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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 of Heart

by 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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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소식이 뜸하던 동료와 오랜만에 전화통화를 했다. 가벼운 안부로 시작했던 통화가 길어지며 생각보다 흥미진진한 대화로 이어나갔다. 이런 순간들마다 내가 '대화'라는 것을 생각보다 좋아하는 사람임을 새삼스레 자각하게 된다. 쓸쓸할 때가 종종 있지만 인간관계에 있어서 어색하기 그지없는 나라는 인간이었기에, 사람과 만나고 교류하는 것에 적극적이었던 적이 별로 없다.


현재 해외에 살고 있는 동료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한국이라는 문화적 코드 너머의 또 다른 종류의 삶을 느껴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당연한 관습이 그곳에서는 별 상관없는 일이라는 것을 상기하며 '그래, 꼭 그럴 필요가 없는 거였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달까.


그녀는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를 참으로 알뜰살뜰하게 쓰는 사람이다. 하루를 무료하게 보내는 것보다, 하루 하루를 충만하고

기쁘게 잘 살아보겠다는 마음으로 사는 그런 사람이다. 어느날 그녀는 오랜만에 외출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바깥 바람을 쐬면서 마음을 신선하게 리프레쉬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마음 먹은 그 날이 되자 비가 처덕처덕 내리는 궃은 날씨가 되는 것이 아닌가. 평소때라면 '그래, 날이 흐리니 그만두자' 하며 마음을 접었겠지만, 그날은 '내가 오늘 하루를 즐겁게 보내기로 결정했으니 움직이자!' 하며 기꺼이 문 밖으로 나섰다고 한다.


그녀가 도착한 목적지엔 역시나 날씨 때문인지 행인이 거의 없는 텅빈 거리의 모습이었는데, 관객이 한 사람도 없는 그 텅빈 거리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한 명의 버스킹 음악가가 있었다고 했다. 그녀에게 들은 이야기를 옮기는 나의 글솜씨가 따라가지 못해서 애석한데, 그녀가 설명하는 그 상황은 상당히 영화 같고, 로맨틱한 한 장면이었다.


비 오는 날,

나 한 사람을 위해 음악을 연주하는 한 사람과 텅빈 거리...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내 가슴도 촉촉해지는 것 같았다. 한국의 복잡한 정치, 경제 뉴스,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는 전쟁에 관한 소식들을 들으며 알게 모르게 불안을 쌓고, 팍팍해진 가슴으로 살고 있던 내게 그 이야기는 내가 잊고 있었던 또 다른 차원의 세계를 기억하게 된 느낌이었다. 촉촉한 감성과 낭만이 있는 삶의 순간들. 그것을 충분히 그리고 충만히 감상해도 되는 안정된 삶의 공간...


비 오는 날, 나를 위해 연주하는 거리의 음악가, 그런 순간들에 대해 언론은 주목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것들은 우리 모두 너무 쉽게 잊게 되는 삶의 보석같은 일면들이다. 대중매체와 언론이 집중하는 것은 주로 걱정거리가 될 만한 것들이며, 사람들 가슴에서 투쟁심을 일으키는 것들일 때가 많다. 특히 한국이라는 나라에 있어서 정치 문제는 소위 '팩트'에 기반해서 보도를 한다지만 사실 진짜 팩트는 과연 존재하는가? 모든 것을 객관적인 사실처럼 말하지만 그것은 누가 어떤 각도로 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모든 신문사들은 하나의 사실을 저마다의 필터를 거쳐서 '해석'할 뿐이다.


이런 사회적인 문제 외에도 가파르게 발전 중인 과학 기술의 속도 역시 우리로 하여금 가슴이 이끄는 삶보다는 바쁘게 변화의 속도를 쫒아가게 만들고 있다. 머리, 즉 계산하고 분석하는 능력 하나만 가지고 말이다.



"많이 집어넣는 것보다 중요한 건요. 울림판을 키우는 거거든요. 정보를 많이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정보의) 용량을 키울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감동을 받는 일입니다.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동 받는 것이고요. (저는) 감동 받는 걸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걸 하려면 뭐가 있어야 되냐 울림판이 커야 돼요. 똑같은 책을 읽고 '와~'라고 느낄 수 있는 그 부분이 많아야 되요. 갑자기 그냥 무릎에 힘이 쫙 빠져 보거나, 소름이 돋거나, 이런 경험을 많이 한 사람이 좋은 컨텐츠를 만들어요."

-박웅현 (광고인, 작가)



내 동료는 감동받는 일에 특화된 사람이다. 그녀에 대해 잘 몰랐을 땐, 솔직히 그녀의 감수성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보기엔 별 것 아닌 것에 감탄하고 감동하고, 고맙다고 하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포인트에서 눈물을 보일때도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정말 그게 대단한 점이었다. 느낄 수 있는 맑고 고운 감수성이 살아있다는 것. 나이가 늘어감에 따라 건조해지고 쪼그라들기 쉬운 감수성이 그렇게 건강하고 싱그럽게 살아 있을 수 있다는 것. 다시 말해 Heart가 순결하다는 것이 말이다. 또한 Heart로 느낀다는 것은 멈춰설 수 있어야 가능하다. 무의식적으로 빠르게 흐르는 사고의 흐름을 잠시 멈추고, '어라, 이게 뭐지?' 싶은 순간들에 찾아오는 것이 감수성과 만나는 순간이다. 돌이켜보니, '어라?' 하는 이런 순간들이 어느 순간부터 참 드물어졌던 것 같다. 쏟아지는 정보를 따라가기도 벅차서 허우적거리며 애쓰는 인생이었으니.


이제 많은 양의 정보를 프로세스하는 것은 인간의 뇌가 아닌 인공지능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인간에게 남은 역할은 이제 하나다.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존재하는 것. 섬세한 Heart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것. 매섭게 치고 올라오는 기술들을 우리는 두려움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만약 기대 밖의 최고의 효과를 낸다면 그것은 인간을 시인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시적 아름다움과 감수성의 세계로 들어서게 만드는 것. 나는 우리의 미래가 그런 식으로 기술 문명과 공존하게 되길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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