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을 앞두고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얇은 가디건부터 두께가 있는 외투까지 각양각색의 옷차림으로 갈아입은 사람들의 머리 위로 붉은 낙엽이 하나 둘 떨어지는 모습에 가을이 왔구나, 새삼 깨닫는다. 밤하늘에 뜬 둥근달은 추석이 한 달이나 지났음을 알렸다. 예전엔 천천히 흐르던 시간이 요즘은 왜 이렇게 빠르게 느껴지는지, 흘러가는 시간을 따라가는 것도 쉽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한 술집의 창문으로 수능이 20일도 남지 않았다는 뉴스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문득 하루하루가 소중했던 고3의 기억이 떠오른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교로, 선후배 간의 돈독한 관계를 위한 ‘직속’ 개념이 있었다. 나는 입학 당시 24호를 배정받았고, 1학년 때 24호를 지내고 다른 호실로 옮겨간 선배들이 내 직속이 되는 것이다. 1학년 때의 호실이 중심이 되어 함께 야식도 먹고 축구도 하며 학교 생활을 도와줄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운이 좋게도 나는 직속 선배들을 잘 만나 학교 생활에 많은 도움을 받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종종 만나며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동창들을 만나면 이렇게 선후배 관계를 이어오는 호실은 우리밖에 없다며 부럽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그럴 때마다 내심 사회성 좋은 사람이 된 양 우쭐해졌다.
하지만 그 대는 우리 기수에서 끊겼다. 사건의 발단은 수능 100일 전. 전통적으로 수능 100일이 남았을 때 직속 후배들은 저마다 고3 선배들을 위한 이벤트를 준비했다. 수험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공연을 준비한다던지, 지칠 때 당을 보충할 수 있는 간식을 챙겨준다던지, 저마다의 방법으로 선배들을 응원해 주었다. 그런데 우리 직속 후배들의 이벤트는 오히려 우리 관계를 산산조각 내버렸다.
수능 공부에 지쳐있던 우리는 방문을 노크하는 후배들을 따라 기대를 안고 24호에 들어섰다. 우리 눈앞에는 가려진 채 번호를 달고 있는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저마다 번호를 골라 선물을 가져가는 방식으로 생각되었다.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가득 찬 우리는 번호를 뽑았고, 가림막을 제거하자 생각지도 못한 정체가 드러났다.
복불복이었다. 이 시절은 전 국민의 반이 1박 2일을 시청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1박 2일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때였다. 아마 후배들은 그 즐거움을 오마주 하여 우리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소금물을 골랐고, 한 친구는 간장을 골랐던 것 같다. 그나마 잘 고른 친구는 달달한 이온음료나 콜라를 마셨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정확하지 않다. 소금물을 한 모금 마신 나는 바로 화장실로 가서 헛구역질을 했기 때문이다. 수능을 앞둔 수험생의 소화기능은 정상이 아니었기에 다음날도 속이 좋지 않아 고생했다. 그날로 우리의 인연은 끝났다. TPO를 조금만 고려했더라면 오래 이어질 수 있었을 인연의 끈은 생각보다 쉽게 끊어졌다.
나의 즐거운 하루는 누군가에겐 힘든 하루였고, 웃자고 던진 농담이 누군가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기도 한다.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해서 생기는 사고다. 살아가는 긴 흐름 속에서 그런 실수를 하지 않을 수야 없겠지만, 한 번 엉켜버린 관계는 몸부림칠수록 더 엉키기 쉽고 어느 순간 끊어져버린다.
인간관계를 주제로 한 책을 읽다 보면 대부분 말하는 것보다 들어주는 일을 강조한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사람들은 누구나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에게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보고 듣는 일은 이해의 시작이다. 그 이해가 바탕에 깔렸을 때 서로의 언어는 연결되고 대화는 한층 깊어진다. 이해는 서로를 열어주고 맞닿게 하는 힘이 있다.
반면에 나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입을 꾹 닫게 된다. 자신의 입장만 구구절절 늘어놓으며 즐거워하는 사람 앞에서 나는 그저 벽이 된 기분이다. 티키타카는 온 데 간 데 없고 이리저리 날아드는 아무 말의 향연에 기가 쭉 빠진다.
그날 밤 우리가 바란 것은 지친 수험생활 속 소소한 위로와 응원이었다. 까르르 울려 퍼지던 웃음소리에 묻힌 우리의 굳은 표정을 후배들은 살피지 않았다. 우리가 기다렸던 사과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를 끝끝내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상대를 살피지 않으면 언제나 단절의 길로 잘못 들어설 수 있다는 사실 역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