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까칠한말티즈 Jul 03. 2022

계획적인 나와, 즉흥적인 너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기껏 세워놓은 데이트 일정을 당일에 모두 바꿔버리는 네가.


 ENFJ인 '나'와, ENFP인 너.


 고작 J와 P, 두 알파벳이 다를 뿐인데, 이렇게나 다를 수가 있을까.


 J인 '나'는 바다를 걷다 해변열차를 타자는 계획을 세웠고, P인 너는 더위에 지쳐 실내데이트 장소로 검색창을 가득 채웠다.


 서운했다. 명백히 그 감정은 '서운하다'라는 형용사로 표현할 수 있으리라. 서운함이 더위를 만나 짜증으로 번졌다. 고심하며 세운 '나'의 계획이 파도 앞의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광경은 먹구름의 서막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계획한 바를 고집했다. 함께하는 첫 여행에 분위기 좋은 와인이 빠질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나는 와인을 고집했지만, 그녀는 안주에 어울리는 소주를 원했다. 나름 우아하고 달달한 술을 좋아하는 그녀를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했으나, 완벽한 실수였다. 곱창에 와인이라니. 완벽한 실수였다.


 너는 내가 와인을 좋아해서 고집했다는 오해를 했고, '나'는 네가 와인같은 달달한 술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며 해명했으며, '나'는 네가 내 계획을 무너뜨린 게 서운하다고 표현했고, 너는 생각보다 날씨가 더워서 그랬다며 해명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가 다른 존재라는 것을 이해했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겪었던 아기 커플이 만난 지 2년이 지났다. 계획적인 너와, 즉흥적인 나. 어느새 우리는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즉흥적인 '너'를 위해 고집을 내려놓았고, 너는 계획적인 나를 위해 먼저 손을 내밀었다. 마치 서로의 성격이 바뀌기라도 한 듯이. 2년이 지나도록 매일 하는 전화에서 우리는 말한다.


 "우리 뭔가 바뀐 것 같아."


 '뭔가'. 정확히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는 여전히 계획적이고 '너'는 여전히 즉흥적이다. 하지만, 상대방을 더 잘 알게 되었기에, 그리고 더 아끼기에, 기꺼이 상대방의 성향에 맞춰주고 싶어 노력하는 것이다. ENFP가 ENFJ가 될수 없고, ENFJ가 ENFP로 변할 수 없기에 우리는 '뭔가' 달라진 커플이다. 서로를 사랑하고, 위하기 때문에.


 오늘 나는 와 함께 계획을 짜고, 함께 계획을 수정했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한 발 더 다가온다. 내가 아닌 너를 위해서. 너를 품은 나를 위해서.

매거진의 이전글 사람 냄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