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첫 개인전 First Solo Exhibition 16

내 멋대로 아트 에세이

by 아난


2017년 6월,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고교시절부터 그림을 시작했으니 거의 20년 만에 열린 첫 개인 전시회였다. 그전까지는 그룹전이라는 형태로 타작가들과 함께 했던 소소한 전시가 전부였다. 내 이름을 걸고 내 작품만으로 전시장을 가득 채우는 그런 전시회는 처음이었던 셈이다. 이를 위해 나는 약 10점 정도의 그림을 직접 캐나다에서 가져왔다. 작지 않은 크기의 그림들을 하나하나 포장하고 그것을 다시 한 묶음으로 포장하고 또 포장했다. 그렇게 낑낑거리며 공항까지 가져갔을 때 검색대에서 짐을 확인해 봐야겠다는 공항 직원의 상큼한 한마디! 결국 애써 매듭지었던 포장을 칼로 찢고 열어야만 했고 또다시 포장해야만 하는 지난한 과정이 있었다. 전시회 일정과 장소가 정해진 상태에서 한국으로 향한 것은 아니었다. ‘올해엔 꼭 개인전을 열어 봐야지’ 하는 무식한 무대포 마인드가 있었을 뿐이다.


전시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인사동, 안국동과 같이 미술의 거리로 유명한 곳을 뒤져보기도 하고 가로수길 근처의 갤러리도 돌아보았다. 하지만 대부분 공간의 대여료가 너무 높거나 아니면 갤러리에 이미 소속된 작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전시하는 등의 한계가 있었다. ‘역시 돈을 많이 들여야만 전시를 할 수 있는 건가?’ 하고 약간 체념하고 있을 때, 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찾을 수 있었다. 평소에 도서관을 자주 다니던 나는 우연히 그 근처의 구민문화회관을 발견하게 되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이끌리듯 들어가 보니, 미술 전시회장뿐만 아니라 연극과 음악을 공연할 수 있는 공연장까지 구비된 공공기관이었다. 전시공간의 대여료도 내가 충분히 준비할 수 있을 만큼의 알맞은 가격이었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전시를 하는 자격조건도 까다롭지 않았고 비용을 내고 전시 기간만 정하면 되는 일이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넓은 전시 공간이었다. 이 장소를 내 그림만으로 온전히 채울 수 있다니... 상상만 해도 설레는 일이었다.


당시 나는 한국에 들어온 이후 홍대 근처의 공동 작업실을 빌려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전시 일정이 잡히기 이전까지는 여유롭게 슬렁슬렁 그리다가 전시일이 확정되자 발등에 불 떨어진 듯 정신 없어지기 시작했다. 캐나다에서 가져온 그림뿐만 아니라 새로 만든 작품도 전시하고 싶었고, 이미 완성된 작품이라도 다시 손을 봐야 하는 그림들이 있었기에 매일 오전 10시경에 화실로 출근해서 밤 9시가 너머 녹초가 되어 퇴근할 때가 많았다.


그림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전시회 리플릿을 만들어 인쇄를 맡겨야 했고 종이로 된 작품 같은 경우엔 액자를 맞추러 다녀야 했다. 전시회를 코 앞에 며칠 남겨 두었을 땐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렇게 난 누가 시키지도 않은 전시회를 준비하며 사서 고생하고 있었다.


전시회는 나의 첫 개인전이라는 의미도 있었지만, 사실 가족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그림을 그린답시고 바쁜 척하고 살았을 뿐이지 뭔가를 정리해서 그간의 실적을 보여주고 나라는 사람을 설명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가족이란 게 그렇다. 가까워서 많이 알 것 같지만 사실 서로 잘 모른다. 특히 어머니께 많이 죄송했는데 늘 받기만 하고 해 드린 것이 없었기에 이것이 나만의 방법으로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길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전시회를 연다고 하자 어머니답게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니셨다. 그건 어머니 방식으로 나를 돕는 것이었고 덕분에 꽤 많은 친척 어르신들이 내 전시회에 방문하셔서 송구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렇게 가족은 물론 지인들과 홍대 작업실을 함께 쓰며 친해졌던 친구들도 기꺼이 와주었다.


BRUNCH COVER 28.jpg 널찍한 전시장에 내 그림만 걸려 있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BRUNCH COVER 27.jpg 기존 페인팅뿐만 아니라 나의 일러스트가 들어간 책도 함께 전시했다. 관람자 한 분께서 책 한 권을 구매하시기도 했다.


Journey into the Heart, oil pastel on paper









Journey into the Heart



"모든 사람의 가슴속 깊은 곳에는 순수의 빛이 존재한다. 하지만 모두가 그것을 잊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내면의 아이는 많은 사랑과 격려가

필요하다. 그 아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 아이는 우리를 피안의 세계로 인도한다."



*전시회 포스터를 만들 때 썼던 대표 이미지.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기 위해 전시회에 놓아두었던 방명록을 다시 열어보니 내가 전혀 모르는 방문객의 이름과 메모가 눈에 띈다. 누군가 이렇듯 알게 모르게 내 인생의 한 장면에 방문하고 흔적을 남기고 간다는 것이 신비롭게 느껴진다. 대부분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상 깊은 그림입니다.’ 등등의 메모가 남겨 있는데, 그런 메모를 읽다 보면 나도 할 일이 있어서 세상에 태어난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새삼 든다. 정작 나 자신은 그것을 깜박깜박 잊을 때가 많다. 그래서 사람들이 한 작가의 그림을 보아주고 남겨주는 격려의 한마디는 작가에게 신념을 갖고 작업할 수 있는 큰 힘이 되어 준다.


내 평생 그렇게 많은 축하 화환을 받아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물론 대부분 어머니의 지인들께서 보내주신 것이다. 난 한국에 아는 사람이 많은 편이 아니다. 캐나다에서도 그랬다. 넓은 인맥은 없다. 그냥 그렇게 살아왔다. 하지만 첫 번째 전시회에서는 내가 알던 모르던 많은 분들께서 방문해주시고 축하해주셨다. 가장 기억에 남는 방문객은 중학교 때 그림을 지도해주셨던 미술 선생님의 방문이었다. 지방에서 서울까지 몸소 올라오신 선생님께선 큰 격려와 축하를 아끼지 않으셨고 나는 무척 감격했다. 환갑잔치까지는 아니지만 내 인생에 빨간 점하나를 찍는 듯한 중요한 날을 맞이하는 그 느낌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작가에게 전시회란 그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내가 받은 영감을 대중과 함께 나누고 축하의 말이 오가고 오랫동안 못 만났던 사랑하는 사람들과 재회하는 시간이다. 불로초를 먹지 않더라도 만약 삶에 있어서 이런 날이 지속된다면 그 어떤 병도 없을 것만 같다. 아름다운 축제의 순간 전시회, 그래서 고생스럽더라도, 수고스럽더라도,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작가들은 전시회를 연다.


앞으로 생을 마치는 날까지 나는 몇 번의 전시회를 더 하게 될까? 잘은 모르지만 부디 내가 게을러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때 썼던 전시회 방명록의 뒷장은 아직도 두툼히 남아 있다. 이것이 빈칸으로 남아있지 않고 계속 채워졌으면 좋겠다. 나의 일상을 이러한 축제와 새로운 만남으로 가득 채우고 싶어 진다.

keyword
이전 15화자화상 Self Portrait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