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짜기로 들어서자 전원주택들이 평화롭게 늘어서 있었다. 앞서 ‘독일마을’이라고 적힌 팻말이 없었다면 평범한 전원주택 단지로 생각했을 것이다. 독일식이라기엔 너무 친숙하고, 한국식이라기엔 미묘하게 낯선 집들의 모습에 눈길이 갔다. 대체 왜 당진에 독일마을이 있는 걸까? 팻말까지 설치한 정성에 비하면 관광지로 개발된 것 같지는 않았다.
그 내막을 함께 동행하던 분께서 설명해 주셨다.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웠던 60여 년 전, 독일에서 부족한 일자리를 채우고자 외국인 노동자를 채용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남성은 광산으로, 여성은 간호사로 파견되었다. 그 시절 독일로 떠났던 분들이 돌아와 한국에 정착하면서 독일마을이 만들어진 것이다.
농장은 독일마을에서도 깊숙이 위치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무릎에 든 시퍼런 멍에 파스를 도배하고는 절뚝이며 우리를 맞아주었다.
“젊은이들 미안. 소를 싣다가 채여서 소를 잡아주지는 못할 것 같아. 그래도 소가 순하니까 놀라지 않게 살살 접근하면 괜찮을 거야.”
놀랍게도 정말 소들이 순했다. 일반적으로 보정 장치가 없는 농장에서는 밧줄을 소의 뿔에 걸고, 농장의 펜스에 감아 보정을 한 후 채혈과 접종을 실시한다. 문제는 외부인이 다가가면 소들은 겁을 먹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바빠 보정이 쉽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농장의 소는 겁먹은 눈치이기는 했지만 순순히 뿔을 내어주었다.
70줄을 넘어선 할아버지께서는 소들이 순하다며 연신 감탄하는 우리에게 서글서글한 얼굴로 숨겨왔던 연륜을 늘어놓았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똑같아. 매일 밥 주면서 쓰다듬어주니까 사람한테 애정이 있는 거지. 내가 때리면서 키웠어봐,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발로 차고 난리도 아니었을 거야. 사람이든 동물이든 내가 어떻게 대하느냐가 중요한 거야.”
할아버지의 연설이 다소 길어졌음에도 전혀 거북하지 않았다. 나보다 40세 이상 많은 어르신의 말이 어찌 이처럼 교양 있고 아름답게 들릴 수 있을까!
말이라는 게 어 다르고 아 다른 법이다. 같은 요리라도 어떤 그릇에 담아내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듯, 어떤 문장에 담아내는지에 따라 같은 말도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우리가 흔히 잔소리라고 칭하는 꼰대의 언어는 닫힌 언어다. 의도는 좋을지라도 자신의 좁은 세계에 말을 가두어 상대방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독일마을 할아버지의 언어는 열려있었다. 우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넓은 세계를 개방해 준 셈이다.
혹 힘들었던 과거를 들춰내는 일일까 조심스러워 여쭤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유난히 깊고 넓은 할아버지의 마음에 우리는 생각했다. 외롭고 험난했던 타국에서의 사연이, 할아버지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었을까.
차를 돌려 떠나는 길, 농장의 정경을 한참 멍하니 바라보았다. 큰 나무가 드리운 그늘에 낡은 의자를 놓고 앉은 할아버지, 그 옆에 앉은 고양이의 눈에서 뚝뚝 떨어지는 졸음, 어느새 경계를 풀고 앉아 반추하는 소들의 게으름. 참으로 평화로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