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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말티즈 Nov 06. 2023

다락방

 카페인을 과하게 마신 탓에 느지막이 잠이 들었다. 뒤척이며 눈을 뜬 나는 휴대폰에 쓰인 숫자를 확인하고 다시 눈을 감는다. 고작 4시간도 온전히 잠들지 못했다는 계산에 이르기도 전에 평소와 다른 청각 자극에 마음이 풀린다.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선율에 금방 다시 단잠에 빠져든다.


 주말에 비가 내린 것은 오랜만이다. 언제 비가 왔는지 정확히 기억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가 반갑게 느껴진 것이 오랜만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일을 하는 중 만나는 비는 불청객이지만, 쉬는 날 내리는 비는 마치 오랜 친구처럼 반갑다. 빗소리를 들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내가 어렸을 적 살았던 집에는 다락방이 있었다. 어른은 몸을 쭉 펴기조차 어렵고 쿰쿰한 곰팡이 냄새가 나는 작은 공간이었지만 어린아이에겐 그만큼 아늑한 장소가 없었다. 백열전구의 엷은 빛에 의지해 책을 읽으며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사유의 공간을 향락했다. 다락방에 있을 때면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아이의 기억을, 부딪히는 빗소리에 기록해 마음속에 고이 접어두었다.


 이제는 다락방에 들어가기엔 몸도 마음도 너무 자라 버렸다. 다락방 대신 스타벅스에 앉아 쌉쌀한 커피 한 잔에 도란도란 나 자신과 이야기를 나눈다. 말랑말랑한 이야기만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일상에서 얻어온 스트레스를 해독할 수 있는 말랑말랑한 이야기.


 그러다 모처럼 빗소리에 마음이 젖어드는 날이면 마음속에 간직한 다락방으로 한달음에 달려간다. 아무 걱정 없이 누워 여유롭게 빗소리를 들으며 낮잠을 청하던 나태한 아이가 반긴다. 잠시 현실에서 떠나 행복한 기억을 그리면 그 어떤 명상 못지않은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지치고 우울해지기 쉬운 우리네의 일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마음 뉘일 다락방이 아닐까.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잠시 시간을 멈추고 나를 살필 수 있는 나만의 다락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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