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쇼핑에 대해서

by 아난


Barbara-Kruger-–-I-shop-therefore-I-am-1987-screenprint-on-vinyl-125-x-125-cm-scaled.jpg



몇 달전 이사를 한 뒤, 내가 상당히 치중했던 일은 집의 공간을 재배치하는 것, 그리고 필요한 물건들을 하나 둘 구매하기 시작하는 일이었다. 오래전부터 눈여겨 보아두던 모션데스크와 침대 생활을 시작하면서 구매하게 된 매트리스, 책상 서랍장, 청소기 같은 것들이었는데, 늘 느끼는 것이지만 나에겐 쇼핑이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설상 가상으로 집 정리를 하면서 무리를 하다가 허리를 삐끗하기도 했다.


일단 선택지가 너무 많았다. 대부분의 물건을 온라인으로 구매하기 때문에 인터넷 페이지에 뜬 정보를 토대로 물건에 대해 유추하고 고민해야 한다. 다른 소비자들의 리뷰를 참고해보려고 하지만 대부분 엇비슷하다. 일단 가장 눈에 띄는 리뷰는 마켓팅 회사에서 고용한 사람들마냥 제품에 대한 감동적인 극찬이 일색이고, 평점이 낮은 리뷰를 보자면 그와 정반대의 성난 비평들이 그득해서 대체 무엇이 맞는 소리인가 싶어지는 것이다. 이게 정말 내가 찾는 그 물건이 맞나? 머리에 쥐가 나도록 궁리하게 되었다. 그러다 뭔가에 홀린 것처럼 갑자기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물건들에 꽂혀서 나도 모르게 충동 구매를 하기도 했다. 한동안 지칠 정도로 탐색을 하고 주문을 하고 또 취소를 반복하다가 잠깐 멈칫했다. 내가 이미 주문을 넣었던 물건들은 하나 둘씩 집으로 배송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뭔가 이상했다.

왜 내가 선택한 물건이 오고 있는데도 행복보다는 어깨가 무거운 느낌이 되는 것일까...

이런 미묘한 느낌을 나는 애써 무시하고 있었다.


'선택은 원래 피곤한 일이야.'

'고를 때만 고생하지 막상 물건이 오면 잘 쓰겠지 뭐.'


늘 그렇듯이 가장 이성적인 생각으로 정당화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집을 정리하는 동안 허리가 삐끗하는 등의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에는 그것은 사실 이 상황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는 우주적 사인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상황이 뭔가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여기 좀 봐.' '다시 좀 봐.' 하면서. 난 그것을 둔감한 마음으로 거칠게 쳐내고 있었다. 그런 작은 소리를 듣기엔 난 너무 피곤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작은 사인들을 잘 볼 필요가 있다. 모든 일에는 소설 속의 복선처럼 문제의 시작을 예고하는 특성이 있어서 그렇다.


미니멀리스트 명언 중에 '내가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이 나를 소유하게 된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이 그대로 나의 현실이 된 느낌이었다. 내가 물건에 혹은 허상의 무엇에 끌려다니는 느낌이었다. 몸이 아팠던 덕에 부모님 댁에 가서 며칠간 쉬는 시간을 가졌는데, 개구리가 우는 소리가 그득한 창가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문득 지금처럼 물욕이 넘쳤던 때가 없지 않았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 별로 없던 학생시절. 방에서 방으로 이사다니며, 제대로 된 가구라고 할만한 것이 별로 없던 시절이 있었다. 불편한 삶이었고 렌트한 방은 나의 살림살이를 온전히 담아내기엔 비좁았다. 침대나 책상의 브랜드에 관심을 두기보다 그냥 가격대에 맞고 실용적이면 장땡이던 시절이다. 당시에는 온라인 스토어라는 것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오프라인 매장에 가서 그냥 보고 골랐다. 한 매장 안을 길어봤자 한 20분정도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골랐다. 그냥 주어진 대로 살던 시절이었다. 가구 브랜드 같은 거에 대해서 고민을 하는데 시간을 써본 적 없던 시절. 덕분에 나는 대신 내가 좋아하는 활동에 좀더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소유하는 것이 없으니 원하면 언제든지 가방 하나 들고 훌쩍 떠날 수 있는 그런 깃털 같은 나날들이었다.


여인숙에 잠시 머물다 떠나는 나그네의 가볍고 단촐한 삶.

그것이 나의 20대 그리고 30대 초중반의 삶이었다.

이 순간들이 한순간 매우 그립게 느껴졌다.


40대가 되어서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게 된 나는 예전보다 훨씬 비장해졌다. 과거에 비해 '제대로', '안정감' 있고, '무게감' 있고, 한번 사면 '오래도록' 쓸 수 있는 물건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또 남들보기에도 괜찮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집에 들여놓는 가구에 대해서 몇날 며칠을 박터지게 고민을 하고, 필요없는 것들도 과감히 들여놓고 있었다. 나는 드디어 내 삶을 제대로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어쩌면 값비싼 감옥을 만들려고 애쓰고 있는 건 아닌가 라는 생각까지도 드는 것이다.


우리는 인생의 처음 절반을 물건을 모으는 데 쓰고, 나머지 절반을 그것들을 비우는 데 쓴다. 당신이 소유하는 것들이 당신을 소유한다. 당신이 잡동사니로부터 자유롭다면 인생은 훨씬 밝고 가벼워진다.

-미니멀라이프 명언


어쨌든 박터지게 고민한 결과, 몇몇개 필요한 제품을 고르긴 골랐다. 제대로 잘 고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앞으로 쓰면서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될 뿐이다. 이 고생스러운 쇼핑 과정이 모두 무의미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이게 이렇게 고민할 문제였나? 하는 깨달음을 얻기는 했다. 소비에 있어서 물건의 브랜드, 성능, 가성비, 이런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에 비해 그런 점들에 너무 절절 매는 삶을 살고 있지 않나 생각해보게 된다. 끊임없이 비교하고 또 비교하고, 최고의 것이라는 것을 찾아다니는데 너무나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사실 인생에서 최고의 것은 내가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나를 찾아오는 것들이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말이다.


광고인이자 작가인 박웅현님이 어느 한 강연장에서 한 스님이 들려준 가르침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스님은 '아하선'이라는 것을 말하며 이것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라고 제안했는데, 처음엔 '아하선'이라는 것이 어떤 불교의 고매한 수련법인줄 알았던 박웅현 작가는 곧 그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아하선'이라는 것은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아' 하면서 감탄하는 모든 순간들을 늘려나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 하면서 감탄을 하는 기준이 모든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맛있는 집밥을 먹으면서 감동하고, 어떤 사람은 봉급이 두배가 되어야만 '아'하면서 감탄할 수 있다. 스님의 제안은 그 감탄하는 기준선을 '0'점으로 확 낮추라는 것이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났을때, 다시 눈을 뜰수 있음에 감탄하고, 숨을 쉴 수 있음에 깊은 만족을 느끼는 것... 스님의 말씀대로 한 사람의 '아하'점이 '0'점으로 내려온다면 하루 하루가 정말 선물같을 것이다.


쇼핑을 하다보면 최고의 물건을 갖겠다는 집착에 작은 것에 감사할수 있는 마음을 잊어버리게 된다. 내가 지불한 것에 상응하는 혹은 그 이상인 물건을 갖겠다는 마음, 호구가 되어 상술에 놀아나지 않겠다는 마음이 늘 감탄보다 먼저이다. 이러한 불신이 늘 '아하'점보다 먼저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돈으로, 클릭 한번으로 내 생활의 불편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정말 '아!' 할 만한 아하점의 순간인 것을 잊고 있었다.


또한 필요한 것들이, 나에게 가장 적당한 무언가가 자연스럽게 내게 주어질 것이라는, 내 눈에 들어오게 될 것이라는 믿음은 전혀 없었고, 모든 일을 100 퍼센트 나의 의지와 힘으로 밀어부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힘으로 밀어부치다가 결국 허리까지 삐끗했다.


그런데 어디 이것이 물건 하나를 사는데 있어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내 전반적인 삶에 있어서 나의 사고방식은 이러한 불신과 불안함을 내포하고 있었다. 세상을 믿지 못하고 있고 뭔가를 항상 애를 써서 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나 자신에 대한 불신이 있다는 것도 이번을 계기로 알게 되었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이런 일상 속에서 내 무의식의 한 조각이 이렇게 드러나고 있었다.


1987년, 미국의 설치미술가 바버라 크루거는 ‘I shop, therefore I am(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제목의 작품을 남긴바 있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이 근대를 대표하는 한마디라면, 바버라 크루거는 현대의 거대하는 팽챙하는 물질문명과 소비문화를 이 한마디 안에 녹여내었다. 좋든 싫든, 우리는 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상, '쇼핑'이라는 것을 피할 수가 없고, 아마 죽는 그 순간까지 무언가를 사고 있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그 매 순간들을 무의식적인 욕망의 노예가 되어서 휘둘리기 보다는 '절제'의 미덕과 '만족'의 충만함으로 맞이하고 싶다.

keyword
월, 수 연재
이전 07화쉽지 않은 '쉼'