어미는 우리를 믿으면서도 걱정이 되는 눈치다. 햇살에 졸음이 뚝뚝 떨어지는 오후에도 가느다란 눈을 뜨고 우리랑 놀고 있는 새끼를 바라본다. 그 눈빛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사람을 너무 믿지 말거라.”


 이제는 새끼를 독립시키려는 눈치다. 먹이를 물고 와 사냥 훈련을 시키며 시험소 밖으로 조금씩 데려가는 어미를 보며 모성애가 느껴진다. 그녀의 울음이 늦깎이 아들을 독립시키려는 걱정과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한탄 섞인 아우성처럼 느껴지는 것은, 우리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조작의 시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