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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말티즈 Oct 15. 2023

어디까지가 당연한 걸까

 테이블 위에 하나 둘 쌓여가던 소주병은 더 이상 둘 곳이 없었다. 우리는 소주병을 테이블 아래 내려놓으며 추가로 소주 두 병을 주문했다. 왠지 홀수보다 짝수가 좋아서 나는 항상 짝수로 소주를 시킨다. 양손에 한 병씩 이모님이 소주를 가져다주셨다. ‘감사합니다.’하고 인사하는 나에게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돈 내고 마시는 건데 뭘 감사해.”

 오늘따라 유난히 달았던 술에서 쓴 맛이 느껴졌다. 같은 술을 한 잔 더 걸쳤을 뿐인데, 그 사이 취기가 올라온 것일까. 괜히 이모님을 불러 안주를 추가로 시키고는 한번 더 감사를 표했다.


 어디까지가 당연한 걸까. 자본주의 사회이니까, 우리가 지불한 돈에 대한 서비스가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어느 순간부턴가 돈으로 물건도, 음식도, 서비스도 모두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돈을 지불하는 사람은 갑이 되고, 받는 사람은 을이 된다. 


 당연한 것들이 많아지면서 세상이 조금 퍽퍽해진 것 같다. 공중방역수의사를 지내며 가장 듣기 싫은 단어가 ‘세금’이다. 세금을 논하는 사람들은 보통 공무원이 자신이 내는 세금을 타먹고 살아가는 한량 정도로 생각하며, 업무 수행은 세금을 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맞추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업무 시간이 아닐 때라도, 불합리한 일이라도, 법을 어길지라도.


 그럼에도 나는 허구한 날 문서만 들여다보는 일보다는 사람과 마주하는 일이 좋다. 나를 힘들게 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나에게 감사를 표하는 고마운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나는 법에서 정한 대로 업무를 했을 뿐인데, 업무에 도움을 주어서 감사해야 할 쪽은 나인데도 그들은 나에게 감사하다며 전화를 끊는다. 


 모든 일이 그렇지 않을까. 당연함의 이유가 계약, 법, 돈 그 무엇이든 간에 일은 나의 몫이다. 하지만 타인이 나의 일에 당연함을 주장하는 것은 썩 유쾌하지는 않다. 오히려 감사를 받는 순간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형식적 일지 몰라도 감사는 사람 사이에 오가는 정이자 퍽퍽한 직장 생활에서 힘을 주는 마법의 단어가 아닐까 싶다.


 내 마음이 전해졌는지 이모님께서는 안주에 서비스를 얹어주셨다. 이제는 지인도 감사 인사를 전한다. 식당을 감도는 분위기가 보다 화사해지며 다시 술맛이 돈다. 취한탓인지 기분이 좋아진다. 


 가게를 나오며 또 나는 ‘감사합니다.’로 끝인사를 했다. ‘고마워요. 또 와요.’라고 답하는 이모님의 미소가 정겨워서 또 한 번 감사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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