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멋대로 아트 에세이
여지껏 그린 자화상 개수를 세어보니 대략 15점 정도가 된다. 지금까지의 전체 작품 수에 약 삼분의 일 정도가 자화상이 아닐까 싶다. 내 인생에서 자화상의 역사는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된다. 나의 첫 자화상은 한국에서 예고를 다니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이후 캐나다에서 미술 공부를 시작한 이후로 자화상은 본격적인 단골 과제가 되었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자화상을 그리게 될지는 몰랐다. 그때만 해도 디지털카메라 같은 것이 없던 시절이기에 자화상을 그린다 함은 거울 속의 내 모습을 직접 보며 그리는 것을 의미했다. 지금에 비하면 모든 것이 아날로그적인 시대였고 빠르게 뚝딱 해치우는 일보다는 벽돌 올리듯 하나하나 만들어나가는 것이 일반적인 시대였다. 불과 20년 전인데, 내게는 엊그제 같건만 너무나도 다른 세상이 아닌가.
보통 사람들이 거울을 장시간 들여다봐야 하는 일은 대게 화장을 하거나 머리를 만질 때다. 그것도 사실 길어봐야 30~40분 정도이며 있는 그대로의 나의 얼굴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라기보다 그 위에 무언가를 덧바르고 칠하기 위한 과정이다. 반면 자화상을 그리는 과정은 적어도 3~4시간 거울 속의 나를 천천히 뜯어보며 그 안의 ‘변화’를 관찰하며 깊은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대면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다.
그 시절, 화실에서 '자화상'은 매우 중요한 과제였다. 선생님께서는 이를 학생들의 대학 입시 포트폴리오에 들어가는 중요한 부분으로 정해 놓으셨다. 포트폴리오라는 것은 결국 그 아티스트가 누구인가를 보여주는 장이라고 볼 수 있다. 한 사람이 가진 그림 재주를 넘어서 '그 사람'이 어떤 색깔을 가진 어떤 사람인지 알게 하도록 만드는 것이 미대 포트폴리오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에게 자화상 작품을 위해 많은 습작을 유도하셨다. 앞 장에서도 언급했듯이 선생님의 지도 방법은 이렇듯 대부분 점진적인 방법이었다. 한 번에 포트폴리오에 포함될 만한 강렬하고 완성감 있는 작품을 완성시키려는 것보다 한 단계 한 단계, 단계별로 접근을 하며 학생들에게 그 주제를 충분히 인지시키고 그것을 연구할 만한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대부분 첫 단계는 연필 드로잉으로 연습작을 시작한다. 물론 연습작이라고 해서 그냥 연습용이 아니다. 작품성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바로 포트폴리오에 들어갈 수 있는 그림이 된다. 당시 나로서는 별 고민 없이 슥슥 그렸던 자화상이 하나 있었는데 숙제를 해간 날 선생님께서 크게 칭찬을 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완성하는데 2시간 30분 정도가 걸렸던 간단한 드로잉이 칭찬을 받으니 신기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림이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워서 좋게 봐주셨던 게 아닌가 싶다.
다음 단계는 오일 파스텔이나 아크릴을 이용해서 그리는데 여기서 꽤나 흥미로운 아티스트 스터디 (Artist Study)가 들어가게 된다. 우리는 자화상의 대가인 빈센트 반고흐의 그림을 그대로 모작하며 그의 터치와 테크닉을 공부한 뒤, 그와 같은 테크닉으로 자신만의 자화상을 완성 해오라는 과제를 받았다.
빈센트 반고흐의 강렬한 색깔과 촘촘한 붓터치를 따라 그리는 것은 인내가 필요한 과정이지만 그전까지 이렇게 다채롭고 강렬한 색의 향연을 마음껏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꽤나 흥미로운 과정이기도 했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은 빈센트가 단순히 강렬한 예술혼을 통해 이러한 색깔을 구현한 것이 아니라 알코올 중독의 증상으로 인해 보통 사람보다 색을 다르게 봤다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를 중독시켰던 파리의 유명한 술, 압생트는 과다복용 시에 황시증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다. 황시증은 대상이 샛노랗게 보이는 증상이다. 그의 그림에서 유독 노란색이 주요한 색으로 쓰이는 데에는 그런 사연이 있더라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몸과 정신을 극단까지 밀어붙이며 그림을 그려댔다. 그에게는 고통이었을지도 모르는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예술의 영역을 보고 있다. 딱딱한 이성의 문 저 너머에 있는 어떤 세계를. 선과 악, 흑과 백의 논리를 가볍게 넘어가버리는 다채롭고 깊은 세계를 말이다.
(반고흐의 황시증에 대한 이야기는 조원재 저자님의 '방구석 미술관'이라는 책을 참조했다.)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달라지는 자신의 모습을 직접 거울을 들여다보며 그린다는 것은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나이가 드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최근까지도 자화상을 그릴 때 주름살을 두드러지게 그린다던가 하지 못했다. 그리면서 연필과 지우개로 나만의 포토샵이 들어가는 것이랄까?
그간 그렸던 자화상을 들여다보며 생각한 것은 '자유'에 관한 것이었다. 내 삶을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사는 것이 자유인데, 그 자유는 생각보다 많이 비싼 것이었다. 어른이 되면 절로 얻어지는 그런 게 아니었다. 세상에 나와서 나만의 공간을 갖고 밥을 먹고살려면 타협해야 하는 것도, 인내해야 하는 것도 많았다. 사회는, 그리고 관계는 끊임없이 나를 '길들여 가는 과정'이었다. 세상의 방식과 틀에 맞도록. 그것이 긍정적인 것이던, 부정적인 것이던 그것은 결국 '길들인다'는 과정이다. 잘되면 거친 원석이 보석이 되는 과정이기도 하고, 잘못되면 강력한 제초제에 의해 풀이 죽듯이 그렇게 죽어가는 과정이 될 수도 있다. 어쨌든 그 안에서 내 목소리를 유지한다는 것, 내 생각대로 산다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자유는 투쟁의 결과이구나...'라는 생각이 든 적도 많다.
나는 살아나가기 위해서 언젠가부터 타협을 선택했다. 일단 좋다, 싫다, 내 의견을 분명히 표현하는 것이 어려웠다. 체력과 정신력이 모두 약한 탓인지 내 의견을 끝까지 밀어붙이고 버틸 수 있는 끈기와 힘이 없었다. 겁도 많았다. 무엇보다 사람을 잃는 것이 두려워졌다. 내 멋대로 뭔가를 결정하고 실행할 경우 그것을 싫어할 사람들, 혹은 더 나아가서 나에게 등 돌리게 될 사람에 대한 생각을 하면 그것이 견디기 힘들었다. 그리고 내가 내리는 결정, 내가 가진 안목에 대한 믿음도 부족했다. 그냥 자신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나도 어렸을 때는 나름의 뚝심이 있었다. 가족들과 외식을 할 때, 가족들이 모두 이구동성으로 한식집에 가자고 할 때 나는 돈가스를 먹을 수 있는 경양식 레스토랑에 가길 원했다. 당시 난 초등학생이었고 웬만하면 그냥 다들 가자는 대로 따라갈 법하건만, 나는 혼자서 기어이 레스토랑에 갔다. 상상해보라. 조용하고 우아한 레스토랑에서 혼자 설레는 마음으로 눈을 빛내며 돈가스를 기다리는 꼬마의 모습을. 후추가 살짝 뿌려진 크림수프는 얼마나 부드럽던지... 당시만 해도 혼밥, 혼술이라는 콘셉트가 없던 시절이다. 사람이 두려움이라는 게 없으면 눈치를 안 보게 되는 것 같다. 당시의 내가 그랬다. 겁이 없었다. 다시 그 시절의 철부지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 순수한 용기 그리고 떳떳한 당돌함은 내 안 어딘가에 그대로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상처와 두려움으로 얼룩진 가슴이 있더라도 그것이 어디 안 가고 잘 숨어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사랑, 믿음 그리고 나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기적으로 제멋대로 살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것은 내 가슴속의 비전과 꿈을 존중하겠다는 것, 가장 깊은 내면의 울림을 잘 들어보겠다는 뜻이다. 때론 그것이 주변과 다른 방향이더라도 나는 내 길을 가겠다는 의미다. 정녕 그런 용기가 지금 나에게 있을까?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필요한 것임을 이젠 안다. 아티스트로 살아가기 위해, 그리고 조금 더 나답게 살기 위해서.
한국은 BTS와 같은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스타를 발굴한 문화 강국이 되었지만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살아가는 나라 이기도하다. 생을 포기한다는 것은 '나'를 놔버리는 것이다.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마음,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기어이 붙잡는 마음, 강렬한 생의 의지가 그만큼 허해졌다는 뜻일 것이다.
그 허함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생의 의지는 삶에 대한 진실한 사랑에서부터 출발한다. 우린 그것을 다시 정미롭게 타오르게 할 수 있을까? 사람은 매일 보고 듣는 것에 의해 의식과 무의식의 흐름을 구성하고 또 그것으로 삶을 구성하는데, 지금 한국의 대중문화가 무엇을, 어떤 메시지를 대중에게 심어주고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때가 된 것 같다. 또한 수요가 있어서 공급이 따르듯 우리 스스로가 무엇을 즐기고 보려고 했는지도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 각자가 자성할 수 있다면, 문화의 정화는 절로 따라온다고 믿는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이 시대야 말로 우리 모두 각자의 자화상을 그려 봐야 할 때인지도 모르겠다. 거울 속 자신을 깊게 들여다봐야 하는 순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