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도련님
해인이 안내된 침실은 가구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는 작은 방이었다. 바닥에 깔린 두툼한 이불과 불을 켤 수 있는 작은 스탠드 하나가 전부였다. 하지만 허전하기보다는 따뜻한 포근함이 채워진 빈방이었다. 하얀 이불은 깨끗하고 보송보송했고 냄새 또한 그러했다. 그녀를 방으로 안내하던 정여사가 말했다.
“초등학교 동창이라면서요?”
“네?”
“그러던데요? 처음엔 못 알아봤는데, 대화하면서 기억이 났다고.”
금시초문이었다. 그녀는 그런 건방진 초등학교 동창을 둔 적이 없었다. 아마도 그가 해인을 머물게 할 나름의 명분을 만들어낸 듯했다. 뭐가 그리 좋은지 해인을 바라보는 부인의 표정은 유난히 반가운 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보자니 갑자기 아니라고 펄펄 뛰기도 난감했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나면 그다음엔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꼭 집엔 돌아가야 해요. 알았죠?”
이건 또 뭔가 싶어 해인은 영문 모를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부인은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듯 해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요. 그 나이대가 원래 질풍노도의 시기긴 해요. 하지만 그래도 집을 나오다니요. 딱 며칠만 있다가 머리 식히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알겠죠?”
졸지에 가출 소녀까지 되어버렸다. 위기에 처한 그를 구한 건 본인이건만 졸지에 길 잃은 어린 양이 되어버렸다. 집을 나온 건 맞지만, 질풍노도의 가출은 아니었다. 남들이 어떻게 보건 그녀로서는 뜻이 있는 출가였다. 하지만 이 또한 당장 뒤집기가 어려웠다.
여러모로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아주머니의 도련님이란 작자가 하는 말은 거짓말이고, 나는 동생을 찾기 위해 부모님과 학교 선생님을 속이고 수학여행 기간에 혼자 경주에 왔으며, 사례비를 받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이러고 있다. 이런 말은 해봤자 하등 좋을 것이 없는 이야기였다. 좀더 본격적인 추궁을 받는 것 외엔 결과적으로 달라질 것이 없으니.
작은 방에 홀로 남겨진 해인은 따뜻한 이불 위에 놓인 베개를 가만히 끌어안았다. 한숨을 길게 내쉬는 그 순간 미루어두었던 피로감이 그제야 조용히 내려앉고 있었다. 생각보다 긴 하루였다. 홀로 목적지가 다른 수학여행을 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학교 측에는 수학여행 기간에 가족 여행을 간다는 체험학습신청서를 미리 작성하여 보냈다. 옳지 못한 행동인지는 알았지만, 아버지의 휴대폰을 이용해 몰래 담임 선생님께 문자도 보내놓았다. 한편 부모님께는 강원도로 수학여행을 간다고 통보를 하고 오늘 아침, 평범한 수학여행을 가는 아이처럼 연기를 했다. 학교의 수학여행 알림장에 행사를 위하여 교복을 입고 간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기 때문에 교복까지 잘 챙겨입었다. 그렇게 힘들게 경주까지 도착했는데 바로 그 날벼락 같은 일이 생긴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이젠 처음 보는 낯선 이의 집에 묵게 되었다. 집을 나올때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이게 대체 다 무슨 일이람…….”
어이없는 표정으로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해인이 갑자기 두 눈을 번쩍 떴다.
‘잠깐…… 초등학교 동창? 그럼 나랑 동갑?’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동갑내기 주제에 어른인 척 자신을 추궁했던 건가?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먼저 그 건방짐을 추궁해야 했고, 이렇게 꼬인 상황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그런데 방이 어디랬더라? 거실과 몇 개의 방이 있는 1층은 조용했다. 장을 보러 나간 정여사가 자리를 비운 후였다. 그가 2층으로 올라가던 모습이 기억난 해인은 조심스레 위층으로 올라갔다. 위층에도 거실로 보이는 공간이 있었고, 하얀 문에 금속 손잡이가 보이는 방은 단 하나였다. 그 앞에서 선 해인이 가만히 호흡을 가다듬고 가볍게 노크를 했다. 안에서 아무런 답이 들리지 않자, 다시 노크하려던 참이었다.
“들어오세요.”
그 건방진 목소리가 들렸다. 해인이 조심스레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었다. 방 안의 조명은 어스름했지만 꽤 넓은 공간이라는 것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책상맡에 앉은 그 녀석은 컴퓨터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어서 자기 방에 들어온 사람이 해인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리진 못한 것 같았다. 그는 문득 자신을 응시하는 불친절한 시선을 느끼고는 모니터를 바라보던 눈길을 들어 올렸다. 해인을 알아본 그 녀석은 별로 놀란 기색 없이 말했다.
“너한테 들어오라고 한 건 아니었는데.”
“우리 할 얘기 있지 않아?”
“흠…… 이젠 반말이네?”
“초등학교 동창? 우리 동갑이야? 진짜야?”
“그게 뭐?”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물끄러미 해인을 바라보았다. 해인이 씩씩거리며 물었다.
“너, 내 나이는 어떻게 알았는데?”
“수학여행은 보통 고2 때 가는 거 아닌가.”
“그런데 왜 어른인 척 사람 가지고 놀아?”
“내가 거짓말했나? 나 그런 적 없는데?”
“야, 이 상황 어떻게 할 거야. 너 진짜 양심 같은 거 없냐?”
“양심? 너야말로 고마운 줄도 몰라?”
“대체 뭐가!”
해인이 버럭하자, 그가 몸을 일으키더니 천천히 그녀에게 걸어왔다. 그는 작은 소파의 팔걸이에 가볍게 걸터앉더니 말했다.
“너, 생각이란 게 없어?”
“내가 뭐? 너야말로 약속했던 사례비 꿀꺽했잖아.”
“그래, 너한테 사례비를 준다 치자. 그걸로 뭐 할래?”
“돈만 있었음, 지금 너네 집에 있지도 않아.”
“다른 곳을 찾아가시겠다?”
“당연하지!”
“지금 그 차림으로?”
‘내가 뭐!’ 하고 답하려던 해인은 문득 자신의 교복을 내려다보았다.
“어스름한 저녁에 교복 입고 혼자 찾아오는 여고생을 기꺼이 받아줄 숙소가 얼마나 될까? 정말 아무 의심도 사지 않고 혼자 묵을 수 있을 거 같아? 머릿속이 생각보다 꽃밭이네.”
해인은 단숨에 말이 막혔다. 속은 여전히 부글부글 끓었지만, 이를 받아칠 만한 논리적인 문장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넌 내가 얼마를 줄지 알고 그것만 철석같이 믿고 있는 거야? 난 정확한 액수를 약속한 적이 없는데. 너 진짜 초딩이냐?”
“죽을래!”
“워, 생각보다 와일드하네. 이게 본색인가? 재밌네.”
자기 분을 못 이겨 씩씩거리는 해인을 보던 그가 웃음 지었다.
“읽어버린 가방은 내일 터미널 분실 신고센터에 연락해봐. 누가 훔쳐 가지 않은 한 찾을 수 있을 거야.”
그의 차분한 한마디에 단단히 약이 올랐던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는지 해인이 물었다.
“너 대체 이러는 이유가 뭐야?”
“뭐가?”
그는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며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고. 네 말대로 내 머리가 꽃밭이든, 초딩이든, 솔직히 너로선 사례비 몇 푼 주고 내보내는 게 편한 거 아냐?”
“그렇긴 하지.”
“그런데 왜?”
“그냥…… 재밌을 거 같아서.”
“뭐?”
“사람 찾는다며. 재밌을 거 같아.”
“재… 재미? 너 진짜 그게 다야?”
“응.”
그가 아무 생각이 없는 듯한 텅 빈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해인은 이해할 수 없는 방정식을 대하는 표정이 되었다.
“그래, 그건 그렇다 쳐. 하지만 어떻게 같이 하겠다는 거야? 너는 학교 안 가? 너네도 설마 수학여행이야?”
“바보냐? 내일부터 주말이잖아.”
아, 그랬지. 황금 같은 주말을 끼고 정해진 수학여행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울부짖었던가. 그의 책상으로 몇 걸음 다가간 그녀가 다시 진지하게 물었다.
“그런데, 너 나 믿어? 만약에 내가 거짓말을 한 거라면? 내가 이상한 사람이면 어쩌려구?”
그는 문득 키보드에 올려놓았던 두 손을 떼더니 기지개라도 켜듯 두 팔을 뒤로 뻗었다. 스트레칭을 하던 그가 다시 두 손을 키보드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지금 내 걱정을 해주는 거야?”
“누가 누구를 걱정한대!”
해인이 발끈하자 그가 다시 가볍게 풋 웃었다. 이상한 도련님이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맑고 하얀 피부와 깨끗한 눈매가 유독 돋보이는 얼굴. 눈동자는 푸른 기운이 돈다고 느껴질 정도로 새까맣고, 눈의 흰자위는 첫눈처럼 깨끗하고 하얬다. 첫인상은 나이에 비해 성숙해 보였지만, 그 뒤에는 장난을 좋아하는 소년의 모습도 느껴졌다. 해인은 그렇게 자신에게 무엇을 펼쳐줄지 모르는 인연과의 접점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