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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 터치 Final Touch 17.

내 멋대로 아트 에세이

by 아난


그림을 그리다 보면 붓질을 멈춰야 하는 순간이 온다. 그림이 완성되어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숙고하고 결정해야 하는 그런 순간이다. 이 지점에서 그냥 하던 대로 ‘부지런히, 열심히’만 그리면 전에 그렸던 부분까지 와장창 망치는 대참사가 온다. 왠지 내 인생에도 그런 시점이 온 것 같다. 잠깐 멈추고 숨을 고르며 전체적인 흐름을 바라봐야 하는 시점이랄까. 나는 나 자신을 그림을 업으로 삼은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지만 사실 그림 외에 다른 일을 할 때도 많았다. 전적으로 그림에만 집중하며 산 적은 거의 없었다. 그림을 좋아하지만 정말 이 일을 계속해도 되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제적인 수입도 한정적이고 내가 그림을 정말 잘 그리는 사람인지에 대한 의문도 있었다. 더군다나 사진과 영상이 이렇듯 끝을 모르고 발전하는 시대에 과연 그림의 역할이 무엇인지, 그 자리가 여전히 공고한 지에 대한 의문도 일었다.


하지만 어찌 되었건 난 여전히 그리고 있다. 열정적인 전업작가처럼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일매일은 아니더라도 내 삶에서 '그린다'는 일은 지속되고 있다. 왜 일까? 솔직히 정확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답이 너무 여러 가지라서 그렇다. 어려서부터 한 몸에 밴 일이라서 그럴 수도 있고 단순히 다른 재주가 없어서일 수도 있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작품이 하나 완성되면 느끼는 보람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림 그릴 때 느끼는, 붓끝에 온 정신이 집중된 그 순간에 느끼는 고요한 평화 때문일 수도 있고 처음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어떤 이미지가 폭풍 같은 중간과정을 거쳐 어느새 그 모습을 드러낼 때 느끼는 신비로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만이 나와 다른 사람을 구별시켜주는 무엇이라는 믿음 때문일 수도 있다. 잘 그리던 못 그리던 각각의 작가는 자신만의 분위기와 특성이 있다. 스스로는 감지하기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그림을 통해서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평범했던 나는 그렇게 해서라도 나를 알고 싶고 체험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존재감을 확보하고 그것을 세상에 드러내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수도 있다. 이쯤대면 확실해지는 것은 이 돈도 안 되는 그림 그리기가 내게 제공하는 것이 꽤나 많았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림이 돈이 되는 작가들도 많다!) 그것이 재화처럼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도 말이다. 그리고 난 그림이 선사하는 이 비물질적인 선물을 참 좋아하는 녀석이라는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림 한 점을 그릴 때 붓을 화폭에 올리고 있는 시간보다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았다고 알려진다. 작업실 한켠에 멀치감치 서서 몇 시간이고 그림만 멍하니 바라보다가 돌아가는 그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그가 행위를 멈추고 바라보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보았던 그 비전은 무엇이었을까?


Francesco Melzi 가 그린 다빈치의 초상화

'바라보기', '응시'와 같은 깊은 사색과 명상의 과정도 그림이 선사하는 선물 중 하나다. 이는 참 기분 좋은 몽상의 과정인데 인간의 정신이 가장 고차원적으로 활동하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마음속에 비전(Vision)을 떠올리는 것.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아인슈타인이 경험했던 그것들이다.


학창 시절 때부터 궁금했다. 대가(Master)의 마음속엔 무엇이 들어 있을까?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꿈을 꿀까? 대중이라는 무리와 어떻게 저런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을까? 그들의 세계는 어떻게 저렇게 폭넓었을까? 나도 저런 깊이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하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시대보다 앞서는 통찰력을 가진 대가들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한국에서는 한 때 소. 확. 행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그것은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의 줄임말이다. 그만큼 행복해지기 어려워졌다는 의미일까? 큰 꿈을 꾸기 어려운 세상이 된 것은 확실하다. 초등학생 아이들의 꿈이 공무원인 세상이다. 모든 게 많이 소소해진 느낌이다. 아님 아이들이 너무 어른스러워진 걸까?




나도 살아가면서 먹고사는 문제와 현실적 대책이 있는 삶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던 적이 많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무조건 큰 꿈을 꾸라는 둥 그런 무책임한 소리는 할 자신이 없다. 다만 소심하게라도 '소확행'이 전부가 아니야...라고 말은 하고 싶다. 우리는 '맛집 투어'를 하고 여행하며 멋진 사진을 찍으면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그렇게 소소하기만 한 존재는 아니라고.


You are absolutely not what you've been told,

You are more than you have ever imagined.


당신은 여지껏 당신이라고 명명되어 왔던 그것이 절대 아닙니다.

당신은 여지껏 당신이 상상할 수 있었던 그것 이상의 존재입니다.


-Gregg Braden 그레그 브래든




현재 기술은 발전과 혁신을 거듭하며 인간의 기능을 대체할 수 있는 A.I 가 무서운 속도로 우리의 일상 안에 진입하고 있다. 이제 그림을 그리고 소설을 쓰는 인공지능까지 나왔다 하니,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고 생각되던 예술조차 그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솔직히 그림 그리는 로봇을 방송에서 봤을 때 기분이 조금 나빴던 기억이 있다. 삐딱한 시선으로 '로봇이 감히! 네가 그래 봤자지.'라는 생각도 조금 했다.


그렇게 바야흐로 전대미문의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BTS라는 아이돌 그룹이 한국을 너머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것을 목격했다. 가수 자체의 매력도 있겠지만 유튜브라는 인터넷 플랫폼의 역할도 굉장하다고 느껴졌다. 과거에는 많은 시간과 노동력이 필요했던 일들이 이젠 손쉽게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예전에는 몰랐던 문제 또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 속에서 새로운 문화강국이 된 한국이건만 그 뒷모습은 어쩐지 부자유스럽고 무거워만 보인다. 마약이나 항정신성 의약품들이 음지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고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 정서적 문제를 안고 있다. 겉은 화려해지고 편리해졌지만 무언가 중요한 중심체가 갉아 먹힌 느낌이 든다.


우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무엇이 사람의 정신을 좀 먹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그렇게 각박해지는 것일까?

악플 같은 것이 아닌 비폭력적 소통은 정말 어려운 것일까?

자의식의 비대증, 머리만 커지는 현상은 어떻게 극복될 수 있을까?

정말 돈이면 다 해결되는 것일까?


세상은 영화에서처럼 배트맨이나 슈퍼맨 같은 히어로 한 명이 한 번에 상황 정리를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는 방법밖에 없다. 우리 몸 안의 수억 개의 세포가 생명 유지를 위해 작동하듯이 말이다. 문득 그림 그리는 자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은 하나뿐이다.


그냥 오늘 한 장의 그림을 그리는 것.


세상이 내일 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나무를 심겠다는 그 유명한 말과 비슷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대단한 의미에서 일맥상통한다기보다는 그냥 나라는 인간이 이 상황에서 낼 수 있는 최선의 답일 뿐이다. 세상이 인공지능으로 다 대처된다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그것밖에 없을 것 같다. 불행히도 혹은 다행히도.


Artist studio, acrylic and mixed media on canvas: 피노키오가 인간이 되어간다.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 '만든다'는 것은 뭔가를 ‘봤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는 것,’ 마음속 깊은 곳의 이름 모를 심상을 감지하는 것까지도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 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다만 적어도 내가 이 한 생을 마칠 때 까지는 아무리 뛰어난 인공지능이라도 그건 어려울 것 같다. 하도 상상을 뛰어넘는 기술 발전이 있기에 장담까지는 못하겠지만 지금 일단 내 생각은 그렇다. 프로그래밍으로 되지 않는 영역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바로 그 지점을 가지고 있기에 ‘인간’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 영역은 매우 섬세하고 잘 드러나지 않는 영역이다. 쉴 틈 없이 밀려오는 프로그래밍에 의해 가려지고 덧씌워질 수 있으며 심지어 잊힐 수도 있는 그런 영역이다. 이 영역을 제대로 ‘보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지금과 같이 정신을 교란시키는 정보가 많은 시대에는 말이다.

(또 반대로 보자면 사람을 살리는 고차원적인 정보 역시 열려있다는 뜻일 것이다. 사실 이 점은 은사님께서 언급해주신 부분이다. 그런데 그런 것을 보려면 어디를 주시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나와 같은 업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바로 이 지점을 부단히 묵상하고 들여다보며 표현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것이 창작자로서의 나의 꿈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나의 창작물이 무언가 소중한 것을 기억시켜주는 매개체였으면 한다. 그런 창작물은 인간을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시키기 때문이다. 올바른 기억은 빛이며 날개다.


첫걸음은 대부분 대단한 것이 아니다. 허접한 한 장의 스케치, 엉성한 한 줄의 문장로부터 시작한다.


성공의 여부를 떠나서 지금껏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살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늘 내가 하는 일과 내가 가진 재주들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지만, 이제야 깨달은 것은 그것들을 당연하게 여기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세상엔 당연한 건 없다. 아주 작은 풀잎도 신은 기억하고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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