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은 자유
말린 국화꽃이 한가득 들어 있는 베개를 베고, 깨끗한 냄새가 나는 하얀 이불을 덮고 있던 해인이 눈을 떴다. 벌써 아침이 밝아온 시각이었다. 피곤했던 탓일까, 낯선 이의 집에서 지나치게 푹 잔 느낌이었다.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난 해인은 햇병아리 같은 노란색 파자마 잠옷을 입고 있었다. 지난밤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온 정여사의 손에 들린 것은 단지 식재료만이 아니었다. 해인이 입을 잠옷과 갈아입을 속옷까지 사 들고 온 그녀였다. 해인은 당황스러웠지만 정여사의 얼굴은 왠지 싱글벙글해 보였다. 아들만 둘이라는 그녀는 딸에게 입힐 옷을 사는 재미에 신이 났다고 했다.
“서울에 돌아가면 꼭 갚아드릴게요.”
“됐어요. 아줌마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대신 앞으로 가출은 절대 안 됩니다!”
해인은 다시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녀 앞에 서 있는 본인은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질풍노도의 가출 소녀임이 틀림없었다. 외출 준비를 마치고 나올 무렵, 거실에서 두 사람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식사는요?”
“생각 없어요.”
“도련님도 참, 건강 챙겨야죠.”
“도련님이라고 안 하기로 했잖아요. 마마보이처럼 들리는 건 질색이라구요.”
“대체 누가 그런답디까? 양친이 안 계셔도 이렇게 씩씩하게 큰 도련님한테.”
“여사님, 누가 보면 내가 재벌 3세라도 되는 줄 알겠어요.”
“나한테 도련님은 언제나 도련님이에요. 나한텐 귀한 사람이니까.”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듯 그의 긴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조심스레 거실로 나온 해인을 본 정여사가 밝게 인사했다.
“좋은 아침. 잘 잤어요?”
“네, 오랜만에 정말 꿀잠 잤어요.”
“가출 소녀의 꿀잠이라…….”
그가 주방의 아일랜드 식탁에 비스듬히 기대선 채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는 사과를 한 알 들어 와삭와삭 씹어 먹기 시작했다. 이거라도 먹지 않으면 정여사에게 붙잡혀 억지로 아침 식사를 해야 할지도 몰랐다. 정여사의 시선은 이제 해인을 향하고 있었다.
“아침 먹을래요?”
“아뇨. 괜찮아요. 원래 아침을 잘 안 먹거든요.”
“세상에, 아침을 거르면…….”
정여사의 영양과 식사에 대한 기나긴 설교가 시작되려던 차, 그가 식탁에 놓인 사과 하나를 해인에게 휙 하고 던졌다. 입맛이 없을 때 아침 식사를 피하는 방법이었다. 느닷없이 허공 높이 떠오른 사과 한 알을 그녀가 허둥지둥 받아내자, 그가 재킷을 들며 출입문을 가리켰다.
대릉원은 동아의 경주 수학여행 일정의 첫 번째 코스였다. 아마도 신라시대의 왕이나 이름 모를 귀족들이 묻혀 있는 공동묘지쯤 되는 듯했다. 하지만 그곳은 묘라는 느낌보다는 활발한 분위기를 띤 관광지가 되어 있었다. 왕릉이라고 하면 으레 떠올리게 되는 무거운 위엄은 많이 수그러든 듯했다.
작은 동산처럼 보이는 왕릉 위로 감히 성큼성큼 걸어 다니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다름 아닌 벌초꾼들이었다. ‘위이이이잉’ 하는 시끄러운 풀 깎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었다. 반듯하고 둥근 모양의 왕릉은 관광객들을 위해 이렇듯 시시때때로 몸단장하는 모양이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해인이 문득 말문을 열었다.
“생각해보니 우리 서로 이름도 모르잖아? 나는 이해인. 너는?”
“공선재.”
“근데 너 진짜 나랑 같이 다닐 거야? 나야 경주 길도 잘 모르고 누군가 동행해주면 좋긴 한데…… 솔직히 말해봐. 너, 나한테 뭐 바라는 거 있지.”
“속고만 살았냐? 걱정 마.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니까.”
그의 알 수 없는 대답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해인은 교복의 안주머니에서 두 번 접힌 A4 용지를 꺼냈다. 당시 동아의 학교에서 갔던 수학여행 일정이 인쇄된 학교의 알림장이었다.
“솔직히 대단한 계획은 없어. 그냥 그 애가 돌아봤던 곳을 그대로 따라가 보려고 생각했어.”
“이거 실종된 사람 찾는 플랜 맞냐?”
선재는 기가 막히다는 듯 혀를 찼다. 해인이 하도 당당하게 대릉원으로 가야 한다고 해서 무슨 계획이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이거였다.
“나도 알아. 하지만 이미 어른들이 여기저기 다 수색했을 거고,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지 모르겠단 말야. 그래서 그냥 이대로 따라가 보려고. 걔가 어딜 갔었는지, 뭘 보고 있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진짜 대단한 계책이네. 이 여정의 끝을 한번 꼭 보고 싶어진달까.”
“놀리지 마. 싫으면 나 혼자 가도 되거든?”
“아, 그러셔?”
그때 해인은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듯, 한 고분의 입구를 가리켰다. 천마총이었다. 언젠가 교과서에서 본 잊을 수 없는 ‘천마도’라는 그림 한 장이 있었다. 그녀는 아득한 기억에 이끌리듯 대릉원 한쪽에 있는 천마총의 입구로 향했고 선재는 말없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천마총의 내부는 실로 놀라웠다. 그것은 생각지 못한 의미로 놀라운 것이었다. 대릉원 근처의 카페 매장에서 터져 나오는 시끄러운 케이팝 음악이 천마총의 내부까지 왕왕하게 울리고 있을 줄이야. 어색하게 짝이 없는 현대와 과거의 앙상블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해인이 뜨악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선재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예전 같지 않긴 하지. 카페 거리가 바로 옆에 생겼으니까. 경주에선 이젠 황리단길이 웬만한 유적지보다 더 붐비거든.”
다행히 무덤의 안쪽 깊숙이 들어가자 시끄럽게 울리던 음악 소리가 희미해졌다. 무덤 속에서 관이 발굴되던 현장을 재현한 전시와 천마총에서 나온 온갖 유물들이 복제품의 형태로 진열되어 있었다. 이윽고 두 사람이 천마도 앞에 섰을 때, 초등학생들에게 천마도를 설명하는 한 교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술이 발전해서 적외선 촬영으로 천마도의 밑그림을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게 됐어요. 그런데 거기에서 예전에는 발견할 수 없었던 형상이 나왔어요. 말머리 위로 불길처럼 솟아 있는 뿔 모양이 나왔던 거예요. 이를 두고 천마도는 말이 아니라 ‘기린’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기린요? 동물원에서 보는 그 기린이요?”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 꼬마 학생이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하, 그럴 리가. 선생님이 여기서 말하는 기린은 상상 속의 동물이에요. 용의 머리를 가졌지만 몸은 사슴처럼 생긴 상서로운 신수이지요.”
교사의 한마디에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들이 천마도 앞을 떠나고, 가까이 다가가 그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해인이 말했다.
“기린? 내 눈엔 차라리 유니콘 같은데? 이런 거 보면 신기하지 않아? 눈에 보이지도 않는 걸 어떻게 그려냈을까?”
“정말 보지 않고 그렸다고 생각해?”
“그럼 이걸 진짜 보고 그렸다고?”
“누군가는 봤을지도 모르지.”
“뭐야, 진짜 그렇게 믿는 건 어린애들이나 그런 줄 알았는데.”
“어디까지나 상상은 자유니까.”
천마도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선재가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다음 목적지는 어딘데?”
대릉원에서 첨성대까지는 멀지 않았다. 버스로도 갈 수 있었지만 두 사람은 그냥 천천히 걷기로 했다. 날은 맑고 햇살은 따스했다. 걷기 딱 좋은 날씨였다. 가는 길에 본 황리단길은 그의 말대로 적지 않은 인파로 붐비고 있었다. 새로 오픈한 듯 보이는 세련된 식당과 카페가 즐비하게 거리를 채우고 있었다. 해인은 그 모습이 신기해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상상했던 고도(古都) 경주의 모습이 아닌 것 같아 낯설기도 했다.
곧 두 사람의 눈앞엔 높고 새파란 창공을 지고 서 있는 첨성대가 보였다. 중학교 시절 수학여행 이후 처음이었다. 그것은 여전히 그림 같은 모습이었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직접 눈으로 본 첨성대는 생각보다 너무나 아담하게 보였다는 것이다. 중학생 때보다 키가 한 뼘 자란 것도 아닌데 왜 저렇게 보이는 걸까? 지켜주고 싶을 정도로 작은 여인처럼 보였다. 왜 애초에 이것을 거대 건축물로 기억하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돌이 하나하나 쌓여 올라간 첨성대는 살짝 기울어져 있는 모습이었는데 현대 건축물의 완벽함과는 거리가 먼 친근한 인간미가 느껴졌다.
“밤에 와서 보면 더 예쁘다며? 여러 가지 조명으로 비춰서 사람들이 야경 보러 온다던데.”
“낮에 보는 게 나아.”
“왜?”
“그냥…… 내 눈엔 이게 더 진짜 같아서.”
선재는 해가 중천에 떠 있는 눈부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태양만이 이 축조물을 제대로 비출 수 있는 진짜 조명으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선덕여왕 대에 축조된 첨성대는 기나긴 세월 동안 온갖 변덕스러운 날씨와 세상의 격변을 견뎌냈다. 해인은 조신한 여인 같은 이 작은 성체(城體)가 무려 천 년을 훨씬 웃도는 세월을 홀로 이겨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론 오묘한 숙연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시간 속에서 심히 훼손되고 사라진 수많은 유물과 유적지 중 첨성대는 복원이나 재건 한번 없는 원형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이름으로만 들어본 선덕여왕도 언젠가 이 앞에 서 있었을 거라 생각하면 자신이 살아 숨 쉬는 타임 포탈에 앞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한동안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해인이 입을 열었다.
“근데 넌 경주에 언제부터 살았어?”
“한 3년 전부터.”
“그것밖에 안 됐어?”
“기억나는 게…… 3년 전부터.”
“기억?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야. 경주에서 태어났다고는 하는데, 어린 시절 기억이 안 나.”
“근데 너 왜 아주머니한테 나 초등학생 동창이라고 했어? 기억 없다며.”
“그래서 정여사님이 널 무지하게 반기셨잖아.”
이것도 계획이었다는 건가? 갑자기 나타난 그의 초등학생 동창을 유독 반기던 정여사의 얼굴이 이제야 이해가 갔다. 그는 순간 무엇을 발견했는지 손을 들어 눈앞의 첨성대를 가리켰다. 첨성대를 이루고 있는 돌 틈 사이로 작은 참새가 들락날락하는 것이 보였다.
“새들한텐 저만한 집이 없지.”
“와, 진짜네.”
경주의 새들에겐 무언가 조금 더 귀여운 모습이 있었다. 서울의 새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는데,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몸집이 더 작고 날렵해 보였다. 경주에 사는 이 새들은 문화유적지를 호텔로 쓰는 호사를 누리는 모양이었다. 인간들은 울타리 때문에 적정거리 이상 다가갈 수도 없건만 새들은 이미 그 안에 집도 짓고 오순도순 사는 모양이었다. 첨성대는 기꺼이 그들의 입주를 받아들이고 공존하기로 마음먹은 듯했다. 아마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새’입자들이 다녀갔을 듯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