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여행기

코타키나발루 여행기#4 코타키나발루 베스트 포토그래퍼

코타키나발루 넷째 날, 코콜힐 투어에서의 선명한 기억

by 까칠한말티즈

10시를 알리는 알람에 반쯤 감은 눈으로 어둠을 걷어냈다. 호텔에서 내려다본 아침 정경은 여전히 감탄을 자아냈다. 푸른 하늘과 느릿한 구름. 코타는 빨리 흘러가는 법이 없다. 아마 코타에서 가장 바쁜 사람들은 한국 여행객들일지도 모른다.


누가 한국인 아니랄까 봐 우리는 재빠르게 도시를 누볐다. 코타의 전부를 체험하고 싶었던 것이다. 일분일초도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우리가 10시에 느긋이 아침을 시작한 것은 코콜힐 투어에서 좋은 컨디션으로 사진을 많이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코콜힐 엘프는 코타키나발루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언덕으로, 석양이 매우 아름다워 인생 사진의 성지로도 불리는 곳이다.


투어는 16시에 호텔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우리는 현지 가이드인 라만을 통해 투어를 예약했는데, 이전 반딧불 투어에서 한국 여행사의 단점을 크게 느꼈기 때문이다. 16시를 약간 넘긴 시간, 라만이 호텔에 도착했다. 그는 익살스럽게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탑승과 동시에 차량을 가득 채운 K-pop이 울려 퍼졌다. 아무래도 한국인 여행객들을 많이 태우다 보니 K-pop에 일가견이 있는 듯했다.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반대쪽 손을 뻗어 리듬을 타며 “댄스파티”를 외치는 라만의 모습에 우리는 수줍은 여행객이 되어버렸다. 돌아오지 않는 리액션에 라만도 당황했는지 금세 댄스파티를 포기하고 운전에 집중했다.


이내 교통체증에 길이 가로막혔다. 코콜힐로 가는 길이 많이 막힐 시간대라며 라만은 샛길로 빠졌다. 현지 가이드의 장점을 어필하며 어깨가 한껏 올라간 그는 꼬불길을 빠른 속도로 질주했다. 동시에 그는 코콜힐을 즐기려면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조언을 늘어놓았다. 여유를 노래하며 난폭운전을 하는 모순적인 모습에 혹 가이드를 잘못 구한 것이 아닐까 걱정이 몰려왔다.


하지만 그 걱정은 코콜힐에 도착하자마자 사라졌다. 아직 해가 떨어지기 전인데도 라만은 부지런히 우리를 포토 스팟으로 이끌어 자리를 선점해 주었다. 대충 사진 몇 장 찍어주고 여행객들을 방치하는 다른 가이드들과 달리 그는 사진에 진심이었다. 정확한 구도에 포즈까지 정해주고는 수십 장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촬영을 마친 그의 셔츠는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코콜힐.jpg 코콜힐의 맑은 하늘.


라만은 그 어떤 가이드보다 빨랐다. 태양의 변화를 정확히 파악하여 효율적인 동선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다른 가이드들은 열어주지 않는 비밀의 문까지 개방하며 최선을 다해 사진을 찍어주었다. 자꾸 도망가는 가이드들을 찾아다니다 진을 빼던 다른 사람들은 결국 양해를 구하고 라만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코콜힐 2.jpg 석양이 지는 코타 스윙


해가 떨어지며 하늘의 색감과 채도가 실시간으로 변했다. 같은 하늘이 이렇게 다채로울 수 있다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라만도 근 몇 달간 가장 아름다운 석양이라며 흡족해했다.

코콜힐 5.jpg 파스텔톤으로 물든 코타의 하늘


태양이 모습을 감추고 파스텔톤의 하늘이 어둠에 스르륵 잠길 즈음, 체력이 다한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라만은 아쉬운 듯 차에 시동을 걸었다. 돌아가는 길, 라만은 결국 차를 세웠다. 우리 앞에 펼쳐진 코타의 전경은 노을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매일 보는 노을일 텐데도 뒷짐을 지고 사뭇 진지하게 바라보는 그의 눈은 천천히,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었다. 느림의 미학이랄까,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맡겼을 때 비로소 코타의 전부를 볼 수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빠른 발이 아니라, 자연의 흐름을 즐기는 여유였다.

코콜힐 6.jpg 태양이 모습을 감춘 후, 남겨진 코타의 전경



여행의 묘미는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색다른 기억을 일생의 한 페이지에 아로새기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다시 돌아온 일상에 치일 때, 그 추억을 꺼내보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얻을 수 있게 말이다. 다만, 우리의 기억은 쉬이 흐려지기에 더 선명하게, 오래 보관하고 싶은 마음에 우리는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그런 의미에서 라만을 만난 것은 우리에게 행운이었다. 조금은 과했던 코타키나발루 베스트 포토그래퍼. 그는 코타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어 바삐 뛰었다. 우리에게 더욱 선명한 추억을 선물하고자 등을 땀에 적셨다. 훗날 우리가 코타의 추억을 되돌아볼 때, 그의 빠진 앞니 세 개가 떠오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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